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 -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
김호기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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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임시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100년사를 독립운동가, 정치지도자, 종교인, 문화예술인, 역사학자 등 60명의 대표 저작을 통해 살핀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이 출간됐다. 한국 현대사를 이끌어온 힘은 무엇인가? 그것의 하나는 바로 지성과 시대정신이었다. 지성이 개인적·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에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를 일깨웠다면, 시대정신은 우리가 서 있는 자리와 가야 할 길을 비췄다. 이 책은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100년 지성사를 종횡무진 누비며, 더욱 풍요롭고 보다 정의로운 미래를 꿈꾸게 했던 60명의 지식인의 삶과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사회학자로서의 저자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기억과 그 의미를 전승하기 위해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독자는 이 점에 공감했다. 다만 아무도 저자에게 60인을 선정할 권리를 준 것이 아닌데 저자의 의지에 따라 쓴 책의 기준이 누구나 설득할 만한 근거가 될 수 있겠는가라는 점에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저자도 가장 큰 고민이 바로 이 부분임을 밝혔다.





저자가 이념적, 학문적, 역사적 균형감각을 가지고 지난 100년 우리 현대사를 대표하는 60명의 지식인과 책을 선정했다면 일단 인정하고 읽은 다음 평가할 일이긴 하다. 그러나 독자도 일면식도 없는 학자에게 근거 없이 설득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독자의 판단을 도와줄 저자의 이력과 전작(前作) 등을 통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뜻하지 않게 저자가 지금까지 쓴 책 중 몇 권을 알아내 저술 취지나 저술 내용, 출간 이후 평가 등을 중심으로 대략만 파악했다.

『세상을 뒤흔든 사상』, 『예술로 만난 사회』, 『탈냉전사의 인식』, 『한국 시민사회의 성찰』 등 4권이 그것이다. 대부분 저자의 저작이고 다른 분과 공동저작도 있다. 독자의 판단이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저자가 끊임없이 근현대 대한민국 사회의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배우고 연구해 이번 책을 낸 것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고민의 흔적은 이 책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에서 60명의 인물과 대표작을 선정하는 데 그대로 반영된다. 보수와 진보, 인문학과 사회과학, 예술과 자연과학, 국내와 해외에서의 연구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과 그들의 대표작을 담아낸 것이다. 여운형의 『조선 독립의 당위성』, 박정희의 『국가와 혁명과 나』,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까지 다뤘다.





흥미로운 점은 60명의 인물 중 몇몇은 지식인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이승만, 김구, 안창호, 여운형,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에게는 독립운동가 또는 정치가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 지식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역사적 존재로서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들의 삶과 사상은 민족독립과 해방, 산업화와 민주화, 세계화와 정보사회라는 대한민국 100년의 과거와 미래를 밝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지난 100년 대한민국의 역사는 전진과 후퇴가 공존했다. 그리고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미래에는 불투명성과 불확실성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개인과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성찰하고 전망하는 지성과 시대정신이 비로소 빛을 발하는 법이다. 지금 우리를 있게 한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을 기다리지 않았다.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고, 먼저 행동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이 남긴 사상을 공부하고 미래를 밝혀가야 할 차례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난 100년 우리 현대 지성의 고투에 대한 기억을 오롯이 사유한다면 미래 100년을 향한 새로운 용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렇게 이 책은 1947년 출간된 김구의 『백범일지』부터 2000년대 이후 출간된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까지 소개하고 있다. 해방공간의 화두였던 새로운 나라 만들기에서 시작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서 세계화 시대 신자유주의 비판까지, 우리 사회의 선 자리와 갈 길을 탐색하는 데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은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의 실존적 기억과 집합적 기억을 자세히 살펴본다. 지식인 역시 특정한 시대를 살아갔던 개인이다. 사랑과 미움, 성공과 좌절, 고독과 연대에 대한 개인으로서의 지식인의 실존적 기억을 읽으며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충실한 삶을 향해 전진하게 된다. 또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식인의 사상은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우리는 지식인들이 기록하고 사유한 집합적 기억을 공유함으로써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끌어가기 위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60명의 지식인에 대한 동료와 후대 학자들의 기록과 평가다. 역사학자 서중석이 기록한 김구의 삶, 시인 정지용이 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 서문, 사회학자 김귀옥이 평가한 이은숙의 독립운동은 우리 역사에 헌신했던 이들에 대한 시대의 예의를 기억하게 한다.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문제적 인간’ 이광수, 여전히 공과 과가 엇갈리는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후대 학자의 평가는 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념적, 학문적, 역사적 균형감각을 가지고 지식인 60명과 그들의 책을 선정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독립운동가와 정치가였던 김구, 안창호, 이은숙, 여운형의 삶과 시대정신을 살펴봄으로써 현대 한국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출발점을 기록했다.

