잊을 수 없는 증인 - 40년간 법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연약함과 참됨에 관한 이야기
윤재윤 지음 / 나무생각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는 30년여년 동안 법관 생활과 약 10년간의 변호사 생활을 한 평생 법조인이다. 법의 성격이 치열하고 치밀해야 할 터이니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 또한 치밀하고 이성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로 이해관계를 다투는 민사든, 죄의 유무를 가리는 형사든 재판은 엄숙하지만 치열할 것이다. 삶의 극한에서 치러지는 양측의 이해를 분명하고 치밀하게 가려야 하는 재판관의 입장에서라면 많은 회한과 혹시 잘못 판단했을지도 모를 재판 때문에 평생을 내적 갈등과도 싸워야 하는 쉽지 않은 직업이다.

40년을 법조인으로 살아온 저자가 글을 시작하면서 맨 먼저 한 말이 "법은 나에게 아직도 몸에 잘 맞지 않고, 좀 어색하고, 때로는 거리가 먼 친구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완전하지 못한 제도인 법에 의해 재단한다는 것이 거칠고 불합리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좋은 제도가 생기기 전까지는 인간의 이해 관계나 범죄를 법 제도에 의해 단죄하고 가늠해야 한다. 저자의 안타까운 마음과 회의적인 감정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점에 독자도 공감한다. 많은 고민과 사색이 뒤따랐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저자는 법관으로서 또 변호사로서 사람 삶의 본질 깊숙한 곳을 꿰뚫어보는 통찰과 사람을 향한 겸허한 시선을 견지했던 것으로 이 책에 담긴 짧은 에세이에 기대어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제목 『잊을 수 없는 증인』이란 말에서부터 풍기는 뉘앙스는 아마 법정에 증인으로 선 한 사람의 증언이 쉽게 잊혀지지 않은 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동 제목의 책 속 글 「잊을 수 없는 증인」(p. 233)에서 따와 그대로 표제어로 썼다. 먼저 이 글로 들어간다. 뉴스에서 본 듯한 사건이다. 고아원 출신 전과자 남편과 몸이 불편한 척수염 환자 아내 사이에 두 딸은 그들의 희망이었고 삶의 즐거움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남편은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다. 여섯 살, 네 살 된 두 딸에게 독극물이 든 우유를 먹여 절명하게 했던 것이다. 남편 자신도 우유를 마셨으나 목숨을 건졌고 살인죄로 재판을 받았다. 피해자가 어린 자매여서 주위의 안타까움은 더했을 것이다. 재판부는 직권으로 아내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남편의 형량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증언대에 선 아내는 딸들을 살릴 수 있다면 자기 목숨이라도 바치겠다고 흐느꼈다. 그러나 곧 눈물을 거두고 차분한 태도로 남편에 관해 증언했다. 처음에는 분노로 남편을 죽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편이 그 상황에서 실망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남편에 대한 애정도 전혀 없다고도 했다. 남편이 아이들을 죽인 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세상을 살면서 지게 될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리고 약한 남편에게 가벼운 형을 주어 한 번이라도 사람답게 살 기회를 주면 좋겠다고 증언했다. 저자는 이 가련한 아내의 증언에서 "사람이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깨우쳐준 스승"이라고 말한다. 그녀야말로 위대한 힘을 가진 놀라운 사람이며, 지금까지 그녀처럼 '훌륭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썼다.

 


 

법이 눈물을 닦아주기는 어렵지만, 눈물의 현장에 있는 것은 틀림없다는 게 저자의 소신인가 보다. 유대교 철학자 아브라함 J. 헤셸에 따르면, ‘정의(JUSTICE)’는 법, 판결과 같이 곧고 정확하며 합리적인 올바름을 의미하지만, ‘의(RIGHTEOUSNESS)’는 친절, 박애, 관용 등 인격의 질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의’는 정의를 넘어 연약한 사람에 대한 연민과 눈물을 포함한다. 약자를 보호하고 다수의 권리를 보호하며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의 공평한 시선이 모두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한다. 법관과 변호사로 40년간 법의 현장에 있었던 저자도 수많은 재판을 경험하면서 법 제도가 ‘의’보다는 ‘정의’에 치중되어 있음을 깨닫고 회의감과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저자는 전한다.

