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의 기억법 - 영원한 것은 없지만, 오래 간직하는 방법은 있다.
김규형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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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있는 것을 그대로 작품에 옮기는 예술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그대로, 순간을 잡아내 찍기 때문에 '시간예술', '순간예술'이다. 또 영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영상예술'이기도 하다. 그러나 순간의 상황을 잘 잡아내 그대로 작품에 옮겼다는 사실만으로 '예술'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스위스의 화가 파울 쿨레(Paul Kle)의 말대로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예술이다"는 말처럼 한 장의 사진 속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도 사진 작가들은 보이도록 전하는 게 많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실제나 진실은 어쩌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진 작가들은 예술로 승화시킨 사진을 찍는 것이다. 그들이 작품을 만들 때는 예술가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굳이 사진 예술에 대해 독자가 여기서 언급하는 이유는 사진 예술은 예술이라기보다 기록이다는 주장을 하는 분들이 가끔 있어서다. 그 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그들은 사진만 얘기하는 것이다. 사진으로서의 예술을 얘기하지 않는다. 즉 자신들이 본 것만 얘기하기 때문에 '사진 예술'이라 하지 않고 '기록'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얘기하는데 예술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연이나 인체의 아름다운 장면을 찍었다고 사진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사진 이미지에 보이지 않는 장면을 위해 사진 작가는 피사체로 대상을 정한 것일 뿐 사진 작가가 예술 사진을 찍었을 때는 사진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앞서 말한 화가의 말대로 그래서 사진 예술은 예술의 한 범주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 책 『사진가의 기억법』은 당연히 포토에세이의 범주에 속한다.

 


 

사진 속의 그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많은 말을 던지고, 때로는 공감을, 때로는 감동을 주기도 한다. 작가의 의도를 보는 이가 알아채는 순간 그 사진은 예술이 된다. 표현 방법이 순간의 장면이고, 사실적이고 직설적이라 해서 예술성이 없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약하다. 사진에 스토리가 실리면 소설이 되고, 시적 영상미를 강조하면 시가 된다. 그림이 그렇듯 사진도 그렇다. 우리 삶의 모습을 찍은 사진도 마찬가지다. 남대문 시장 상인의 거친 손, 농부나 노동자의 마디 굵은 손, 스포츠 스타들의 손발의 사진 등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줌으로써 관찰자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중요하다. 사진을 찍은 사람이 무슨 의도로 그 사진을 찍었을까를 생각해본다면 너무 당연하다. 그들이 삶을 위해, 자신의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가 사진은 가감없이 보여준다. 관찰자는 감동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치열한 삶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올 때 우리의 휴머니즘은 살아나고 당연히 감동의 감성도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인간의 예술 감수성을 건드리는 작품이 예술이 아니면 무엇이 예술인가.

 


 

'사진 에세이'라고 명명된 이 책 『사진가의 기억법』에서 아주 새롭지만 친근한 이국의 풍광보다는 무척 일상적이지만 낯선 우리의 오늘을 만날 수 있다. 사진작가 김규형의 감각적인 시선 속에서 우리 모두의 지금은 가장 아름답운 순간이 되는 것이다. 김규형은 냉정과 열정 사이의 감정, 조용한 공간을 울리는 백색소음의 여운, 따뜻한 커피를 마신 후의 얼음물이 주는 미지근을 좋아한다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미련이 많고 이별을 싫어하고 반대된 두 가지의 중간을 좋아한다."며 "보통의 것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이 취미이고, 인생은 앞으로 좋아하게 될 것들을 찾아내는 모험"이라고 말한다. 말은 정돈되지 않은 것 같지만 말의 내용은 사진 작가, 예술가로서 손색이 없다. 저자가 예술론을 따로 배웠는지 알 길은 없지만 예술을 인식하는 눈이 딱 예술가의 모습 그대로다. 영감을 전달하는 낯설거나 익숙한 장소(여행)와 사람들(혹은 동·식물들)에 대한 그만의 접근법도 있을 터다. 말없이 그를 따라 안내한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거기에 이 책 안에는 사진 못지 않은 산문들이 즐비하다.

 


 

‘우연’이 시작한 일을 ‘꾸준함’으로 완성했다. 이 책 『사진가의 기억법』의 프롤로그에서 작가가 하는 말이다. 그에게 사진과 글은 그냥 지나치면 휘발되기 쉬운 일상과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이었다. 책을 쓰기 위해 원고의 첫 장을 채우던 날도, 카메라를 들고 낯선 골목을 헤매던 날에도, 혼자 머리를 자르다 망친 날도,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던 날도 그는 어김없이 기록했다. 그렇게 기록한 순간들은 하마터면 스쳐 지나갈 뻔한 사람을 만나 친한 친구가 된 것처럼, 사라지지 않고 곁에 남아 자신의 일부가 되어주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책 속에 담긴 그의 이야기에 기록에 대한 거창한 노하우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순간과 순간이 모여 기나긴 삶이 되듯, 소소한 기록의 조각들이 하루하루 쌓여 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한 컷의 아름다운 파노라마 사진처럼 보여줄 따름이다. 멈추지 않았기에 이만큼 갈 수 있었다고, 기록했기에 기억할 수 있었다고, 책에 담긴 작가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입을 모아 증언한다. 사실 그가 기록한 것은 단순히 지나버린 과거가 아니라, 잊고 싶지 않은 날들의 마음일 것이다. 페이지마다 정직하고 오롯한 자세로 자리 잡은 사진과 글을 통해 독자들은 지치지 않고 기록하는 사람의 감성을 마주하게 된다.

