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일요일들 - 여름의 기억 빛의 편지
정혜윤 지음 / 로고폴리스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다른 책은 책의 앞장을 찍지만 이 책은 책의 뒷장을 찍고 싶었다.


그 시간은 어느날 문득 우리를 찾아온다. (... 중략)

잘 마른 빨래와 낯익은 침대 냄새 속에 그 시간이 있다.(....중략)


관대한 그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슬픔과 근심을 잊고 회복되는 것 하나뿐이다.

그 시간 속을 지나고 나면

우리는 달라진 모습으로

세상을 다시 마주할 힘을 얻는다.


일요일이 저물때마다, 세상의 번잡스러움과 고집스러움, 

도통 나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는 세상으로 다시 내뱉어지는 것이 두려워진다.

또, 월요일에 내가 만날 사람들은 얼마나 날 괴롭힐(?)까? 언제까지 날 가만 놔두질 않을까.. 하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괴로워지기도 한다. 

(적어도 요즘의 나는 그랬다. 솔직히 말하면 책을 읽고 나서인 지금도 그렇다..ㅠ 인생.. 쉽지 않아.....)


나를 괴롭히기로(?)되어 있는 사람들도 모두, 이런 일요일을 지나고 온 사람들일텐데...

그럼 나도 그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괴롭힐(?) 사람이겠군...


이럴때,

마냥 청량해 보이진 않는 에메랄드빛을 쪼개고 회색 빛이 비춰들어오는 듯한 책을 만났다.

<인생의 일요일들>

부제는 여름의 기억/빛의 편지 이다.


CBS라디오 PD이자 에세이스트 정혜윤씨가 낸 책이다.

팔자좋은(?) 자유스러운 것 같은 방송국 사람이 쓴 여행에세이겠거니 했는데

작가 소개가 참 남다르다.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침대와 책>을 시작으로 독서에세이, 여행에세이, 동시대 사람들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가 담긴 에세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내적인 삶을 담은 르포르타주 에세이 등등을 써냈고, 세월호 유족들,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성 짙은 국내외 라디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다수의 작품상도 받은 사람이다.


심지어 이 책의 시작도, 이름은 알지만 일면식은 없었던 사람과의 업무차 메일에서 시작된 것이다. 

업무 메일로 접한 사람이 숲에 자주 간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일 이야기보다 숲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서 청하는 사람.

그리고 그만큼 좋은 글로 답해주고 싶은 생각에, 매주 토요일, 일요일마다 자기 안의 좋은 이야기를 뽑아서 썼던 것을 모은 책.


왠지, 

눈물이 났다.


사실 별처럼 흩어져 제각각 반짝이는 사람들 하나하나에겐

각자의 이야기와 좋아하는 것, 슬펐던 것, 행복했던 것, 그저 편안했던 순간들이 있었을텐데

난 그 사람들의 그 이야기를 궁금해하지도 않았구나.

그저, 나의 반짝이는 것들의 빛을 잃게 만드는 일상의 지루함 혹은 빡빡함이라고만 생각했구나...


39개의 일요일의 편지엔

작가가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 다른 시간의 이야기들, 신화와 그 속의 신 또는 그들과 엮인 운명들, 풍경과 햇살들, 이들과의 조우로 발견한 자신 속에 있었던 감수성들이 차곡차곡 곱게 접혀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세상 끝'은 위도와 경도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어요. 할아버지는 세상 끝은 경계라고 했어요. 동물과 인간의 경계, 금지와 허용의 경계, 분리와 연결의 경계, 저도 몇가지 경계를 덧붙이고 싶어요.

 인간적 온기 속에 있고 싶은 마음과 고독하고 싶은 마음의 경계, 나이고 싶은 마음과 나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뛰어넘고 싶은 마음의 경계,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과 떠나고 싶은 마음의 경계, 표현하고 싶은 마음과 조용히 숨고 싶은 마음의 경계, 안정되고 싶은 마음과 자유롭고 싶은 마음의 경계, ... 저는 이 모순들과 잘 지내보고 싶어요.

p.186


세상의 모습에 놀랄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을 잊을 줄 아는 거란다. 자신에 붙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p.188


그리스의 현재 "폐허"에서 "불멸"을 만나고 그들의 특별한 순간들을 상상하고 꿈꿔보고 

자신의 일상을 반추해보는 작가는, 자신이 만나는 현재의 사람들의 일상들에도 

노을같은 마음을 보여준다.

때론 격렬하게 타오르는 듯한 붉음이, 아련한 보라빛이, 

시새워하는 주황색이, 해피해피한 핑크가, 희망을 아직 품고 있는 노란색이 다 저물고 나서 

별처럼 떠오르는 <인생의 일요일들>의 편지들 '제목'들 중 몇가지는

이미 내 마음속에 별자리처럼 박혀있다 ^^ 

 

가장 아름다운 것에 둘러싸이는 것이 최고의 테라피임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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