최장집과 박세일, 정운찬과 장하준 등 정치학자와 경제학자의 사상을 알면 우리 현대사를 한층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산업화와 민주화, 분단과 통일, 법과 제도, 사회구조와 문화변동, 페미니즘과 생태학에 관한 지식과 통찰은 우리 사회가 더욱 평화롭고 민주적인 공화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한편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족주의, 동북아시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해외에서의 연구는 우리 사회가 더욱 공정하고 풍요로운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지성의 역사를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독점할 순 없다”는 저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에는 예술, 자연과학, 역사학의 지식인과 그들의 사상이 폭넓게 담겨 있다. 한용운, 이육사, 윤동주, 김수영, 박경리, 최인훈, 조세희, 박완서, 박노해, 한강 등 한국 작가들의 역동적인 삶과 개성 있는 작품 세계는 흔치 않은 재미를 선사한다. “예술은 사회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타자와 공유할 수 있는 공감과 연대를 선물한다”는 점에서 현대 한국 지성이 남긴 또 하나의 커다란 성취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위기에 처해 있다. 밖으로는 미중 신냉전과 팬데믹이 야기한 자국우선주의와 세계 경제위기가 걱정이다. 안으로는 시민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적대하고, 사회양극화와 소득불평등의 불만이 치솟는다.

역설적으로 이런 때야말로 우리는 60명의 지식인과 그들의 사상 그리고 시대정신에서 지혜와 용기를 얻어야 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에게 부여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잊어서는 안 될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승하는 것이다”라고 이 책의 집필 의도를 밝혔다. 100년 우리 현대 지성의 고투와 기억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100년을 열어갈 용기를 안겨줄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다. ‘100년의 기억’은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들이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우리 공동체를 민주공화국으로 일궈낸 사상의 기억이다. ‘100년의 미래’는 경제·사회적으로 완전한 선진국을 이룩하고 인류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문화국가로 나아갈 시간을 가리킨다. 사회학자인 저자에게도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우리 시대 60명 지식인의 삶과 사상은 우리 사회가 더 정의롭고 더 풍요로운 내일로 향하는 길을 비춰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여운형이 도달한 결론은 좌우합작이었다. 그의 파트너는 김규식이었다. (…) 임시정부를 수립한 후 신탁통치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자는 데 두 사람은 합의함으로써 우파 민족주의, 좌파 사회주의와 다른 제3의 길을 모색했다. (…) 정치사회에서 중도는 양날의 칼이다. 한편에선 단순한 절충의 위험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이념 대립을 완충하고 통합을 모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여운형과 김규식의 좌우합작이 우리 현대사에서 안겨주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4. 여운형: 《조선 독립의 당위성 (외)》과 중도의 미래」 중에서


이광수의 민족주의를 그렇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광수의 민족주의에는 일종의 정치적 무의식이 담겨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광수에게 일본 제국주의는 애증병존의 대상이었다. 다시 말해, 일본은 식민적 억압의 주체인 동시에 선진적 문명의 모델이었다. 이런 내면의 애증병존, 달리 말해 정신적 양가감정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표출된다. 이광수의 경우 그 표출이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독립운동으로 나타났지만, 후기에는 친일에의 길로 드러났다.

