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의 정원
아나톨 프랑스 지음, 이민주 옮김 / B612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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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어쩌면 낭만적이고 귀족적(?)으로도 느껴진다.

그리고 첫 페이지에서 만난 첫 줄은 확증편향(!)을 주기도 한다.


향긋한 숨을 내쉬는 그리스 정원은 꽃피우는 지혜의 초록빛 그늘로 나를 감싸네.

-<베르길리우스 별록>중 '시리스' 제3구와 제4구


한가롭게, 꽃과 향기로운 풀이 가득한 정원을 거닐면서

땀내나고 때가 끼는 현실과는 사뭇 떨어진 관념과 철학을 얘기하는 고상함이 가득하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의 저자 아나톨 프랑스에 대해 잘 몰랐다.

띠지에 있는 '신의 반열에 오르기보다 인간으로 남고자 한'라는 표현에서 

조금 위화감을 느꼈고,

역시 띠지에 있는 -이쯤되면 나에게 이 띠지는 책의 바이럴/역선동 마케팅이었던가 싶다;;-  

"아파한다는 것, 이 얼마나 신비롭고 신성한가! 

 우리가 가진 모든 선함,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 모든 것은 다 고통이다." 의 문구에서

중2병인가, 하는 선입견도 생겼다.


저자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펭귄의 섬>을 읽어보지 못한 무식쟁이  독자로

형이상학적, 관념적이며 다소 허세가 묻어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아나톨 프랑스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배웠던 '드레퓌스 사건'을 말해야 한다.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으며 왕정을 끝낸 민중의 힘, 프랑스 대혁명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던 프랑스의 정부, 지식인, 시민들이 여전히,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잘못된 일을 인정하고 바로잡지 못하며

국익을 위해서, 혹은 다수의 생각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의견이나 진실은 묻어버리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를 기꺼이 뭉개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게 만든 사건이 드레퓌스 사건*이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유대인 사관 드레퓌스의 간첩 혐의를 둘러싸고 

  정치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사건

  1894년 10월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포병대위 A.드레퓌스가 독일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비공개 군법회의에 의해 종신유형의 판결을 받았다.  

   파리의 독일대사관에서 몰래 빼내온 정보 서류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필적과 비슷하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었으나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이 혐의를 짙게 하였던 것이다.*


-출처: 두산백과


아나톨 프랑스는 드레퓌스를 옹호한 에밀 졸라가 석연찮은 죽음을 맞이하자

그의 장례식에서 '진실과 정의의 수호자에게 바치는 경의'라는 글을 통해 

드레퓌스 사건을 조사한 사람이기도 하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제정, 왕정복고, 공화국 그리고 식민제국으로서의 프랑스를 겪고

프랑스의 정치와 종교 분리 원칙이 확립되어가는 시기에 활동한 아나톨 프랑스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철학자, 소설가, 비평가로서

또한 그리스 로마 고전 및 프랑스 문학, 철학의 고전에 정통한 고전주의자로서

가치와 체제, 관념과 시대관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고 새로운 형태를 자리잡기까지

인간의 욕망, 감정, 사유, 도덕, 이상의 추구가 날것으로 꿈틀대는 시기를 살아간 사람이다.


이 책의 목록에서 짐작할 수 있듯, 

종교와 철학, 문학과 정치, 야만과 문명, 기적, 종말론-어느 시대나 있구나, 종말론은...-

여성의 지위, 삶과 죽음, 미학과 문자, 현실 등 방대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에 대해

어렵게 풀자면 한도 끝도 없을 사유를 정원을 거닐며 친구와 담소를 나누듯이

친절하고 나긋나긋하게 풀어서 써내려간 점이 과연, '명상록'이라는 분류를 가능하게 한다.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고 기어이 성공한 혁명가들이 

후대가 혁명에 나서고 싶어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기득권자가 되어

구체제의 모순을 반복하는 일들이 낯설지가 않다.


팔은 안으로 굽고,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일들을 미사여구와 궤변으로 반대하며

어느새 변화하는 세계를 온몸으로 막으며 거부하는 일들이 남의 일이 아니다.




왜 '우리의 정원을 가꾸자'는 볼테르의 말을 인용했는지 이해가 간다.

나부터도, 정원을 가꾸듯 매일 보살피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어느새 잔뜩 낀 이끼에 안락함을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백년 전, 유럽 땅의 사유가 오늘날 한국에 번역되어 널리 읽히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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