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 아버지의 죽음이 남긴 것들
사과집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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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는 원인 등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1위가 '배우자의 죽음'이었다. 인간에게 큰 충격과 좌절을 안겨주는 '삶의 동반자'를 잃은 슬픔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가져올 것임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이 친족 1촌(부모나 자녀)의 죽음이었다. 그러고보니(지금 얼핏 생각난 일이지만) 촌수가 가까울수록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나보다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이 책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이후 딸이자 여성, 한 인간이 마주하게 되는 현실과 혼란스러운 애도의 과정을 다룬다. 저자 사과집은 줄곧 날카로운 시선과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세상을 바라봐온 작가다.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들과 삶을 바라봄에도 유의미한 통찰을 건넬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그런 냉소가 가능할까.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당도한다. 작가가 10개월간의 긴 해외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 것처럼. 저자는 포르투갈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던 철학자 김진영의 유고집 『아침의 피아노』를 생각해낸다. 그 책 안에는 그(김진영)가 암으로 임종하기 직전까지 썼던 일기가 담겨 있다. 임종 직전의 철학자는 니체의 말을 인용해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인간은 가을의 무화과와 같아서 무르익어 죽으며, 무르익는 것은 소멸하고 소멸하는 모든 것은 무르익는 법이라고.

그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조용한 순간'이다. 죽음을 앞둔 철학자는 그의 문장처럼 난숙한 무화과의 순간에 도달했다. 그는 이 거대한 고독의 시간에 자신의 삶과 죽음, 몸과 마음, 과거를 정직하게 기록했다. 그러나 나, 사과집의 아빠는 '조용한 순간'을 갖지 못했다. 합병증 환자이자 비정규직 노동자로 업무 중에 사망한 남자에게 삶을 고찰할 '조용한 순간'은 없었을 것이라는 극도의 슬픔을 대변한다.



장례는 단 3일, 죽음을 실감하기엔 지나치게 짧고, 한 인간이 눈앞의 죽음을 버텨내기엔 긴 시간이다. 작가는 엄마와 여동생을 대신해 장례가 치러지는 3일 동안 모든 것을 도맡았다. 그러나 상주 완장은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인 사촌 오빠가 찼다. 단지 그가 남자라는 이유로. 죽음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 오로지 개인적인 일은 아니다. 다만 모두의 삶이 공평하지 않은 듯이 애도도 마찬가지다. 저자와 아버지의 관계는 애증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온전한 슬픔’이 가능할까. 우리에게 정말 애도의 자격이 있을까? 많은 이들이 겪고 있을 불안감을 저자 사과집이 말한다.

저자는 장례를 치르고 얼마 후엔 김진영 씨가 번역한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읽었다. 바르트는 어머니의 사망 이후부터 약 2년간 일기를 썼다. 슬픔이 너무 지나치다 할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슬픔을 집요하게 기록했다. 그걸 읽으면서 저자는 그의 애도에 공감하는 한편, 내가 바르트만큼 슬퍼하지 않는다는 것에 묘한 죄책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 시기 나의 감정은 슬픔보단 분노와 절박함에 가까웠다. 내가 딛고 있는 땅이 강하게 흔들린 직후였던 탓이려나. 그 여진으로 인해 내가 알던 모든 것은 원래의 위치에서 조금씩 어긋났다. 아빠의 죽음은 시력 검사대에 턱을 대고 렌즈 구명으로 초원 위의 집을 바라보는 것처럼 내 삶을 강제로 마주하게 했다. 그렇게 바라본 내 미래는 너무 아득하고 불확실해서 매 순간 가슴을 조여왔다. 나는 정말 잘 살고 싶었다. 애도는 사치인 나날이었다."(p. 10) 자서전이자 에세이고, 아버지의 죽음이 기록된 일기이자 자신의 죽음에 관해 사유한 어둡지만 깊이가 느껴지는 회고록이인 이 책에서 저자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제 3자의 입장에서 기록해 우리에게 전달한다.

