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 - 어느 수줍은 국어 교사의 특별한 시리아 친구 이야기
김혜진 지음 / 원더박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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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가 제목에 이름을 올린 압둘와합이란 인물이 '시리아' 사람이어서다. 독자에게 시리아는 고등학교 다닐 때 배운 세계사와 세계지리 시간에 중동에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나라며, 이슬람 종교 국가라는 사실 정도였다. 이후 로마제국에 관심이 있어 로마에 관한 책들을 읽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매료됐고, 그가 쓴 『십자군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시리아라는 나라는 머릿속에 완전히 인지되었다.

그러나 세상 변화는 알 수 없는 일인가 싶다. 그들이 민주화 요구를 기화로 내전에 돌입했으며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난민으로 떠도는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십자군전쟁 때도 극심한 피해를 입었지만 살라딘(살라흐 앗딘)이라는 유능한 지도자 덕에 무사히 극복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십자군 이야기』에도 지금의 지명 다마스쿠스와 알레포가 나온다. 그때의 지명을 8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도시들은 그 이전에 이미 들어서 있었다. 서유럽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온 압둘와합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그들의 영화(榮華) 때문이 아니라 가장 비참한 상태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독자의 결례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독자는 지금 치르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 대해 백과사전을 들여다봤다. 시리아 내전으로 집도, 가족도 잃고 떠도는 난민들에게 하루빨리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내면서 읽었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3월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Assad) 대통령의 퇴출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에서 시작돼 수니파-시아파 간 종파 갈등, 주변 아랍국 및 서방 등 국제사회의 개입, 미국과 러시아의 국제 대리전 등으로 비화되며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내전이다.

책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의 시작은 2011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낙서에서 비롯됐다. 2011년 3월 남부의 작은 도시 다라의 한 학교 담에 혁명 구호를 적은 10대들이 체포돼 고문을 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는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발포하는 등 과잉 대응으로 일관했고, 이에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시리아의 민주화 시위는 알아사드 정권의 무자비한 진압이 가해지면서 점차 무장투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3년 8월에는 시리아 정부군이 다마스쿠스 인근 구타의 교외 지역에 생화학무기인 사린가스 공격을 가해 1,000여 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시리아 사태는 다른 아랍 국가들과는 다르게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종파 갈등으로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시리아 인구 2,200만여 명 중 4분의 3이 수니파임에도, 시아파계 분파인 알라위파(Alawi)가 군과 정부 요직을 모두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시아파 맹주국인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가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이란과 적대 관계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인근 수니파 국가들이 반군에 무기와 물자를 지원하면서 사태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혼란상을 틈타 세력을 키운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북부를 점령하면서 정부군·반정부군·IS 등이 3자가 복잡하게 대치하는 등 나라 전체가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됐다.

 


 

국제정세는 것이 급변하는 경우가 많아 국가와 국민이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언제나 풍전등화 신세다. 민주화 요구가 내전으로 비화되면서 시리아의 비극은 시작된다. 주변국은 물론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지금은 다소 몰락했지만 아직은 강국으로서의 존재감을 잃지 않은 러시아가 각각 상대 진영을 도우면서 전쟁은 알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닫는다.

2014년 9월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하면서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으며, 2015년에는 러시아도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사태는 반군을 지원하는 미국과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으로까지 확대됐다. 특히 2017년 4월 4일 시리아 반군 거점 지역인 이들리브 주 칸셰이쿤에서 시리아 정부군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공격이 일어나 주민 수십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에 미국은 참사 이틀 후인 4월 6일 시리아의 샤이라트 공군 비행장을 향해 59발의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했다.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미국이 IS가 아닌 정부군을 공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후 고조되던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은 2017년 7월 양국 정상(트럼프 대통령-푸틴 대통령)의 휴전 합의로 가라앉기도 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 등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내전이 일어난 2011년부터 2018년 9월까지 36만 4,792명이 사망했다. 여기에 간신히 생존한 사람들도 난민이 돼 전 세계를 떠돌고 있는데, 실제 내전 발발 전 시리아 인구는 2100만 명이었으나 현재 시리아 난민은 그 절반이 넘는 1,200만 명에 이른다. 특히 시리아 내전이 수년간 이어지면서 생존을 위해 탈출하는 시리아 난민 문제는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쏟아지는 시리아 난민들을 감당하지 못한 주변국들이 점차 국경을 봉쇄했고, 이에 시리아인들이 유럽으로 향하면서 유럽 난민 사태의 원인이 된 것이다. 그러던 중 2015년 9월 터키 보드룸의 한 해수욕장에서 시리아에서 탈출한 세 살배기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국제사회에 난민 위기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이 책의 주인공 압둘와합이 겨우겨우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일상을 찾아가고 있을 즈음, 그의 모국 시리아는 이렇듯 전쟁에 휩싸인다.

독재자 아사드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났고, 정부가 이를 폭력으로 탄압하면서 결국 반군(자유시리아군)이 생겨나고 내전이 시작된 것이다. 초반에는 자유와 민주를 염원하는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반군이 승기를 잡는 듯 보였으나, 시리아를 둘러싼 주변국과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와합의 고향 락까는 그 악명 높은 IS의 본거지가 되고 만다. 와합의 가족은 IS의 탄압을 피해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한때 시리아 북부 지역의 유력 가문이기도 했던 와합의 가족은 그렇게 난민이 되어 지금 터키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시리아의 전쟁과 이로 인한 난민 문제를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와합은 시리아를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한다. 모금 운동을 제대로 하려면 믿을 만한 단체가 있어야 한다는 이 책 저자의 말에 와합은 바로 단체를 만든다. 그게 바로 현재 시리아 난민 구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헬프시리아’다.

