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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코붱(김연정) 지음 / SISO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운전할 때 종종 듣는 친절한 이 말은, 흠칫- 나를 놀라게 한다.
이미 경로 변경이 어려운 차선에 진입하여 긴가민가-하며
혹시 지도를 제대로 본 것일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를 깔끔하게 없애준다.
그것도 이미 그 길에 접어 들었을 때.
책 제목이 정말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김연정이라는 이름보다 코붱이라는 닉네임을 먼저 소개한 저자는
첫 회사 3년 10개월, 두 번째 회사 1년, 세 번째 회사 3개월, 마지막 회사 9개월의
화려한 '퇴사러'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백수라이터' 이다.
회사에 몸과 영혼을 갈아바치고도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자리를 떠나게 되고
결혼과 출국으로 소위 '경단'의 시간 후 직업을 찾기 위해 노력도 했으나
결국 내린 결론은 "그동안 많이 힘들었으니 쉰다" 이다.


목차만 봐도, 건강을 해치고 자존감까지 갉아먹은 회사에서 탈출해서
브런치 플랫폼과 '부엉이 상담소'를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글쓰기)을 하며
책을 낸 저자의 우여곡절이 전체경로로 보인다.
이쯤에서 '그동안 힘들었으니 쉰다'라는 퇴사의 이유는
'모아둔 돈이 있었나', '경제적으로 도움받을 여유가 있나', '자아실현?' 같은
부러움과 의문을 스르르- 녹여버린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자와 비슷한 직장이라는 세계관을 공유했을 것 같다.
대기업/중소기업/외국계기업/유망분야 등등 남들이 보기에 어떤지 몰라도,
어디가 되었든 그곳에 취직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 (대입부터 시작해서!)
그리고 광탈, 2차 심사 탈락, 면접 탈락, 계약직 후 전환 같은 냉정한 평가를 겪으면서
그동안은 몰랐던 나라는 사람의 '경제적 가치'나 사회적 지위가 매겨지는 경험은
씁쓸하게 남고 더더욱 회사와 직장만이 살 곳이라는 강한 공포를 심어준다.

매년 나이 들어감에 따라 착실하게 학년이 올라가는 학창시절과는 달리,
사회생활은 때론, 제자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진땀이 날 만큼 힘들다.
힘들게 얻은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무리해서 일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무리해서 감정 노동을 하고,
남들의 평가와 기준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삶은 '나중에'라고 미뤄놓는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괴로워하지만 결코 내려올 수 없는 트랙 위에서
저자는 경로를 이탈하여 고유한 길을 찾아 나섰다.
앞서 지나간 사람들이 밟아놓아 평탄하지도 않고,
때론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로등도 없이!) 컴컴해서 두렵지만
자기의 인생을 곰곰히 들여다보고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불안감을 떠안는 선택을 하는 삶.
아무나 따라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누구나 해야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회사만 바라보고,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을 고스란히 내어주다가
더이상 회사에서 쓸모가 없는 -그런데 연차가 높아 돈은 많이 나가는-
그런 존재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할까?
미리미리 뚝심을 키우며 꿈을 목표로 바꾸어 현실로 만들어간다면
경로를 이탈했다는 경고를 떨지않고 받아들이며
자기만의 속도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방법도 생긴다는 것을
저자 코붱님은 자신의 경험을 기꺼이 나누며 독자들에게 얘기해준다.
나이, 경력, 자산.
숫자가 말해주고 숫자로 인해 제약받는 것도 있지만
그것만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님을 늘 잊지 말아야겠다.
현재 직장인이든, 자영업을 하든, 소속이 없는 백수든,
24시간을 똑같이 받아 사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야하는 질문같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