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 - 평균 나이 55세, 첫 무대에 오른 늦깎이 배우들의 이야기
안은영 외 지음 / SISO / 2021년 1월
평점 :
절판



 

'백세 시대'는 요즘 나온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서면서 나왔던 시대의 신조어다. 독자 추정(정확한 통계를 갖고 있지 못해서)으로는 20년쯤 전인 듯 싶다. 물론 100세 시대라 해서 평균 수명이 100세란 뜻은 아니다. 그러나 예전에 백수(百壽)란 미수(米壽)와 같은 뜻으로 쌀 '미(米)'의 문자에서 여덟 팔(八)자가 두 개 들어가서 '88세'를 의미했다. '백세 시대'가 유행어가 된 건 아마도 모 가수의 같은 제목의 노래가 크게 히트 친 이후부터일 것이다. 아무튼 눈부신 의학 발전으로 평균 수명이 크게 늘어난 것은 누구라도 반길 일이다. 그러나 사람의 수명이 무조건 늘어난다고 좋은 사회는 아닌 것도 같다. 급격한 고령화가 가져온 사회 문제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 70~80대 노령층은 대체로 자녀를 많이 두지 않았다.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의 시대에 사회 주도층이었던 분들이기에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금 지나면 30~40대 부부들은 한 자녀가 많다. 지난해 처음으로 하루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보다 적은 첫 해로 기록된 것으로 이전 세대와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거기에 21세기 들어서는 결혼 자체를 포기하는 청년층이 늘어나 사회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인구와 노령층의 변화는 천천히 연착륙해야 부작용이 적은데 우리나라의 경우 급격한 차이를 보여 문제가 된 것이다. 인구 문제야 어떻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살 바엔 잘 살아야 한다.

잘 살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하다. 그 준비는 나이 50, 중년이 시작되는 시기가 적당하다.

 


 

누구나 추하게 늙고 싶지 않다. 잘 늙는다는 건 뭘까.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 저자 7인은 오랫동안 꿈꿨던 일을 당장 실행하며 중년을 재미나게 통과하고 있다. 그들이 간절하게 바랐던 일은 바로 연극 무대에 서는 것이다. 연극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왠지 금전적, 정신적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이나 시도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그럴까. 배우들 7명의 면면을 보자. 일단 그들은 연극 무대에 서기 전까지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후천적인 지체 장애, 갱년기 불면증, 우울증, 공황장애, 경력단절, 생활고, 이석증, 천식 등을 안고 살아왔다. 오히려 흔히 떠올리는 불행한 사람의 이미지에 가깝다. 그렇지만 “우리가 젊음이 없지 흥이 없나, 흥!”을 외치는 유쾌한 중년들이다.

리더 안은영은 연출가인 동시에 나머지 6인을 연극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뭉치게 한 주인공이다. 이 책도 그가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7인의 목소리를 하나로 엮은 것은 대표 저자 안은영이다. 각 장은 리더 안은영이 연출 노트라는 이름으로 화두를 제시하고, 이후 6인 각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쓴 글이 이어지게 구성됐다. 중년들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수록된 연극 연습 장면, 연극 무대 사진 등은 글에 생생함을 더해준다.

배려심을 장착한 긍정의 아이콘 최정주, 치매 걸린 시어머니 보필하다가 뒤늦게 온전한 자신의 삶을 누리는 최상옥,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시작해 호기심을 잃어버렸다 연극으로 자아실현 중인 김영희, 반전 매력의 소유자 마기원, NG 없는 연기가 특기인 완벽주의자 정호정, 콤플렉스를 날리고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팀의 막내 윤현정까지, 달라도 많이 다르게 살아온 그들이 연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그들은 체력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 쭉 무대에 설 예정이란다. 사이다처럼 톡톡 튀는 그들의 연극 노트를 보자. 그들이 무엇을 위해, 중년을 열정적으로 보내는지 알아낼 수도 있다. 더 자세히 보면 당신의 중년으로서의 앞날도 들여다보고 설계할 수 있다. 독자들도 그들처럼 즐거운 중년으로 살아보고 싶다면 찬찬히 읽어보면 영감이라도 받을 수 있음을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한마디로 연극을 통해 성장하고, 삶의 새로운 면을 발굴한 중년 배우들의 땀의 결실이다. 삶의 의지와 노후 대비에도 유효한 삶의 기록이다.

