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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는 취향을 가꾸고 있습니다 - 차생활자가 전하는 열두 달의 차 레시피
여인선 지음, 이현재 사진 / 길벗 / 2020년 11월
평점 :

집에선 안 마셔도, 사무실에 가면 꼭- 마치 일과마냥 믹스커피를 타 마신다.
물을 끓이는 동안 머그잔을 준비하고, 대기업의 연구원들이 고심끝에 비율을 맞춘
노란색의 길다란 봉투에 있는 믹스를 탈탈 털어서 한 톨이라도(!) 버려지지 않게 하고
(설탕 조절 부분이 분명 있지만, 애초에 그만큼의 설탕을 넣은 것은 이유가 있다.)
무심하게 툭- 커팅해서 (이지커팅 생각하신 분, 적게 일하고 많이 버소서~)
좌르륵- 머그 안으로 쏟아내면 한 잔 정도의 물은 이미 끓어있다.
이 때가 믹스애호가가 가장 신경을 쓸 때.
물 조절을 해서 간을 제대로 맞추지 않으면 이 모든 과정을 새로 해야 한다.
아니면 점심에 먹을 커피를 미리 땡겨와서 2잔 분량의 가루를 넣어야 한다....
뜨거운 물을 만난 커피, 프림, 설탕이 휘휘 저어지며 섞이면
처음 본 사람들은 흙탕물 같다고도 하지만 아는 사람은 더없이 고운
한 잔의 여유가 되어 내 손에 온기를 더한다.
하지만 따끈-한 그 타이밍을 전화나 갑작스런 메신저로 놓치게 되면
뒷맛이 썩 개운치않고 들척지근한 커피를 꿀꺽꿀꺽- 마실 수 밖에.
사무실에서 나에게는 전투식량(!)이자 일의 시작을 알리는 시계인 믹스 커피.
그런데 그 대열에서 홀로 고요하게 차를 우리는 분이 계시다.
좁은 책상이지만 조촐한 다구를 들여놓고 쪼르륵- 소리도 어여쁘게 물을 붓고
뜨거운 것은 뜨거운 대로의 맛으로, 조금 식으면 또 식은 뒤의 맛으로
아예 식어서 물과 비슷하게 되면 또 그 맛으로 드신다는 차.
예쁜 도구도 많고 차를 마실 때 장난감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차를 다 드시고 난 다음 쓱싹쓱싹- 정리하시는 것도 재밌어서 관심이 생겼더랬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차는 정말이지 취향이라는 것을.

취향은 갈고 닦아야 한다.
그래서 안목을 길러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내가 좋아하고 나에게 맞는 것을 찾기 위해 도전과 모험을 해야하고,
안주하지 않기 위해 호기심과 배우려는 마음을 갖고 이런저런 시도도 해야한다.
즉 아끼는 마음이 없다면 차 뿐만 아니라 어느 무엇에라도 취향은 생기지 않는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이라는 마음이나 온갖 msg에 무뎌진 혀가
차에게 가는 관심을 멀어지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를 좋아하는 분이 계신 덕분에 옆에서 홀짝홀짝 마시며
차알못이 보기엔 그저 마른 풀떼기(죄송;;)로 밖에 보이지 않는 각종 차들을 구경하고
냄새도 천천히 맡아보고 뜨거운 물을 만나 풀떼기(다시 한번 죄송;) 피어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하니, 놀랍게도 바쁜 와중에 '틈'과 '여유'가 생겼다.


이래서 차를 마시는구나.
차에 관심이 생겨도 은근 진입장벽이 높은 초보에게
<차라는 취향을 가꾸고 있습니다>는 주눅들게 하지 않는 친절한 가이드가 된다.
저자 여인선님은 홈베이킹, 기타 등 취미 유목민으로 살다가 차에 푹 빠졌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맞추고 사느라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파악한 것은
서른이 넘어서 되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겉보기에 둥글둥글해도 속으로 민감하고 예민한 자신에게
'차'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다고 말하며 물이 바뀌어도 맛이 달라지는
미묘하고도 섬세한 차의 세계가 예민한 성격을 가진 자신에게 오히려 맞았다며
차를 준비하고 우리고 기다렸다 마시며 맛을 음미하는 그 모든 시간들이
잠시 멈춤.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을 정비하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라는 솔깃-한 이야기를 자분자분해준다.
차를 마시기 위해 필요한 다구를 소개하고
차를 준비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아름답게 사진으로 찍은 분은
영화 연출이 본업인 이현재님이다.
역시 이 분도 조급한 자신이 현재에 머무를 수 있게 잡아준 것이 차. 라며
차에 대한 애정과 예찬을 솜씨좋게 사진으로 담아낸다.
언론계에서 일하는 저자의 글과 영화 연출 전문가가 찍은 사진은
너무나도 차다운 에피소드와 함께 확실한 존재감으로 차를 부각시키고
차를 소개하고, 자신이 마신 차에 대한 tasting note를 남겨놓아
글로만 그 맛과 향을 상상하게 되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기분좋게 자극한다.

아마도 나는 믹스를 보내주지 못하겠지만, 차 선배가 내려주는 차 맛을 음미하며
고요하게 몰입하며 잠시 세상과 거리를 두는 차에 대한 매력에도
기꺼이 빠져들 준비가 된 듯 하다.
그러고보니, 차와 친해지기 좋은 겨울이 점점 깊어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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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