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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새 책을 볼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표지'이다.
사실 띠지의 추천사들은 잔치상에 건네는 덕담처럼 여겼었다.
(어떤 정신나간 출판사가 별 볼일 없다는 추천사를 띠지를 만들어서까지 책에 둘러주겠는가. 책의 띠지에 관한 한 노이즈마케팅은 '금서'를 제외하곤 없을 듯...)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표지가 곧 이야기이다.
표지에 등장하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 십자고상,
사색에 빠졌거나, 무엇인가를 갈구하거나, 지치거나 슬퍼보이는 인간들,
언뜻 보아서는 인간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고릴라 한 마리
여행가방, 차, 바람에 잔뜩 꺾인 황량한 가지를 달고 있는 나무까지 보면
구비구비 산자락처럼 겹겹이 쌓아올린 이 여정의 첫 시작에
가만히 앞을 응시하고 서 있는 작은 아이의 그림자까지 발견하게 된다면
당신은 눈썰미가 매우 좋은 편이거나 인내심이 아주 강한 편일 것이다.
표지를 감상하며 책 속의 이야기를 마주할 설렘을 즐기는 나도
<파이 이야기>의 얀 마텔이 새로 출간한 장편소설이라는 점만으로도
그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이야기 스타일이 어떻게 펼쳐졌을지 궁금했고
표지를 스윽- 훑어본다음, 냅다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시간과 공간이 모두 다른 각각의 소설은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어느새 시공간과 주인공들의 사연이 판타지처럼 엮이게 된다.
각자의 큰 상처를 가진 세 사람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오르려한다.
한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과 아들, 아버지를 며칠 간격으로 차례로 잃는다.
그는 자신에게 불행세트를 떠맡겨버린 신에게 반항하고자 거꾸로 걷는다.
그러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율리시스 신부의 일기장을 읽게 되고
거기에 나온 십자고상을 찾아, 이베리아 코뿔소가 마지막으로 존재했다던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떠난다.
애거서 크리스티 덕후이며, 병리학자인 남자가 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사고로 어이없이 잃었다.
새해가 되던 밤, 마치 유령처럼 죽은 아내가 남자를 찾아오고
둘은 종교와 믿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남편의 시신을 들고 먼 곳에서 노부인이 찾아온다.
노부인은 자신을 집에 보내달라고 한다. 그녀의 집은 남편의 시신 안이다.
캐나다 상원의원인 남자가 있다. 역시 아내와 사별했다.
미국의 영쟝류 연구소를 방문한 그는 그곳에서 침팬지 한 마리를 만나게 된다.
무언가 강하게 끌리는 감정을 느낀 그는 큰 돈을 들여 연구소로부터 침팬지를
사고, 그 침팬지와 교감하며 자신의 고향인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예배당에 있던 십자고상을 발견하고, 침팬지는 이베리아 코뿔소를 본다.
각각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재미나고 유쾌하기까지 하며 흥미롭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의 전반에 흐르는 정서는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상실감,
애통함, 결핍과 슬픔이다.
그 슬픔의 묘사는, 소설가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탐구만큼 섬세하고
믿음이라는 불가해한 현상과 상실을 넘어선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뚜벅뚜벅 각자의 방식으로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오르는 이야기는
소소하고 일상적이지만 묵직한 철학이 담겨있어 곱씹어 읽을 때마다
그 맛이 새롭고, 발견하게 되는 생각도 다채로워졌다.
책을 읽다보니 띠지의 말이 허세로운 공치사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신형철씨의 말에 공감한다.
이 책은 읽는 중에 다시 읽고 싶어지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표지가 곧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