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가는 길 1 친정 가는 길 1
정용연 지음 / 비아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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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성차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흔히 돌아오는 답이 있다. 지금과 그때는 다르다는 얘기다. 그런데 정말 지금과 그때는 다를까? 조선 시대는 시집 간 여성을 '출가외인'이라며 친정에서는 식구나 가족이라 생각지 않는다는 말이다. '죽어도 그 집(시집)에서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의 시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분명 여성에 대한 차별이고, 여성을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한 탓일 것이다. 조선 시대는 철저한 유교 사회이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까지 유교 이념 아래서 이뤄졌다. 집안 문제는 말할 것도 없지 않았을까. 유교와 신분 사회인 조선 시대에 우리 여성들은 어떤 마음으로 사회적 관념에 순종하고 살았을까. 생각해보면 끔찍하지만 그렇다고 부당하거나 소외됐다고 느끼진 않았을까. 가족부터 남녀의 성차별은 물론 교육에도 차별을 두었고 관직이나 사회생활에도 심하게 부당한 대우를 방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 여성들은 여성으로 태어난 '숙명'으로 받아들였을 것 같다. 간혹 깨어 있는 여성이 글이나 그림 등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도 이름을 앞세울 수 없었으니 또 얼마나 속앓이를 했을까. 이러한 차별은 여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남성도 철저한 신분 사회에서 큰 뜻이 있어도 제대로 펼 수 없고, 억압과 피해로 못 살겠다고 민심을 합해 봉기해도 '반란'이고 '역적'이다. 정치적으로도 중앙집권제여서 변방은 고생하고 목숨을 걸고 외적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워도 신분이나 가문의 족쇄를 끊을 수 없었다. 지방직 관료도 중앙 관직으로 진출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을 것이다. 작가는 머리말을 통해 이 작품 『친정 가는 길』의 실마리를 가족을 통해 얻었다고 밝힌다. 작가의 가정도 아직 유쿄적 폐습이 남아 있는 현재의 평범한 가족인 것 같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퇴근 후 가사 노동은 온전히 여자의 몫이었다. 단지 남자란 이유로 가사 노동에서 해방된 아버지와 삼촌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 큰형수가 한 살 적고 작은형수가 한 살 많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했다. 기쁘고 슬픈 일을 함께 나누었다. 두 분을 보면서 여자들의 우정에 대해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마음.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그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 믿었다.”

- 머리말 중에서






작중 송심과 숙영이 마주치는 무신경한 말들과 불합리한 요구, 날 선 비난은 지금 읽어도 그리 낯선 내용이 아니다. 송심은 나무랄 데 없이 살림을 이끌어나가는 맏며느리지만 아들을 낳지 못해 눈총을 받는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오빠의 어깨너머로 한자를 깨칠 정도로 총명한 숙영은 무뢰배 같은 남편의 행동에도 말 한마디 얹지 못한 채 속앓이만 한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끊어지지 않은 차별의 고리 속에서 지금과 그때가 다르다는 항변은 뜬구름처럼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작가가 조선 시대를 살았던 두 여성의 이야기를 지금 다시 꺼내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럴 법한’ 시대에서도 『친정 가는 길』의 주인공들은 순응하는 대신 불합리함을 느끼고, 각자의 방법으로 길을 모색한다. 서로의 상처를 돌보며 조금씩 나아가는 두 여성의 이야기는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선명한 의미를 가지고 다가올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 시대 때 시집간 여성이 시댁의 허락을 받아 시집과 친정 중간 지점에서 어머니와 만나는 것을 ‘반보기’라 부른다. 딸이 반을, 어머니가 반을 걸어 가운데에서 만난다. 허락된 시간은 해가 지기 전까지다. ‘출가외인’이라는 말이 당연하던 시대, 결혼한 여성이 원 가족(친정 식구)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흔치 않은 기회로 친정 방문을 허락받은 주인공 ‘송심’은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하다가 연신 종종거리며 일하는 올케를 보고 위화감을 느낀다. 이야기는 그 순간 송심의 내면에서 일어난,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감각. 그 후에도 여전히 ‘시집에선 아무 소리 못 하는’ 송심의 앞에 한자를 막힘없이 읽고 쓰는, 선명한 눈매에 총기가 가득한 동서 ‘숙영’이 나타나면서 송심의 인생은 조금씩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각자 흘러가는 듯하던 소외의 역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꺾이게 되는 시점은 1권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다. 두 여성의 우정을 잔잔하게 쌓아나가며 감정이입을 끌어내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방향을 틀어 '홍경래의 난'이라는 시대의 격랑 가운데로 망설임 없이 빨려 들어간다. 조선의 변방, 서북에서 차별을 참다못한 홍경래가 난을 일으키고,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나 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 틈을 가로지르며 교차점을 만들 때, 결과를 아는 이들은 탄식하는 한편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기대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낡은 역사에 렌즈를 낯선 각도로 놓고 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찾아내는 일은 작가가 전작들을 통해 계속 해왔던 시도다. 서사를 따라 겹겹이 놓인 차별의 면면을 살피는 동안 투박한 듯 섬세한 그림체가 어김없이 묵직한 빛을 발한다.




