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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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오스터의 유작 <바움가트너>를 읽었다.

폴 오스터를 좋아하는,

폴 오스터로 인해 소설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에게 아쉬움과 '상실', 그리고 슬픔을 경험하게 하는 유작.



그리고 소설의 내용도

'상실'을 겪고 있는 70대 철학과 교수의 삶에 관한 것이다.

책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바움가트너는 서재, 코지토리엄, 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는 자신의 2층 방 책상에

앉아 있다.

p.5 <바움가트너>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매우 일상적인 공간으로 덥썩 독자들을 들여다 놓은 뒤

주인공 바움가트너의 머리 속에서 중구난방으로 떠오르는 생각과

그에 못지 않은 정돈되지 못한 일상과 우당탕탕 행동들이

그야말로 VR체험처럼 몸에 스며들게 만든다.

사실, 폴 오스터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명한 작품들의 이름은 들어도 보았지만 딱히 끌리진 않았다.

언제나, 읽으려고 하면 당연히 읽을 수 있겠지- 하다가

불현듯 독서 절벽에서 떨어져 꼼짝없이 널부러져 있었다.

겨우겨우 활자가 눈과 손과 머리에 잡히는 시기에

가만히 스며드는 이 이야기를 만나게 된 것은

2025년을 지나와 2026년이 내민 손을 잡는 기분이다.

이 소설은 상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의 결을 따라가게 한다.

바움가트너는 아내 안나를 잃은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으며,

그 삶은 생각보다 예측할 수 없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이 소설은 이상하게도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사람은 슬픔 속에서도 밥을 먹고,

물건을 떨어뜨리고,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 반복이 곧 삶이라는 사실을 아리게 새겨준다.

‘바움가트너’라는 이름이 ‘정원사’라는 뜻을 가진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정원사는 시간을 들여 현재를 돌보고 미래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바움가트너는 상실을 극복하려 애쓰기보다는,

상실과 슬픔을 삶 속에 그대로 둔 채 조금씩 적응해 나간다.

소설 속에서 ‘정원’이 가지는 의미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정원은 생명과 소멸이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무엇인가 자라고, 또 사라지며, 그 모든 과정이 반복된다.

과거를 붙잡지 않고 변화를 애써 막지 않아

새로움은 익숙하게 스며들었다가 자기만의 색을 드러낸다.



바움가트너의 삶 역시 그러하다.

아내는 떠났지만,

그녀와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남아 있다.

읽는 내내 인물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흘러가는 방식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했다.

어떤 기억은 갑자기 튀어나오고,

어떤 감정은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며,

일상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 작품은 슬픔을 과장하지도,

극복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실 이후의 삶을

이렇게 자연스럽고도 절제된 방식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폴 오스터의 역량이 독서의 시간 동안 짜릿하게 관통한다.

읽는 동안 여러 번, 인물의 감정이 이상하리만큼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이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시간과 경험을 떠올리고 있기도 했다.

어쩌면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생애의 언젠가는 맞닥뜨리고 느끼며

종국에는 품고 가게 될,

나에게는 너무나도 특별하지만 모두에게는 너무 흔한

그런 감정을 건드리는 이야기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Aqua를 들으며

이 리뷰를 쓰고 있다.

폴 오스터를 추모하며 <굿바이, 폴>을 수록한

소설가 김연수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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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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