「16. 이광수: 《민족개조론》과 근대성의 미래 ①」 중에서



《채식주의자》를 읽을 수 있는 코드들은 에코페미니즘 시각을 포함해 여럿일 수 있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사회학적 시각이다. 이 연작은 육식을 거부하고 나무가 되길 꿈꾸는, 영혜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성의 삶을 다룬다. (…) 위의 글은 영혜의 독백이다. 여기서 육식은 존재의 사회적 조건을 은유한다. 육식의 대척에 놓인 나무는 존재의 실존적 소망을 은유한다. 사회학적 시각에서 볼 때, 육식이 폭력과 규율로 무장된 가부장 사회이자 후기현대사회를 상징한다면, 나무는 그 폭력과 규율에 맞서 존재가 갈구하는 평화와 해방의 세계를 함의한다.

「24. 한강: 《채식주의자》와 예술의 미래」 중에서


《역사 앞에서》는 그 부제인 ‘한 사학자의 6·25일기’가 보여주듯 ‘기록의 역사학’이다. 한국전쟁의 한가운데서 김성칠은 전쟁과 인간, 전쟁과 사회의 모습을 일기로 생생히 남겨뒀다. (…) 지식인이 자기 시대를 정직하게 기록하는 것은 작지 않은 용기를 요구한다. 《역사 앞에서》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2002년 그 일부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림으로써 그의 이름은 더욱 널리 알려졌다.

「26. 김성칠: 《역사 앞에서》와 기억의 미래 ②」 중에서



박정희와 그의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광복 이후 우리 현대사를 다루는 인문·사회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그동안 학술 토론을 비롯해 개인 회고, 정치 비사, 소설화 또는 영화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조명돼왔다. 박정희 개인에 대한 평가 역시 ‘민족의 영웅’에서 ‘독재의 원조’에 이르기까지 다각도로 이뤄져 왔다. 이러한 풍경은 ‘개인적 존재’로서의 박정희는 1979년에 사망했으나 ‘역사적 존재’로서의 박정희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32. 박정희: 《국가와 혁명과 나》와 보수의 미래」 중에서


시대정신이 한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의 집약이라면, 노무현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 사는 세상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나라가 아닌 ‘함께 사는 사회’와 ‘더불어 사는 국가’를 추구한다. 함께, 그리고 더불어 사는 국가와 시민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의 바탕 위에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라는 점을 노무현은 강조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2009년 5월 그는 돌연 우리 곁을 떠났다.

「35. 노무현: 《진보의 미래》와 진보의 미래」 중에서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들 가운데 이 장의 주인공 안승준은 대중에게 가장 덜 알려진 사람일 것이다. 자신의 학문 세계를 제대로 펼쳐 보이지 못한 채 스물다섯의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의 전공을 어떻게 봐야 할까. 철학을 거쳐 사회생태학과 인류학을 공부했으니 생태학 연구자라 하는 게 좋을 것으로 보인다. 안승준이 바로 그 청년이다.

안승준을 다루는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우리 현대 지성사에 서 그는 생태학적 계몽의 선구자라 부를 만하다. (…) 둘째, 그의 삶이 안겨주는 감동이다.

「51. 안승준: 《국가에서 공동체로》와 공동체의 미래 ①」 중에서


장하준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경제학적 생각들에 의문을 표한다. 예를 들어, 재산권 보호가 경제발전의 전제이고, 적극적 산업정책은 결국 경제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신자유주의가 경제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는 가정들에 대해 그는 역사적 진실을 파헤침으로써 그 통념들에 이의를 제기한다.

「60. 장하준: 《사다리 걷어차기》와 세계화의 미래」 중에서



저자 : 김호기


1960년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독일 빌레펠트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UCLA 사회학과 및 Center for Korean Studies 방문학자를 지냈으며,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자 좋은 정책포럼 운영위원장, 한국정치사회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으며,『시민과 세계』등 여러 잡지 편집에 참여하고 있다.

쓴 책으로는 『현대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한국의 현대성과 사회변동』, 『한국의 시민사회, 현실과 유토피아 사이에서』, 『말, 권력, 지식인』, 『세계화 시대의 시대정신』 엮은 책으로는 『현대 비판사회이론의 흐름』, 『한국 시민사회의 성찰』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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