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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
이미화 지음 / 인디고(글담)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에는 친구들과 필통 구경하기가 재미있었다.
다이어리나 수첩처럼 내밀하고 개인적인 것들은 '혼자만의 것으로 넣어둬-' 지만
똑같은 수업을 들어도 필기구가 달라지면 기억도, 경험도, 지식도 달라지는 기분. ^^
조금 커서는 in my bag 시리즈로 갈아탔다.
학교에서 벗어나 각자의 일터에서 시간을 보내니, 필통을 대신할 것이 등장한 것이다.
가방 속에 매일 함께 가지고 다니는 물건들을 보면서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애착, 일상, 노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노동요로 쓰기 좋은 노래를 추천해달라고 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거나 나쁘거나, 뭐라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오묘할 때
어떤 영화나 책, 음식을 곁에 두는지도 궁금했다.

따라쟁이는 아니지만,
나와 비슷한 것들을 비슷한 감정을 겪을 때 곁에 두었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괜히 반갑고 내적 친밀감이 +1만큼 올라가곤 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추천하는 것들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한 생각이 들어
목록처럼 만들어두고, 그 감정이 찾아오면 '드디어! 이 상자를 열 때인가!' 하며
새로운, 그러나 왠지 익숙할 세계로 다이빙하기 위해 숨을 고르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 이미화는 이런 평범함을 인생 영화의 한꼭지로 풀어내는 사람이다.
물론 영화 뿐만 아니라, 책이나 음악이나 이런저런 문화'상품'들로
대중들에게 공개된 것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그 많은 작품들 중에서 각자의 마음 속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며 나무로 자라는
'인생작'을 만나고 가꾸어 나가는 것은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영화는, 보편적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저자가 풀어놓는 사연은 색의 농도와 채도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레이어가 조금씩 겹쳐지는 경험은 책을 읽는 도중에 불쑥 보편적으로 떠오른다.

한편으로, 쉬이 흘러가 버릴 수도 있는 그런 감정과 생각들을
역시나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작품과 연결시켜 깊고 진하게 숙성시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섬세한 작가의 면모를 드러낸다.
책을 읽다보면 글자가 말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도 그랬다.
적당히 무심하게, 적당히 내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가만가만 말하는
종이 너머의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감정을 증폭시키지 않아도 스며들게 하는 글을 편안하게 읽는 기분이 좋았다.

+글만큼 인상적인 일러스트.
몽환적이다, 환상적이다, 동화책같다,라는 말로 밖에 표현이 안되는 일러스트가
때로는 글보다 더 오래도록 눈을 머무르게 했다.
평일 저녁에 읽어두고, 주말에 추천작을 몰아보는 즐거움은 덤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