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지게 1 - 천둥소리
강기현 지음 / 밥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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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 특히 현대사는 나라 잃은 설움과 동족상잔의 비극으로부터 시작된다. 상해에서 발족한 임시정부는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한 저항 정부 역할을 했다. 해방 후 미군정이 끝난 후 정식 출범한 남한만의 단독 정부는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일대 위기를 맞는다. 결국 주변 강대국들이 참전해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휴전 상태에 돌입한 후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채 같은 민족끼리 오도가도 못한 채 벌써 75년이 넘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비극과 암울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아낸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대부분 고인이 되셨지만. 이들은 시대의 희생자고 이념의 희생자이다. 이념 전쟁이라 할 수 있는 미소 냉전도 막을 내렸지만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이념이 다른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선 채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우리 민족으로서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붉은 지게』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기간, 경남 하동의 고전면과 양보면 일대를 배경으로 휘몰아치는 역사의 소용돌이와 평범했으나 역사적 소명에 충실했던 이들의 삶을 서사로 풀어낸 역사 장편소설이다. 원고지 5,000장 분량의 대작인 작품은 총 5권 중 1, 2권을 먼저 선보이고, 3, 4, 5권은 2021년 6월 중 나올 예정이다.

이 소설은 우리 역사의 큰 줄기인 일제 강점기와 해방, 6·25 등의 시대를 장대한 스케일로 다루면서, 하동이라는 지역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다. 작품은 당시 경남 하동의 이야기를 비단 그곳만의 이야기가 아닌, 역사적 격변기에 누구나 겪어야 했던 아픔과 슬픔의 보편적 삶의 이야기로 끌어가면서 독자를 역사 속으로 안내한다. 독자들은 이런 이야기 가운데 전통적 가치관과 신문물의 충돌, 외세의 침략과 민족 간 전쟁, 이념의 충돌, 이에 휩쓸리는 인간 군상과 공동체 의식 등, 시대 상황과 피할 수 없는 삶의 단면을 만나게 된다. 나아가서는 선과 악, 이념과 욕망의 충돌이라는 인간 존재의 모습도 들여다보면서, 오늘날로 이어지는 비극적인 역사의 물줄기를 만나볼 수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지게'는 요즘 젊은 세대는 잘 모르는 물건일 수 있다. 자취를 감춘 지 족히 40년은 넘었을 듯하다. 지게는 농사에 필요한 퇴비, 곡식, 나무, 풀 등 물건이나 짐을 사람이 등에 지고 실어 나르도록 만든 운반 도구인데 피가 흐르는 시체를 이고 가는 지게로 '피의 지게'-'붉은 지게'로 형상화된다. 이념 충돌로 일어난 동족상잔의 비극의 시나리오에 동원된 농민이나 국민들에게는 전사자를 나르고, 식량이나 탄약을 운반하는 도구로서의 지게에 무거운 시대적 삶의 짐까지 얹혀져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여겨진다.

이 소설에는 가난해서 독립군에 들어갔다가 공산당원이 된 사람, 그저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공산당원이 된 사람, 친일을 하지 않으면 삶 자체를 살 수 없어서 한 사람 등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살다간 그들에게 어떤 역사적 짐을 지워야 할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저자는 '지게'를 이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삼은 이유를 「머리말」을 통해 밝힌다. 이에 따르면 지게는 사람들이 물건을 등에 지고 운반하기 위해 만든 농기구다. 지게는 두 다리와 지겟작대기로 받쳐 세우고 그 위에 짐을 얹어서 지고 운반하는 도구다. 지게는 힘이 항상 두 다리와 지겟작대기 끝의 세 점 위에 분산되어 작융하므로 숫자 '3'에 대응시킬 수 있다. 지게가 서 있는 삼각대의 한 다리에 힘을 가하면 나머지 두 다리는 받침점과 작용점의 역할을 해 지게 전체에 힘이 작용한다.

그런데 지겟작대기를 지게의 꼭대기에 걸쳤을 때 지게의 두 다리와 지겟작대기의 끝이 정확하게 정삼각형의 꼭짓점에 있을 때 무게 중심이 정삼각형의 중심점 위에 위치하고, 가장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힘이 한 끝점에서 나머지 두 끝점을 이은 선분에 수직 방향으로 작용하면 두 끝점에 미치는 힘의 받침점과 작용점 역할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 즉 애매모호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중략) 짐을 지고 갈 때는 짐의 무게 중심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적당한 기울기를 조절하며 가야 한다.

 


 

장비가 부족하고 도로 사정도 연락해 차량 대신 민간인들이 직접 탄약과 보급품을 실어 날랐던 지게부대, 국군과 무장공비간의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지역에서 기계로 군수품을 나르다가 공비의 총에 맞아 전사했던 그들이 생각난다. 평범하게 열심히 살았던 그들이 폭탄소리, 총소리로 가득한 가운데 피로 물든 역사, 그 역사를 쓴 '붉은 지게'다.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전쟁, 그 속에서 고통 받았던 그들의 가슴 찢어지는 심정이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소설의 장소와 역사적인 배경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최악의 상황에 집중되어 있다. 소설의 무대인 경상남도 하동을 배경으로 한 것은 저자의 고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의 역사와 당시 상황을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로부터 직접 듣고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집필의 동기가 됐을 터다. 이곳에서의 극적인 전투와 그곳 농민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의 연속이었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읽힌다.