저자는 자신의 말이 씨앗이 되어 진짜로 시민 단체가 만들어지자, 어쩔 수 없이(?) 이에 참여하게 된다.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헬프시리아는 그동안 작은 규모의 단체임에도 의미 있는 성과들을 냈다. 큰 규모 국제기구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작은 규모의 난민 캠프를 찾아 구호 활동을 펼쳐 왔는데, 적은 예산으로 운영하다 보니 비행기표 값을 아끼기 위해, 와합이 국내 취재진이나 연구진의 현지 가이드 일을 하게 될 때 며칠씩 따로 시간을 내어 인근에서 적절한 물품을 사 필요한 난민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다 현지에서 물품보다 아이들의 교육에 도움이 되는 지원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학교 세우기’에 집중하여, 2019년에는 시리아 쿠부리 지역 난민 캠프 근처에 9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등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압둘와합은 시리아에서 최고 대학으로 인정받는 다마스쿠스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프랑스로 유학 갈 예정이었지만, 어느 날부턴가 프랑스가 아닌 한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다마스쿠스 거리에서 길을 못 찾고 헤매던 한국인 유학생을 우연히 도운 것을 계기로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와 돈독한 관계가 되어, 어느샌가 ‘한국인들의 대부’와도 같이 되어 버린 압둘와합. 시간이 지나 그 친구들이 하나둘씩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 와합은 그들이 무척 그리웠다. 그러다 그때까지 한국으로 유학 간 시리아인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내가 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힌다.

가족, 지도 교수, 선배 변호사 들의 만류에도 기어코 선택한 한국행이었지만, 한국에서의 출발은 막막하기만 했다. 시리아와 한국은 수교국이 아니라 국가 장학금은 신청도 할 수 없었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원을 백방으로 찾아 나섰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았다. 면전에서 “솔직히, 나는 이슬람과 무슬림이 싫어. 다른 학교 다른 교수님을 찾아가 보게”라고 이야기하는 교수도 있었다고 압둘와합은 술회한다. 하지만 기적과도 같이 비자 만료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 한 대학원의 입학 허가를 받았고, 그렇게 한국에서 법학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와합은 지금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아랍 법과 한국 법의 비교 연구’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중학교 국어 교사인 저자는 압둘와합과의 인연이 우연이라고 말한다. 압둘와합이라는 이 청년은 시리아에서 명문 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던 엘리트였다. 시리아와 한국 사이의 다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한국에 왔지만, 한국에서의 일상은 전혀 만만치가 않았다. 심지어 그사이 압둘와합의 모국 시리아는 민주화 혁명에 이은 전쟁으로 큰 혼란에 빠진다. 그의 가족도 난민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음은 물론이다.

이 책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는 평범한 중학교 교사가 만난 한 시리아 청년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압둘와합이라는 친구를 두면서 비로소 무슬림과 난민, 이주민 등 우리 사회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친구의 이웃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와합과 함께 ‘헬프시리아’라는 구호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기에 이른다. 압둘와합과의 만남에서부터 제주도 예멘 난민 이슈에 이르기까지 저자와 압둘와합이 겪은 여러 이야기를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풀어낸다. 시리아인의 시각으로 '시리아 이야기'는 시리아의 역사·문화·정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아주 소중한 글이다. 한국에는 늘 서구의 시선으로 소개되고 있는 시리아와 중동에 대한 이야기가 못내 불편했던 압둘와합은 이번 기회를 맞아 최선을 다해 자국의 이야기를 전한다.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의 교차로에 정확히 위치한 시리아의 입지 조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로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살고 있는 도시 다마스쿠스, 로마 제국에 기독교 전파의 싹을 틔운 시리아 출신 황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리아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독자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시리아가 이슬람 국가로 기독교나 불교 등 타 종교에 배타적인 나라라고 알았다. 독자가 전혀 모르는 시리아 이야기는 이렇게 세상에 나와 시리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국제사회에서 많은 도움이 필요한 나라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데 큰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압둘와합의 이야기에 근거해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압둘와합이 들려주는 시리아 이야기’를 실었다. 시리아의 역사와 문화, 복잡한 현대사와 가슴 아픈 현실을 차근차근 정리한 이 글을 통해, 낯설지만 우리와 묘하게 닮아 있는 세계를 향해 문을 열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 : 김혜진

 

시와 댄스를 사랑하는 중학교 국어 교사. 떠밀리듯(?) 시리아 구호 인권 단체 헬프시리아의 창립 멤버가 된 이후, 8년 가까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행동이 느리고 에너지도 부족한 편이나, 일단 뭔가 시작하면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기는 한다. 우연히 시리아에서 온 와합과 만나 친구가 되는 바람에 난민·차별·인권 문제, 그리고 세계 시민 교육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교단에서는 본인이 경험하고 생각한 이야기를 직접 나누기가 쑥스러웠다. 글을 통해서라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책을 썼다.

압둘와합 알무함마드 아가(Abdulwahab Almohammad Agha). 대학원 박사 과정 학생이자 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시리아에서는 다마스쿠스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전액 장학금이 보장된 프랑스 대신 국교도 수립되지 않은 한국을 선택해, 한국에 온 시리아인 유학생 1호가 되었다. 한국과 시리아를 잇는 다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상법을 공부하며 ‘아랍 법(이슬람법 포함)과 한국 법 비교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그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평화로운 시리아로 돌아가 집 앞 맑은 유프라테스강에 발을 담그고 꿀같이 단 수박을 먹으며 한국에서 시리아를 사랑해 주는 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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