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공장
엘리자베스 맥닐 지음, 박설영 옮김 / B612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이 책이 TV드라마 판권이 계약되었는지 알겠다.

<인형공장>속의 캐릭터들은 각자의 입장이 뚜렷하여 매력적이고 

할당된 페이지에서 서로가 만나 스토리를 얽어가고 있지만

각각의 스토리와 감정선을 조금 더 파고들어 알고 싶게 한다.


저자 엘리자베스 맥닐은 스코틀랜드 태생으로 런던 동부에 거주하는 도예가이다.

영국에서 주류는 아닌 곳 태생으로, 영국의 핵심에서 예술을 하는 여성으로서의 삶이

<인형공장>의 캐릭터에게서 언뜻 비추어 보이는 것은, 이 역시 편견일까?


아니.

그러기엔 저자가 프롤로그에 고백한 말이 (책을 다 읽은 뒤 읽었지만) 묵직하다.

열살, 휴가 차 부모님과 함께 간 런던에서 만난 존 밀레이의 <오필리아>


세밀한 꽃들이 떠 있는 연못, 생생한 색감 속 물에 빠져 죽은 비극적인 여인.

오필리아의 수동적인 아름다움에 완전히 사로잡힌 저자는

곧 라파엘전파형제회에 관한 책과 시를 찾고 읽으며 남성 화가들의 이름을 익히고

결국 그들이 그린 그림 속의 여인들에게 흥미를 느껴 빠져들게 됩니다.


강렬한 뮤즈가 되었지만 뮤즈로 그쳐버린 여성 예술가.

그들의 삶과 예술에 미친 영향, 그리고 세월 속에서 투명하게 지워져가는 것들이

생계를 책임지는 것과, 자신의 재능을 펼치는 것을 양립할 수 없었던 그들의 고뇌가,

그저 공감과 상상만으로 그치지 않은 결과가 이 책 <인형공장>이다.


수집에 집착하던 1850년대 런던.

3만평의 땅에 거대한 임시 박물관으로 만들어 

무언가를 소유하고, 자신이 소유한 것을 자랑스레 전시하고 싶은 욕망이 들끓던 곳.

그곳에서 화가가 되기를 열망하는 재능있는 젊은 여자 아이리스.

그녀를 수집하고 싶어하고 집착하는 마음으로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하는 사일러스.

얼굴의 상처가 세상에서 숨게 만들고, 그래서 더욱 동생에게 집착하는 로즈는

'여자'라는 존재가 그 시대에 -그리고 어쩌면 지금까지도- 어떤 '당위'로 

규정되고 틀에 가두어 놓았는지를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캐릭터라고 느껴졌다.



아름다운 얼굴, 날씬한 몸매에 부서질 것 같은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말을 하지 못하는 조용한 인형.

두는 곳에 놓여지고, 움직이는 사람의 손에 의해서만 '생동'을 갖는 존재.

새롭고 더 아름다운 인형이 나온다면 수집가의 컬렉션으로 남을 뿐

세상에 드러나는 기회를 빼앗기게 되는 그 '인형'이 만들어지는 공장에서 일하는

주인공 아이리스는 도자기 인형의 얼굴과 손만 그리던 곳에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자유를 갈망하며, 또한 자유로운 삶을 위해 탈출한다.



그저, 자기가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곳곳에 부비트랩처럼 숨겨져 있는 호의를 가장한 위험을 피해서

목숨을 걸고 기민하게 움직여야 겨우 손으로 만질 수 있고

긴장하고 투쟁하며 살아야만 겨우 맛이나마 볼 수 있는 귀중한 것임을 

소름끼치게 '현실감'있게 알려주는 이유는

이 책의 주인공 아이리스는 끝내 <오필리아>의 모델처럼 순탄치 않은 삶을 산

엘리자베스 시달이라는 여성 예술가를 모티브로 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자 판매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가 '절세미인'이라고 지목당하고 나서야

버터 포장지에 스케치를 하던 그녀의 재능이 당대의 젊은 남성화가 집단과 

-당시 매춘부와 다름 없는 취급을 받았던- '모델'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타협적으로나마 세상에 나올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 아이리스라는 캐릭터로

구체적으로 글로 적혀 있는 것을 읽는 내내 씁쓸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남성지배적인 사회에서 소수자에 해당하는 어느 누구라도 

자기의 자리를 찾는 것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자신의 업적을 남기는 것도

목숨을 건 용기를 내어주고도 얻기 어려운 아주아주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니.

<인형공장> 제목이 새삼 묵직하게 다가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