"어쩌면 죽음은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떻게 죽음을 맞고 싶은지는 미리 떠올려볼 수 있다. 먼발치에서 본 타인의 인생과 책에서 엿본 죽음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내겐 나만의 답이 필요했다. 언젠가 아프고 병들고 죽을 우리의 삶을 미리 고민하고 얘기하지 않으면,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오늘처럼 당황할 것이다. 돌봄과 가족, 죽음과 질병을 고찰하는 '조용한 순간'은 빠를수록 좋다. 나는 잘 무르익기 위한 준비를 하려 한다. (중략) 죽음에 대한 사적인 일기를 올리기로 한 이유다."(p 10~11)



이 책은 4부로 나뉘어 있다. 1부 ‘더 나은 죽음’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그 당시의 기록이다. 부친의 죽음을 받아들일 새도 없이 절차화된 장례를 치르며 그 속에서 느낀 불합리함이 저자만의 언어로 담겨 있다. 끌려가듯 장례를 치르는 동안 ‘세 모녀’만 남았다는 이유로 “집에 남자가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애도의 과정에서마저 철저히 소외된 것이다. 2부 ‘우리는 여전히 우리를 모르고’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룬다. 고립된 무인도 같던 아버지의 방과 삶을 정리하며 작가는 단숨에 그의 삶과 가까워진다. 한 번도 한국을 떠나본 적 없던 아버지는 어쩌다 여권을 만들었을까? 남겨진 사람의 숙제는 그런 것이었다. 사용기한이 만료된 질문과 수없이 마주하는 일.

3부 ‘세 여자의 애도법’은 남겨진 세 모녀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다룬다. 죽음은 많은 것을 알게 해주고 삶을 재고하게 한다. 부정적으로만 여겼던 제도적 관계를 돌아보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더 잘 살아갈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4부 ‘나의 죽음은 나의 생을 깨운다’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이후, 저자가 그려보게 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청사진을 이야기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죽음을 바라보고 나아가 구체적으로 죽음을 상상하며 자신의 노년을 꿈꾼다. 잘 죽기 위한 준비는 잘 살기 위한 준비와도 같다.

이렇듯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는 총 4부로 나뉘며, 죽음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과 더불어 애도에 관한 고찰, 나아가 자신의 죽음과 삶을 탐구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이는 에세이다.



저자의 죽음에 대한 사유는 깊어간다. 사람들은 삶의 경계를 매 순간 분리한다. 가까운 죽음을 경험한 이들에겐 으레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이 돌아온다. 그 문장을 불편히 여기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와 맞닿아 있는, 내게 영향력을 가진, 나의 소중한 당신이 이젠 죽고 없는데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함께 하지 못한 식사 한 끼와 커피 한잔, 대화 한 마디가 내내 가슴에 남는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내 삶에서 처절한 고립감을 경험하게 한다. 망자를 향한 그리움이 죄책감과 미련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과정마저 애도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저자를 혼란에 빠트렸던 것은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에 처절하게 실패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추억이 없는데, 홀로 남아 아버지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화목하고 친근한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가정들이 많지만, 어딘가 단절되어 있고 단순히 애정만으로는 설명하기 복잡한 감정을 가족과 공유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죽음의 복잡성에 관계의 복합성이 더해질 때 오는 혼란이 오로지 사과집의 것만은 아니다.

그러니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는 죽음을 겪은 사람들에겐 공감 섞인 위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예방 주사를 놓아줄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끝을 두려워한다. 죽음을 금기시하고 애써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죽음을 떠올림으로써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애도의 자격을 묻고, 제대로 된 애도에 대한 압박감을 느낀다. 그러나 사실 처음부터 명확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저자가 말해준다.



저자 : 사과집

에세이스트와 저널리스트의 경계에서 평생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 자주 소름이 돋아 닭살이 오르는 사람. 그만큼 세상만사에도 분노하는 피부를 갖고 싶다. 분노에서 멈추지 않고, 사랑을 기반으로 연결되는 연립의 삶을 지향한다. 정치학을 전공했으나 업에 대한 고민 없이 연봉만 보고 선택한 대기업을 퇴사하고 여행을 떠났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2019년 여름, 귀국한 지 3주 만에 아빠가 세상을 떠났다. 글쓰기 모임인 ‘마기슬(마감의 기쁨과 슬픔)’을 만들고, 매주 한 번 죽음에 대한 글을 썼다. 나는 좀 더 괜찮게 죽고 싶었다. 사과집은 ‘사소한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기’의 준말. 시사 PD로 일하며 브런치에 글을 연재한다. 『공채형 인간』, 『싫존주의자 선언』을 썼다.

* 브런치 BRUNCH.CO.KR/@APPLEZIB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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