책은 연극의 시작, 과정, 마무리를 순차적으로 서술한다. 첫번째 장은 공동 저자 7인의 그간의 삶을 서술한다. 각자 다른 삶의 굴곡, 가치관 속에서 그들의 상처를 혹은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업적을 늘어 놓고, 누군가는 자신의 감정을 담아 그간의 삶을 소개했다. 두번째 장은 연극을 시작할 때의 수필들이 담겨 있다. 긴장과 낯섦 속에서, 연극을 하고 싶다는 소망 하에 사람들은 쭈뼛쭈뼛 하면서도 용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세번째 장은 각각의 저자들이 자신의 배역을 소개한다. 강 여사, 황 간호사, 치매 노인, 박영순, 양 선생, 한 선생. 자신의 인생을 담아, 과거를 반성하면서, 혹은 누군가를 이해하면서 점차 교훈을 얻어 가상의 인물을 이해해 나간다. 네번째 장은 연극의 준비과정, 어려움과 고난을 담았다. 사람들과의 다툼, 의견 불일치, 연극과 생활의 조율. 이러한 과정 속에서 조별과제가 생각나 아찔했다. 다섯, 여섯 번째 장은 무대 상연과 그 후의 변화을 다룬다. 그간의 노력과 고난들이 작품으로 실현되는 순간, 배우들은 삶의 생동감, 벅참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그 이후의 배우 생활로, 또 다른 도전으로 연결된다.

 


 

50대, 60대, 70대. 그 이후의 나이쯤 되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독자로서는 가늠이 안 된다. 젊어서가 아니라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란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 때쯤 나는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지만 중년에 들어선 지금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불만 때문인지 두려움만 앞선다. 그 두려움은 의욕 상실로 이어진다. 독자의 대부분의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부터 온다. 나는 무언가를 이루어 놓고 있을까? 건강은 괜찮을까? 너무 외롭지는 않을까? 돈은 부족하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 능력이 뒷걸음치기 시작하고 있다. 나는 겁 먹지 않을 수 있을까? 막연한 질문이지만 현실적으로 감당하기에 힘들어 두려움을 회피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을 쓰고 있지 않을까. 중년이 들어섰는데도 노년과 관련된 질문들에 대해 답하기 어렵다. 더욱이 급격히 변한 기술, 환경, 사회상의 차이로 일치점을 만들기 어렵다. 중년은 그만큼 어려운 시기다.

인생 1막을 갈무리하고 2막을 살아가며 3막을 준비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버겁다. 아니, 두렵다고 말하는 게 정직한 표현이다. 독자는 이 때문에 이 책을 그렇게 읽으려 별렀는지 모른다. 중년은 어렵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왜 연극에 그토록 열정적으로 매달렸는지 책을 다 읽은 후에야 겨우 감이 잡힌다. 큰 소득이다. 책 한 권 읽은 것치고는 과분한 보상이다.

 


 

이 책은 중년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깨고, 그들을 이해하는 것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간 살아온 삶의 생채기들이 ‘고집’이라 불리는 편견을 만들었다. 독자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들이 과거의 아픈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일, 돈, 사람, 사랑, 직업 등등 세월을 겪으면서 이런 저런 일을 겪다 보면 사람은 점점 바뀌어 간다. 그들의 삶을 모두 알거나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중년의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가지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결국 이 책은 중년도 언제나 마음 먹으면, 기회를 잡고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도전과 역경, 성취와 실패는 사실 젊은이들을 나타내는 주요 단어라고 생각했다. 사회는 이러한 과정을 청년들에게 요구하고, 또 청년들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사회 속에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이 사람들이 사는 사회의 시스템이다. 중년이 도전하고, 계속 배워 나가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쉬운 배움이 아니다. 이 책의 교훈, 메시지를 읽으려면 찬찬히 읽어나가면 가능하다. 같은 중년에게도 힘을 줄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도 중년의 중요성과 해야 할 일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번엔 무대 양 끝에서 천사 두 명이 흰 천을 휘날리며 등장했다. 강렬한 레퀴엠과 함께 진혼무가 펼쳐졌다. 판타지 속 인물들 같은 천사들이 떠나가자 3막의 영순이가 무대를 장악했다. 69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은 다름과 같은 극중 인물 영순의 독백으로 강한 울림을 준다.

"사람들이 꼭 뭘 해야만 쓸모가 있고 그래야만 가치가 있는 건 아니라고 믿어요.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네,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믿어요."(p. 69)

 


 

일곱 명의 배우들은 연출부터 스탭, 행정팀의 역할까지 모든 것을 맡아 한다. 군말 없다. 자신이 하지 않으면 누군가 다른 멤버가 해야 할 일이라서 스스로 나서서 일한다. 멤버십 강화에도 좋고 믿음과 사랑이 함께 차곡차곡 쌓여서 서로간에 눈빛만 마주쳐다 할 말이 무엇인지, 뭘 원하는지 알 정도다. 그들 각자의 이력은 별 내세울 게 없다. 그래서 한 글자 한 글자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7명의 배우들의 힘찬 내일을 위한 파이팅을 기원하면서 여기에 싣는다.