홍경래의 난 : 19세기 초 홍경래·우군칙(禹君則) 등의 주도로 평안도에서 일어난 농민항쟁(1811년, 순조 12년). 홍경래는 평안북도 용강군 다미면(多美面)의 평민 출신으로 평양 향시를 통과하고 유교와 풍수지리를 익힌 지식인이었다. 입신양명을 위해 한양에서 대과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했다. 당시 한양에서 치뤄지는 대과에서 시골 선비에 대한 차별이 심해 과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평안도 서북출신인 홍경래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초 서북출신들은 고려의 유민으로 구분되어 등용되지 못했고 이후 천한 신분으로 여겨졌다.

이런 현실에 낙담하여 세상을 바꿀 결심을 하는 계기가 됐다. 홍경래는 봉기 10년 전부터 각처를 다니며 사회 실정을 파악하고 동료들을 규합했다. 그리하여 비슷한 성격의 지식인이자 상인인 우군칙, 명망 있는 양반 가문 출신의 지식인 김사용(金士用)·김창시(金昌始), 역노(驛奴) 출신의 부호로서 무과에 급제한 이희저(李禧著), 장사로서 평민 출신의 홍총각(洪總角)과 몰락한 향족(鄕族) 출신의 이제초(李濟初) 등이 최고 지휘부를 구성했다.<아래 사진 포함 두산백과 참조>




만화인 이 책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주인공 송심의 시동생의 종을 겁탈 하는 장면은 또 다른 남자의 위치를 보여준다. 양반이라면 종의 신분인 여성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암묵적 사실의 결과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지금처럼 여성의 인권이니, 성차별 금지 등의 법적 제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온갖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 여성이고 낮은 신분의 여성이다. 씁쓸하고 안타까운 현실임에 틀림없다. 송심의 남편이 과거를 보러간 후 부러진 나뭇가지는 잘못이 생기면 무조건 여자에게 잘못을 떠넘기던 행태가 떠올라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둘째며느리 숙영이 들어오면서 사회에 조금씩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여자의 문밖 출입을 허락받고 하고 싶은 말을 조금씩 하며 글을 읽을 배워 읽고 쓸수 있게 된 것이다. 가뭄이 들어 신공을 줄이자고 말하는 며느리들의 말을 들어주는 시부모님들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책에서나마 느껴져 다행이다싶다. 언문을 배운 송심은 숙영이 쓴 소설을 읽어보며 다시금 글을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해 한다. 하지만 그런 숙영이 친정에 다녀온다며 며칠간 소식이 없자 송심의 남편이 찾으러 간다. 친정에 갔더니 들은 충격적인 소식. 어쩐 일인지 숙영을 찾으러간 남편도 소식이 없이 이번엔 송심이 직접 자신의 동생과 함께 남편을 찾으러 간다. 가산으로 가는길에서 만난 숙영. 대체 숙영에겐 무슨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어떤 일들이 휘물아칠 것이다. 다음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해진다.




저자 : 정용연


멀리 모악산이 바라다보이는 김제 들녘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만화가가 되겠다고 딱히 결심한 적은 없다. 가랑비에 옷 젖듯 어느 날 보니 만화가가 되어 있었다. 데뷔작은 스물네 살 되던 해에 발표한 단편 〈하데스의 밤〉이다. 이후 오랜 공백을 거쳐 출간한 첫 책 《정가네 소사》(전 3권)는 집안 이야기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그린 자전적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2013 부천만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고려 말 제주도에서 일어난 목호의 난을 소재로 그린 《목호의 난: 1374 제주》는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첫 장편 역사만화였다. 글 작가와 협업으로 완성한 《의병장 희순》에서는 조선 최초의 여성 의병장인 윤희순 의사의 삶을 그렸다. 《친정 가는 길》은 조선 후기, 황해도와 평안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여성의 연대기다. 주인공 송심과 숙영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에 맞서는 한편 서북에서 일어난 홍경래군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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