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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스토어
그래디 헨드릭스 지음, 신윤경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표지 위에 <호러스토어>란 제목과 그 옆에 무심하게 붙어 있는 노란색 포스트잇의 문구.
휴가도 승진도 없는 무시무시한 지옥문이 열린다.
분명 무시무시해야할 포스트잇의 경고는, 그러나, 너무나도 일상적인 이야기에다
휴가가 끝난 이 시점에, 가슴에 깊이 박히는 말이어서 그렇게 유심히 보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공포영화의 경고문구와 알람은 괜히 붙이거나 울리는 것이 아니며
모든 탐정소설에서 범죄의 실마리와 이야기의 복선은 초반에 촘촘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져져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상기하게 된다.
표지와 책 날개에 있는 작가의 소개는 유명한 가구브랜드 000 매장의 카탈로그를 떠올리게 한다.
가정용 수납 솔루션 부분의 직원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작가, 그래디 헨드릭스는 작가의 이력에다 '초심리학 연구 기관에서 몇 년간 전화 상담 업무를 맡았고, 현재 오르스크 맨해튼 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다'라고 적어놓아 작픔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트린다.
좀비처럼 비척비척 일터로 걸어들어가는 직장인들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소설의 처음.
커피를 마시기 전까지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그들은 노동용 연료가 주입되자마자
자기에게 주어진 일들을 시간 안에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목표 하나만 가지고
하루를 산다.
대형가구판매점 오르스크에서 일하는 주인공 에이미는 동료애도 없고, 실적도 오르지 않으며 최근 매장 내 제품의 계속된 파손으로 손실까지 있는 지점에서 늘 탈출을 꿈꾸지만, 그녀의 발목을 잡는 것은 역시 먹고사니즘.
어느 날, 전시 상품이 파손으로 끝나지 않고 오물까지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한 부지점장 베이즐은 에이미와 루스 앤에게 추가수당을 '현금'으로 주겠다고 제안하며 대신 그 날 밤 함께 경비를 서자고 제안한다. -이 쓸데없는 디테일!!! ^^-
의욕도 없고 새로 와서 자신에게 잔소리만 퍼붓는 베이즐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오르스크에서 벗어나 앉아서 일하는 직업을 가지길 꿈꾸며 제안을 수락하는 에이미는, 그렇게 어마어마한 모험(?)과 위험에 발을 들이게 된다.
낮의 익숙했던 공간이,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불이 꺼진 뒤 스산한 느낌을 주며 횅댕그렁하게 다가오고 반항적인 성격의 에이미와 회사에 충성스러운 직원 루스 앤, 그리고 그들의 안전은 자기 책임이라는 부지점장 베이즐의 단순했던 야간 순찰 업무가 초자연 측정 장비를 가지고 유령 사냥을 나선 트리니티와 맷을 만나며 오르스크가게 터에 숨겨진 비밀의 늪으로 점차 빠지게 되고 독자들도 괴상하게 발랄한 이야기에 순식간에 몰입하게 된다.
공포영화와 탐정소설의 자세한 줄거리는, 스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줄거리 소개는 여기서 끝!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에게 익숙했던 공간들을 갑자기 휘휘- 둘러보게 되었다.
분명, 공포에 풍자를 담은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이 소설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럴 법한 사람들과 상황이 충분히 내가 사는 이곳에서도 매일 펼쳐지는 일상이란 것 때문이다.
극 초반에 나왔던 좀비를 닮은 직원들의 모습이, 오르스크 매장의 비밀 속 존재들의 모습과 겹쳐지고
자신이 '선택'한다고 착각을 하며 자기를 억누르는 시스템과 억압자의 쳇바퀴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생기와 에너지, 삶을 빼앗기는 책 속의 상황이 책 속에서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자각이 들 때 진짜 공포가 시작되는 느낌을 받았다.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교묘하게 무너트리는 작가의 영리한 설정과 이야기의 짜임새가
놀라울 정도로 매력적인 새로운 형태의 공포소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