 

김영희

내일모레면 예순이 되는 이팔청춘. 어린 나이에 경제적 가장 역할을 짊어지느라 잃어버렸던 호기심과 자유분방함이 갱년기와 함께 대폭발 중이다. 머리 터지게 ‘나’를 찾는 중에도 불굴의 의지로 방송통신대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현재는 논술 과외 선생으로 활약 중. 연극에 발을 내디디며 예술 감수성이 솟아나기 시작했고 몸 연기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 중이다. 연극판에서 만난 사람들이 참 좋아서 오래도록 함께 수작하고 싶단다. 오늘도 시적(詩的) 사진 찍기에 열심이다.

마기원

하얀 얼굴과 긴 목선, 영락없는 여배우의 실루엣에 속으면 안 된다. 그는 언제나 반전을 안겨준다. 화려한 스펙을 떨쳐낸 채 동두천에서 새벽 출근하는 요양보호사로, 고단한 몸 이끌고 연극연습장으로 달려 나오는 건, 역할을 맡아 무대조명을 받는 것보다 동료 배우들 만나는 재미가 더 좋아서란다. 하지만 아나운서 뺨치고도 남을 목소리와 발성, 명확한 감정표현으로 무대 중심을 꿰찼다. 전직 영어 강사로서 뒤풀이 때 주사를 영어로 하는 엉뚱 발랄 캐릭터.

안은영

숨길 수 없는 예술가 기질이 있는 건지 대단히 예민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은 기다려주기,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람이다. 특히, 누군가의 눈이 밝아지고 삶이 달라지는 순간, 황홀해 한다. 10여 년 전의 교통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재활 중에 첫 책 『참 쉬운 시 1 - 무명본색』을 펴냈다. 무모하게 도전하고 꿈을 현실화하는 재주 덕분인지, 54세에 치유적 글쓰기 강사, 표현력UP훈련 강사, 연극연출가, 극작가, 초단편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2020년엔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자로 출연했다.

 


 

윤현정

소싯적에 미스코리아 감이란 소리 좀 들었던 여자. 지금은 외모의 망가짐을 불사하는 연기파 배우로 무대에서 관객의 마음을 훔친다. 일상에선 우아한 화법과 태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오랫동안 가정살림꾼으로만 살다가 쉰 살 다 돼서 연극과 표현의 세계를 만나, 숨어있던 코믹 본능과 미적 감각이 튀어나오는 중이다. 공연 시 의상 및 분장 스텝으로도 활약한다. 1년여의 글쓰기 작업을 통해 눈부신 성장을 보여준 그는 이제 두 번째 도약을 꿈꾼다.

정호정

드러내길 꺼리면서도 조명이나 카메라 앞에선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 NG 없이, 탁월한 생활연기까지 얄미울 정도로 소화해내는 여우과 배우. 하지만 남모르게 엄청난 땀을 흘리는 노력형 여우. 돌직구를 입에 달고 사는데도 주변의 환대와 호감을 퍼담는 예측불허 돌아이 캐릭터. 상상 불가의 독서량을 쌓아온 그는 글쓰기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인다. 여행 에세이와 역사 동화책을 집필 중이다. 천식, 공황장애, 우울증을 앓았지만, 연극을 하면서부터 점점 건강해지고 있다.

최상옥

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해낸다. 그것도 동시에 여러 가지를 용광로 급 열정으로. 치매 시어머니를 10년 넘게 모신 후로는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덕분에 등단 시인, 심리상담사, 치매 가족 전문강사, 사회적기업 직원, 보드게임 강사, 늦깎이 배우 등으로 불리며 펄펄 날아다닌다. 틈틈이 그림동화를 쓰고 산과 들로 놀러 다니는 에너자이저.

나이 오십 넘어 만난 연극무대를 열렬히 사랑한다.

최정주

나이 가늠이 안 되는 외모에 상쾌한 웃음, 세련된 패션 감각까지 갖춘 멋쟁이 중년. 늘 주변을 챙기는 배려의 아이콘이자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두려움 없는 맏언니. 스무 살 이후 20년은 간호사로 또 20년은 전업주부로 지냈다. 이젠 노래, 춤, 악기연주, 운동, 연기, 여행을 사람들과 함께 배우고 누리는 중이다. 연극을 향한 애정으로 누구보다 먼저 대본 암기를 완료하고 연습실엔 일찍 도착한다. 참별난극단 B2S 단장인 그는 배우 송강호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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