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싸부 - Chinese Restaurant From 1984
김자령 지음 / 시월이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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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 싸부>라는 책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도대체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건담'과 '싸부' 그리고 (싸부랑은 좀 어울리는) '중식당'이라니.

책을 펴기 전에는 건담이 일본의 거대로봇을 뜻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1949년, 공산당과 국민당의 격전 속에 할아버지가 사라지고

주인공 두위광의 아버지는 아기 위광을 업고 산둥 옌타이에서 인천으로 건너왔다.

한국인 어머니를 둔 덕(?)에 공산당이 주민들의 해외 이전을 금지하기 직전에

대탈출 러시의 흐름을 탔고, 연고가 있던 한국으로 온 것이다.

졸지에 아무것도 없이 맨 땅에서 생존해야하는 위광의 아버지는 

평생 배 곯을 일 없이, 실컷 먹고 살라는 기원을 담아 아들의 이름을 '찌엔딴(건담)'으로 불렀고

어머니는 한국어로 뜻을 담아 '대식아'라고 부르며 함께 기원을 더했다.

남들이 불러주는 것이 자기 이름인 줄 알고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했기에

두위광은 11살에 학교를 그만 둘 때까지 자기 이름을 '대식아'로 알았고

어렸을 때 이름을 담아 자기 이름을 건 중국집을 열게 된 것이다.

주인공의 이름과 중식당의 이름과 명성에 얽힌 사연을 수타면처럼 뽑아내는 솜씨가

가히 한 왕조나 국가를 세운 역사책을 읽는 것 마냥 장엄하기까지 하다.


주인공 이외의 등장 인물들의 면면도 이에 질세라 참신하다.

누구 하나 독특한 면모가 빠지지 않고 각자의 사연이 궁금하게 잘 설정되어 있어,

이 책의 작가가 괜히 단막극과 장편영화로 신인상, 최우수상, 1등상을 탄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얼핏 마동석 아저씨가 단발머리로 비주얼 쇼크를 크게 준 영화 <시동>도 연상되기도 ^^)



챕터별 제목을 읽으면 중원에서 각자의 정의를 가지고 합을 겨루는 무협지도 생각난다.

익숙한 한국어와 옛날 맛이 나는 한자어에 조금 낯선 중국어의 음차,화교용어까지 

초식을 펼치듯 이야기의 구석구석에서 훅훅 튀어나오는 바람에

한글 소설이지만 번역된 외국 소설을 읽는 기분도 들어 기분좋은 모호함을 느낄 수 있다.


첫 장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묘사하는 글을 눈으로 읽는데

자동으로 머리 속에서 (마치 <친절한 금자씨>처럼) 나레이션이 재생된다.

시적이기도 하고, 엄숙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말에 녹아있는 주인공의 성격과 특성이 

생생히 전달되는 VR같은 소설이다. 


말맛과 글맛의 향연이 펼쳐질 것을 약속하는 시작이기도 하다.



한국의 역사가 이야기에 녹아있지만 실제(사실)을 조금씩 비틀어 넣음으로써

현실과 가상에 한 발씩 걸치고 있는 (여기서는 영화 <헌트>가 생각나기도) 영리한 설정으로

독자는 속절없이, 이 낯선 인물들에 몰입해가게 된다.


한 때 청와대에서 요리를 받아가고 좀 산다 하는 사람들의 행사에 빠지지 않던 

일반 중식당 최초로 미슐랭 별을 받았던 유명 중식당의, 

요리신을 믿으며 오로지 몰입과 정성으로 환상의 맛을 구현하던 요리사 두위광이

맛과 향을 잃어가도, 과거 자신이 자신일 수 있었던 -그래서 성공도 했던- 

변하지 않으려는 고집과 그에 따른 괴팍한 성격, 당연히 수반되는 주위 사람과의 불화를,

자신감, 실력, 평생을 바친 중식당을 잃었을 때 비로소 맞닥뜨리게 되는 

주방 밖의 세계에 발 디디며 어떻게 풀어내고 성장하는지 지켜보는 과정을

찰떡같이 완급 조절하며 전달하는 훌륭한 이야기꾼의 목소리로 듣는 기분이다.


분명 장편소설로 분류되었고 형식도 그에 맞지만 대본집을 읽는 기분이 든다.


이거 드라마화는 안될까? 보고 싶다. 이왕이면 시즌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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