지금 나의 뇌는 고뇌에 헐떡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나의 가슴은 분노로 들끓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왜 살아왔는가?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아! 지축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중략) 내가 이다지도 흥분한 까닭은 내 부친의 죽음에 대한 숨겨진 비화를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인도 모른 채 그냥 어떤 병고로 돌아가신 줄만 알고 지내왔지만 아니었다. 이제 길고 긴 하동 역사가 시작된다.

아버지, 할아버지의 진짜 돌아가신 억울한 사연을 듣고 분노하지 않는 이가 누가 있으랴. 이야기는 단순히 한 사람의 이야기, 하동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6·25 등 격변기의 우리의 이야기를, 하동이라는 지역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말하고 있다.

 


 

하동의 이야기는 그곳만의 이야기가 아닌, 역사적 격변기에 누구나 겪어야 했던 아픔과 슬픔의 이야기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도 한 달 가량, 지소마을에 열흘 가까이 장맛비가 계속되고 포성이 울린다. 하늘에는 폭격기가 날아다니고 공산군이 하동 가까이 쳐들어 온다는 것을 안 지소 사람들의 불안감은 커져간다. 폭탄소리, 총소리는 계속되고 군인들은 목숨을 잃어간다. 두려운 이야기는 계속된다. 평범한 유학자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난 몽환은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성실한 농사꾼으로 열심히 살아간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몽환은 하동전투에서 패해 다친 미군을 치료하고 도와주다가 인민재판을 당할 위기를 맞고 큰아들은 공산당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만 공산당원이 된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들의 죽음에도 몽환은 적선여경(積善餘慶)의 정신으로 치안대를 용서하고, 아들의 무덤 앞에서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더욱 선행을 베풀기로 결심한다. 몽환과 함께 일본 경찰에 아첨하다 해방 후에는 공산당 치안대에 가담해 개인적 원한으로 염치수와 문수필 일가를 참살하는 황봉삼, 지주의 손자로 태어나 비밀 독립운동을 했으나 친일파 경찰의 모함으로 전쟁 중 월북하게 된 김헌필, 한때 좌익조직에 가담했다가 크게 실망하여 이데올로기로 갈등하는 몽환의 손자 만식 등, 다양한 인물들이 역사적 사건 속에 촘촘하게 얽히고설키며 줄거리를 이어간다.

 


 

"앞으로 김 양식장의 분배 등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건흥회'라고 명명할 것이며, 다음 '건흥회'는 보름 뒤에 개최할 것이고, 그날 회의에 참석할 때에는

지금까지 각 부락에서 김 양식을 하고 있는 어민들의 명단과 어민들이 소윻하도 있는 양식장의 위치와 면적을 소상히 조사해 오라." (1권 p. 219)

 

몽환은 홍팔준의 성화에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처음뵜겠십니다.제는 지수사는 강몽환이라 캅니더,앞으로 잘 부탁디립니더."

서로 간에 인사가 끝나자 박 순경이 홍팔준을 보고 공치사를 했다. (2권 p. 12)

 

진송은 다행히 집안이 구례 김개묵의 도움으로 상상도 못 할 큰 위기를 모면하고 , 꿈에도 그리던 부자가 된 것을 기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무소불위로 조선인들을 탄압하는 일본인들의 세사에 살안암기 위해서 무언가 대책을 마련해야 겠다고 결심하고, 율촌의 사촌 처남이 말했던 내용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우리 가족 중에서 누군가가 일본인들 앞에서 그들의 신학문을 배울라 카모 아부지가 절대로 용납할 리가 없을 끼다. 그렇다고 범사 홍팔준이가 다시 앙심을 품고 일본인과 짜고 아버지를 몰래 모함하여 궁지에 빠뜨린다 쿠모 또 속수무책으로 당허고 말아야 한단 말인가?" (2권 p. 130)

 


 

소설 『붉은 지게』는 대한민국 이전 1900년대 조선시대 말의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민초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하동군 지소마을에서 태어나 교사생활을 하였으며, 자신의 삶 속의 100년 전 과거를 한 편의 소설로 엮어내고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은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강몽환이다. 남의 집에서 소작농을 하는 큰 존재감 없는 삷을 살아가는 가난한 조선인이다. 하지만 일제시대의 암울한 상황이 자신의 신분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누군가의 소작농으로서, 가난을 면치 못했던 그 시절, 동네의 토지들이 일본인에 의해 수탈돼 다시 재분배되는 그 과정들이 소상히 소설에 나타난다. 동네의 부자였던 김개묵의 소작논 마름이 되었던 강몽환은 자신도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꿈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동네 면서기와 부자 홍영감의 작당 때문이다. 세상을 너무 몰랐던 강몽환은 스스로 억울함을 감내해야 했다. 분노에 들끌었던 강몽환과 주변 사람들, 소설의 전체 흐름은 폭력이 살인으로 비화되는 과정 속에 있었다. 소위 귀싸데기 하나 올린 것이 살인미수가 되어 재판에 이르게 된다. 이로써 자신이 그동안 쌓아놓았던 재물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이 감몽환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었고, 부자로서의 단꿈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싼 수업료를 치른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조선과 다른 일본이 가지고 있는 힘을 스스로 느꼈고, 배워야 억울한 일을 다시 안 당한다 점을 자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울분을 일본을 배움으로써 해결하고자 하였다. 일본 나고야로 건너가 신문물을 배우고, 신학문을 터득함으로써, 자신의 인생과 운명이 뒤바뀔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3.1 만세운동 이후 우리 사회의 개벽이 어떻게 일어나고,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일제시대의 암울한 삶이 어느 덧 공산주의자가 판치는 세상르로 바뀌가는 과정을 알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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