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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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었던 어린 시절에는 그 내용을 거의 이해한 줄 알았었다.


순수하고 엉뚱한 제제를 왜 식구들이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지,

제제가 유일하게 마음을 나눈 대상들과 차례로,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이별하고

영혼, 마음, 정신, 육체적으로 큰 상처를 받고 열이 올라 끙끙 거리는 제제만 보였는데,

조금 더 크고 나서 읽어보니 제제가 처한 환경 자체가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제가 아이같은 구김살 없고 거짓과 사실이 악의 없이 섞여 있는 말이나 행동이 

이미 스스로의 삶도 힘들고 생계를 위해 현실적이며 서러운 선택도 감당해야하는 

제제의 가족들에게는 한가롭고 팔자좋아 버럭- 화가 났을 수도 있겠다는 상태에 이르자

둘리보다 고길동이 더 안타까워진 생활형 인간이 되어버린건가, 싶은 자조감도 느꼈다.


제제와 성장한 어른들에게 다시 한번 다가온 [우주를 삼킨 소년]의 엘리는,

그런 생활형_어른버전이 장착되고, 과몰입을 잘하는 독자의 눈과 마음으로 만나기에는 

매우 어렵고 도전적인 캐릭터였다. (힘들었단 얘기다...)


심지어 작가 트렌트 돌턴이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데뷔작인 이 소설을 썼다는

책날개의 설명을 읽었을 때는, 이건 진짜 <인간극장>에 나올 일이 아닌가- 싶었다.



아내와 소원해졌던 아빠는 아이들과 캠핑을 가기 위해 운전하던 중 

'공황'을 겪고 댐에 부딪히는 사고를 내 아이들을 큰 위험에 빠뜨린 과거가 있다.

자신의 잘못과 잘 풀리지 않는 삶으로 결국 아내와 아이들과 헤어져

하는 일이라고는 하루 동안 필 담배를 아침에 말아놓고 책 읽고 술 마시는 아빠.


변호사까지 꿈꿨지만 애인을 통해 마약을 접하게 된 뒤 헤로인 중독에 빠지고

결국 마약거래상으로까지 전락한 엄마는 여전히 그 애인과 함께 지내고 있다.


엄마의 애인인 라일은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유명한 문구가

그를 대표하는 한 마디라고 뽑아도 될 서사를 가진 캐릭터이다.

엄마 프랜시스를 마약으로 인도하여 인생을 꼬아놓고 함께 마약을 팔았지만

엘리와 형이 오거스트를 진심으로 대하고 염려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형인 오거스트는 말을 하지 않는다. 소통을 완전히 거부한 것은 아니어도

허공에 암호처럼 메시지를 끄적이는 말을 이해하는 것은 오로지 엘리 뿐이다.

엄마도 아빠도, 어른으로서 엘리를 제대로 보호하고 양육하지 못하는데

오거스트는 엘리의 옆에서 엘리를 지켜주고 엄마도 돌보는 존재다.


여기까지 적는데도 마음이 갑갑해진다.

사회보호를 받아야 하는 가정이고 방치, 학대적 환경에 처한 아이들의 상황은

경찰에 곧 신고라도 해야할 것만 같다. 

(여기서 다시금, 경악하게 된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니...)



제제에게 뽀르뚜까 아저씨가 있었다면

엘리에게는 아서 슬림 할리데이 할아버지가 있다.

이 분은 누구시냐- 악명 높은 전설의 탈옥수인 70대 노인이다. 

슬림 할아버지에게도 숨겨진 사연이 있는데 그건 여기서 밝히지 않을 것이다.

엘리와 오거스트를 챙겨주는 이 할아버지는 형제들에게 질문하고, 신경쓰는 

거의 유일하게 제대로 된 어른 노릇을 하는 존재이다.


무엇보다 형제들의 마음의 방향이 어디로 갈 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슬림 덕분에 사람들에겐 선과 악이 공존하며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기준이나 평가가 아닌, 그 사람이 보여준 사랑과 관심의 크기라는 것을

엘리는 마음 깊이 새기고 또 사랑을 잃지 않는다.



작가는 자극적으로만 묘사할 수 있는 각 캐릭터들의 이야기와 감정을 

매우 섬세하게 여러 층을 덧칠하고 각자가 정교하고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서로의 삶에 영향력을 미치는 과정을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엘리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교류하는 과정 및

세상을 바라보고 성장하는 이야기에 깊이 몰입하고 공감하며 응원하게 만든다.


책장을 덮으며 엘리의 이야기와도 인사를 했지만

어른의 역할에 대해, 그리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는 아이들에 대해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생각해보게 만든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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