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에쿠니 가오리. 는 이미 하나의 브랜드이다.


그 이름을 입밖에 소리로 만들어 낼 때 함께 드는 생각은

청아함, 여리여리하지만 강단있음, 조금 특이한 맛과 모양의 사랑. 같은 것들이다.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소설만 읽었던 나에게

새로운 느낌을 준 책이다.


가녀린 외형에 뚝심있는 성격을 가진 주인공이 떠오르는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에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들어가 있을지 궁금했었던 적이 없었는데

(왜 그랬을까? 그저 그런 주인공의 모습이 묘하게 비현실적이어서 그랬을까..)

이 책은 가상의 인물이 아닌, 에쿠니 가오리가 '읽고, 쓰는 것'을 묶어낸 것으로

에세이와 짧은 소설이 섞여 있어 더더욱, 주인공과 작가의 모습에 경계가 희미하다.


작가가 이곳저곳에 발표한 글들을 수집하여 편집해서 책으로 만들어 낸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특별히 작가의 팬이 아닌 이상 

빼놓지 않고 챙겨볼 수 없었던 그의 글쓰기를 주제 (쓰기, 읽기, 그 주변)별로 모아

한번에 읽을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챕터 1'쓰기'에 비해 2배나 되는 챕터 2 '읽기'는 

글을 쓰는 작가가 독자, 혹은 자연인으로 가지는 감정과 기분을 느낄 수 있는데다

챕터 3 '그 주변'에서의 감성이 풍부한 생활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가교의 역할을 해준다.


작품으로 만나는 유명한 작가의 모습이 아니라, 

작가로서 사는 에쿠니 가오리라는 사람을 만나며 

그 사람의 일상과 좋아하는 것, 그 사람의 친구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국가와 인종을 뛰어넘는 친밀함을 느낄 수 있달까?


2009년의 일기 중 2시간씩 목욕을 하고, 씨 없는 포도를 먹고,

개와 산책을 하는 루틴과 함께 하나씩 둘씩 생기고 사라지는 일상을 

(공유하고자 기꺼이 출판해 준) 읽으며 사람의 하루에 대해 생각해보고,


일본과 우리나라, (다른 나라까지는 잘 모르겠다;)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의 시작은 교과서를 만드는 곳에서 출간하는 

<<나는 교실>>이라는 잡지에 직업도 없는 알바생이 여행을 떠나기 전 보냈던

'모모코'라는 짧은 글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며

누구에게나 있는 뽀시래기 시절을 떠올려도 보고,


하나의 일을 꾸준히 하다 어느덧 20년이 된 사람의 

그냥 지나가긴 아쉽지만 크게 대단한 일은 아닌 것 같아 어색한 소회나

영어를 외국어로 사용하는 나라의 사람으로서의 동질감도,



갸녀린 이미지로만 만났던 작가의 

생각보다 씩씩하고 인장처럼 새겨진 서정성이 감도는 어린 시절의 모습도 만나보면

지금까지 내가 알았다고 생각하던 작가의 모습이 훨씬 입체적이고 낯설게 느껴진다.

그 낯섬이 호기심과 동질감 사이의 어디를 맴도는 기분좋은 탐험이 되게 하는 것은

역시나 에쿠니 가오리의 독자의 마음을 섬세하게 물들여가는 감정의 흐름 일 것이다.



2018년 2월에 책이 나온 소회를 적은 에쿠니 가오리의 글이 책 뒤에 실렸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흩어져 있던 자신의 일상을 다시 들여다보다

읽고 쓰며 산다는 것을 순수하게 느낄 수 있다고 느낀 책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충분히 읽고 생각하고 느끼다 그 감정을 조금씩 흘려내어

세상으로 흐르는 작은 시냇물을 만드는 것 같은 작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2020년 거리두기로 집 안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이 시대의 모습을

낭만이 가득한 제목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로 묶어낸 

출판사의 센스가 더욱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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