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얼굴은 바뀌고 있다 - 세계적인 법정신의학자가 밝혀낸 악의 근원
라인하르트 할러 지음, 신혜원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 안산이 불안에 떨고 있다. 안산뿐 아니다. 코로나 방역의 피로감을 하소연하는 데도 지치고 힘들어 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불안과 공포, 그리고 분노의 감정까지 폭발적으로 일고 있다. 단 한 사람, 아동 성폭행 혐의로 12년을 복역한 한 범죄자의 출소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오늘(12월 11일) 중앙 일간지 기사를 독자가 조금 바꾸어 쓴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범죄자가 출소한다는 소식에 이어 그의 부인까지 이사왔다는 얘기가 나돌면서 동네 주민들은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시와 경찰은 이 출소자 거주 예정지 주변에 설치된 순찰초소 2곳을 중심으로 무도실무관급 청원경찰 6명 등 12명을 투입해 순찰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출소 직후 24시간 체계로 3명씩 4교대 근무에 들어가기로 방침을 세우고 준비하고 있다. 거주 예정지 방범초소들은 11일부터 24시간 운영된다.

안산시는 인근 8곳에 15대 이상의 폐쇄회로TV를 새로 설치했고, 연말까지 20여대를 추가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출소자 본인도 출소 후 7년간 전자발찌를 착용한 채 전담 보호 관찰관으로부터 24시간 1대1 밀착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시민들의 불안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출소자 행동 하나하나를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만큼 이사를 계획하고 있는 주민들도 많다고 한다.<아래 사진 참조>



특히 출소자 예상 거주지 반경 100m 이내에는 어린이집 1곳, 500m 안에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가 각 1곳씩 있다. 그러나 출소자가 다시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설령 저지른다고 해도 폭행 등 현행법에 어긋나는 행동은 처벌 대상이기 때문에 경계는 몰라도 물리적인 행동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쉽게 얘기하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개인적으로 물리적인 힘을 가해 제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선량한 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법은 모르지만 범죄 피해의 대상이면서도 자구 행위를 선제적으로 해서도 안 된다니 시민들은 그저 불안한 채로 살아가야 하는가. 순찰이나 전자발찌 등으로는 재범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시민들에게 정부 당국이나 경찰 역시 법에 정해진 행위 이외에는 할 수 없으니 시민들 불안을 담보로 그냥 지켜보고 있는 형국이라고 보면 맞는 것 같다. 흉악범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회 안전장치가 제대로 안 돼 있기 때문이라는 형사정책연구원 관계자의 말에 수긍이 간다.





선량한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의무가 있는 국가와 경찰이 한 범죄자의 출소를 앞두고 법에 의존하는 대책 이외에는 할 것이 없는 상태에서 시민들이 불안하지 않은 것이 비정상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무시무시한 폭력이나 살인 사건은 나와 관련이 없는, 그저 뉴스와 신문 등을 통해서나 보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그런 뉴스가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촉각이 곤두서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독자가 판단하는 것은 지나친 의심일까.