저자에 따르면 법은 겉모습에만 관여할 수 있을 뿐 사건 속의 눈물은 헤아릴 수 없다. 개개인의 사정을 섬세하게 어루만져주지 못하고 무정하고 냉혹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법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며, 법과 물리적 증거만으로 끝까지 알아내기 힘든 사람들의 눈물과 아픈 마음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려고 노력해왔음을 고백한다. 법이 눈물을 닦아주기는 어렵지만 눈물의 현장에 있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그만큼 더 인간성에 대한 고뇌와 연민이 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저자의 약한 자에 대한 연민은 자신을 사랑하는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기의 안락만을 목표로 삼거나 늘 자기 문제에만 골몰하는 사람은 남의 고통에 대한 연민을 갖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평생 자기 안에 갇혀 제자리만 맴돌 뿐이다. 이에 대해 에리히 프롬을 인용한다. “무력한 사람에게 연민을 가질 때에야 약하고 위태로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나약함을 인식하고 타인에게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만이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복된 변화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타인을 이해하고 연민을 가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저자 또한 평소 동정심이 많다고 자부하였지만 무의식중에 사람의 가치를 이분하는 모습에 깜짝 놀란 바 있다고 고백한다. 과연 갱생 가망이 없는 중증 알코올 의존자나 마약 중독자, 상습 범죄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가치가 없는 것인가? 인간의 가치가 능력이나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능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존엄하며 고유한 가치가 있음을 저자는 법의 현장에서 거듭 확인한다.

 


 

정의와 공평을 이룬다며 애써서 하는 재판이 삶의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저자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그가 가진 심연의 한쪽 가장자리를 스쳐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절감하며 그에 대한 혼란과 끊임없이 싸웠음을 고백한다. 인간사에는 법의 저울로 잴 수 없는 일이 무수히 많음에도 저자는 그 한계에서 좌절하지 않고, 법의 틈새를 보완해줄 방안을 고민하고 실천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년자원보호자제도’와 ‘정상관계 진술서’의 양식을 만든 것이다. 소년자원보호자제도는 보호처분을 받은 소년범에게 부모 등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가 있어도 제대로 보살필 수 없을 때 법원이 위촉한 지역사회 봉사자들과 소년범을 일대일로 연결해주는 멘토링 서비스로, 우리나라에서 저자가 시작하여 제도화되었다. 또한 정상관계 진술서의 양식도 저자가 피고인의 보다 자세한 사정과 환경을 알기 위해 만든 것으로, ‘차가운 법의 판결’의 한계를 넘어 ‘눈물 흘리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그의 애타는 노력을 읽을 수 있다.

 

“안타깝고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았지만 내가 재판에 관한 일을 계속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내 안에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본문 중에서)

 


 

『잊을 수 없는 증인』은 저자 윤재윤이 40년간 법조인으로 일해오면서 법정 안팎에서 만난 사람들의 연약함과 참됨에 관한 이야기다. 1999년부터 최근까지 《좋은생각》에 꾸준히 연재해온 것을 묶은 것인데,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솔직하고 깊은 성찰이 담긴 그의 이야기에 매료된 독자들이 많아 그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특히 법조인이기에 앞서 그 또한 한 사람의 인간이기에 재판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본인을 되돌아보고 깊이 있는 성찰로 이끌어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책의 제목을 『잊을 수 없는 증인』으로 정한 것은 그 눈물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그에게 법조인으로서의 삶의 방향과 인간의 본질을 깨우쳐준 귀중한 인생의 스승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이 책에 실린 성공과 실패, 연민과 원망, 기쁨과 고통, 후회와 성장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고통과 슬픔을 넘어 행복에 이를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볼 수 있기를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 : 윤재윤

 

30여 년 동안 법관 생활을 하다가 춘천지방법원장을 마치고 퇴임하였다. 비행청소년을 돕는 자원보호자제도, 피고인에 대한 양형진술서제도를 창안하여 전국 법원에 시행되게 하였고, 법이 치유력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틈틈이 재판과 사람에 대한 글을 써왔다. 현재는 변호사, 한국건설법학회 회장, 대학의 겸임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철우언론법상을 수상하였고, 저서로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 《소소소(小素笑) 진짜 나로 사는 기쁨》 《언론 분쟁과 법》 《건설 분쟁 관계법》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