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매우 일상적인 공간으로 덥썩 독자들을 들여다 놓은 뒤
주인공 바움가트너의 머리 속에서 중구난방으로 떠오르는 생각과
그에 못지 않은 정돈되지 못한 일상과 우당탕탕 행동들이
그야말로 VR체험처럼 몸에 스며들게 만든다.
사실, 폴 오스터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명한 작품들의 이름은 들어도 보았지만 딱히 끌리진 않았다.
언제나, 읽으려고 하면 당연히 읽을 수 있겠지- 하다가
불현듯 독서 절벽에서 떨어져 꼼짝없이 널부러져 있었다.
겨우겨우 활자가 눈과 손과 머리에 잡히는 시기에
가만히 스며드는 이 이야기를 만나게 된 것은
2025년을 지나와 2026년이 내민 손을 잡는 기분이다.
이 소설은 상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의 결을 따라가게 한다.
바움가트너는 아내 안나를 잃은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으며,
그 삶은 생각보다 예측할 수 없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이 소설은 이상하게도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사람은 슬픔 속에서도 밥을 먹고,
물건을 떨어뜨리고,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