다양한 연구를 통해 경악스럽고 충격적이며 엽기적인 사건을 저지른 대부분의 범인이 놀랍게도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책의 『악의 얼굴은 바뀌고 있다』의 저자인 라인하르트 할러 박사는 300명이 넘는 살인 범죄자를 분석하여 악의 근원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로 인해 악의 근원은 병적인 기질과 힘겨운 생활 환경의 영향 속에, 악몽이 된 어린 시절의 경험과 사회적인 비극 속에, 나쁜 본보기와 잘못된 친구로 인한 정신적 각인 속에, 과열된 감정과 범죄 집단의 강압 속에, 전체주의적인 체계의 지배권과 나치들의 자기우월주의 속에, 알코올 중독과 마약으로 인한 혼돈 속에, 무엇보다도 상처 받은 경험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책에는 또 다른 실례로 미국에서의 실험 결과를 언급한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자인 짐바르도는 한 공간을 감옥처럼 꾸며 놓고 24명의 지원자에게 임의적으로 ‘교도관’과 ‘수감자’의 역할을 분배하였다. 놀랄 만큼 짧은 시간 안에 교도관들은 공격적이고 거칠게 변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사디즘적인 학대에 이를 정도로 무분별하게 악용하였다. 그들은 수감자들을 위험할 정도로 함부로 다루었다. 그로 인해 2주로 예정되었던 실험이 6일 만에 중단되었다. 수감자들은 짧은 시간 내에 극도의 적대감과 공격성을 보였고 절망감, 자기 비하 그리고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이 실험을 통해 지극히 평범한 인간도 다양한 요인에 의해 악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책은 여러 범죄 연구와 생생한 범죄 보고서를 통해 인간을 지배하는 악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로 접하게 되는 범죄 사건들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일들이 많다. 특히 우리 사회에는 살인이나 성폭행, 영아와 유아에게 행해지는 끔찍한 폭력 등이 자주 신문에 등장한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잔인하기도 하고, 기상천외한 범죄가 많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참담함과 공포, 그리고 범죄의 흉악성에 몸서리치면서도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 즉, 범죄를 저지르는 일반인이나 심리적, 환경적 요인들이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비난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 살인, 가정 비극, 인터넷 포르노 사진, 대규모 사기뿐만 아니라 '냉혹함, 거부, 냉대, 멸시, 모략, 억압, 이해심 결여와 순수한 이기심'으로 악의 모습을 확대한다면 과연 '나는 악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저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이제는 더 이상 대량 학살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이러한 대량 학살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전쟁에서의 대량 학살도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전시 상황에서는 윤리적, 정치적 동기로 인해 시민 등에 대해 군사적 필요성 없이 원래의 전쟁 행위 이외에 저질러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량 학살 (massacre)은 보복이나 증오, 혹은 혐오의 심리를 기반으로 저질러진 학살이나 만행을 의미한다. 이러한 대량 학살을 자행하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는 전쟁 범죄자 (특히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조사에서 상당 부분이 밝혀졌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대량 학살을 저지른 범죄자는 ‘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며 대부분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물론 비교적 낮은 지능, 야만적인 정서, 사이코 패스 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대량 학살도 있지만 이러한 개인적 성향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규칙적으로 악의적이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생각, 위계적인 명령 구조, 상호적으로 악의를 강화시키는 집단 등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의 마음 안에 숨어 있는 악의 다양한 면모를 분석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그 악을 발현시키는 각종 동기와 원인을 설명하는 책이다.

또한 이미 세상에 나타난 악의 동기와 원인을 자세히 분석하고 파악함으로써 세상에서 발현될 수 있는 잠재적 악에 대한 예측을 통해 에방을 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악’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며 많은 범죄가 생각보다 평범하고 정상적이라 생각되는 사람으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이다. 악은 절대 멈추는 법이 없고 언제나 다양하게 얼굴을 바꾸며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타인과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에 대한 ‘감정이입’과 ‘화해’이다.

저자의 악에 대한 연구는 놀랄 만하고 치밀하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 모두에게 인간에 대한 희망과, 인간임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저자 : 라인하르트 할러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한 대학교수이자 의학박사, 정신과 의사, 심리 치료사이다. 1983년부터 정신의학 전문가로서 여러 나라의 법정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뇌 안에 들어 있는 악의 자리, 병적인 발달과 장애, 감정과 정서의 원초적 힘, 교육의 의미와 집단 영향 등을 연구하였다. 또한 악을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인성을 분석하고, 악의 파괴적 잠재력에 불을 붙이는 사회적 갈등을 연구하였으며, 모든 시대와 문화에 걸쳐 비난받을 만한 행동으로 간주되는 요소들을 표현함으로써 악의 암호를 알아내고자 노력했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범죄학자들의 단체인 범죄학협회 회장직을 맡은 바 있다.


역자 : 신혜원


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학에서 독어학을 전공했다.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상식 밖 문명의 창조자들》, 《12가지 심리 법칙》, 《수족관 속의 아인슈타인》, 《세상을 삼킨 책》, 《템포 템포》, 《활력》, 《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