 


 

서울 도시 곳곳을 촬영하는 프로젝트 ‘서울 스냅’을 통해 알려졌듯, 포토그래퍼 김규형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장소를 다른 관점으로 보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는 카메라를 이용해 틀에 박힌 도시의 디자인을 때로는 낯설게, 때로는 장난스럽게 뒤틀어버린다. 어두운 지하도의 난간이 우아하게 뻗은 라인으로 바뀌고, 고층건물에 빽빽하게 들어찬 유리창이 파란 하늘에 물든 수십 개의 눈동자처럼 보이는 일은 그의 사진에서 종종 일어나는 작은 마법이다. 방향치라는 결점 덕분에 더 좋은 사진을 찍을 관점을 얻었다고 말하는 작가는, 남들 눈에 이상해 보이는 결점이 뜻밖의 지점에서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한다.

그가 날 때부터 당당하게 ‘이상해도 괜찮아’라고 외쳤던 것은 아니다. ‘카메라를 들고 어딜 그렇게 다니니’, ‘옷은 왜 그렇게 입는 거니’, ‘왜 남들처럼 살지 못하니’…… 학창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자주 ‘이상하다’는 이유로 혼이 났고,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잘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사진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날, 그는 난생처음 어머니에게 반항했다.

“엄마, 내가 이상하게 한번 살아볼게. 죄책감 갖지 않고, 즐기면서 이상하게 살아볼게요.”

그는 ‘이상함’을 갈고닦아 자신의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부로 만들었다. 조금 독특하지만 멋진, 그리고 다정하기도 한 한 사람의 세계를 『사진가의 기억법』에서 만나보자. ‘이상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메시지가 독자 안에 숨어 있는 유쾌한 잠재력을 깨워줄지도 모른다.

 


 

아름답다는 표현에 맞는 것을 발견했다면

모든 감각을 이용해서

머리와 가슴에 기록해두자.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든 변해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오랫동안

간직하는 방법은 있다.

 

손에 사진기가 들려 있다면

당신은 이미 그 방법 하나를

알고 있는 셈이다.

- p.31~32, 「사진가의 기억법」 중에서

 


 

산책하거나 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가끔 길을 잃으면 사진으로 찍어둔 기억을 떠올려서 길을 찾곤 했다. (…) 시간이 지나고 잘못된 방향에 관한 경험이 쌓이자 골목이 익숙해졌다. 또,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쓰고 걸으니 지도 없이도 최단 거리로 이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최단 거리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예전에 길을 잃고 우연히 발견하던 새로운 것을 더는 발견하지 못하게 됐다. 매일 걷는 길로 가게 되고 늘 보던 풍경만 보게 됐다. 어쩌면 제일 빠른 길은 제일 예쁜 것들을 놓치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길을 헤매기로 했다.

- p.9~10, 「방향치」 중에서

 

사진 찍을 때는 뷰파인더를 통해 한참 동안 대상에 시선을 고정했다가 정작 셔터를 눌러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 다른 곳을 본다. 친구가 이해하지 못하길래 매일매일 지켜보던 그녀에게 고백 편지를 주면서 정작 부끄러워 눈을 못 마주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해줬다.

- p.14, 「딴짓」 중에서

 


 

때때로 사진은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한다. 까맣게 잊고 있던 무언가를 사진이 되살려주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본 적 있지 않은가. 정갈하고 세련된 스타일로 캐논, 에어비앤비, 에잇세컨즈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 작업을 해온 포토그래퍼이자, 가장 일상적이지만 가장 이상적인 기록의 도구,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작가 김규형에게 기록과 기억은 끝나지 않는 화두다. 전시와 강연, SNS 등 채널을 가리지 않고 폭넓게 사진을 선보이는 그가 한결같이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 영원한 것은 없지만, 그것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방법은 있다는 사실이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순간, 영원을 사로잡는 방법 하나를 손에 쥐고 있는 셈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것이 카메라든 핸드폰이든 작은 수첩이든 노트북이든 상관없다. 기록하는 자가 누구보다 오래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니까. 21세기북스에서 출간된 김규형 작가의 신간 에세이 『사진가의 기억법』에서 그는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는 사진가의 관점을 감성적이고 유쾌한 문체와 사진으로 선보인다. 지금까지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사진작가를 꼽으라면 독자는 이 책의 저자 김규형을 아낌없이 선택하고 싶다.

 

저자 김규형

 

잘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취미였던 사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15년 캐논 플레이샷 특별상을 수상했고, 서울을 기반한 ‘서울 스냅’을 포함 서울 관련 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외에도 에어비앤비, 에잇세컨즈, 삼성, 갤럭시, SK텔레콤 등 다양한 브랜드와 꾸준히 협업 작업을 해오고 있다. 정갈하고 세련된 사진으로 인스타그램을 비롯해 SNS에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전시와 강의를 통해 그의 사진을 사랑하는 이들과의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서울 스냅』, 『사진가의 기억법』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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