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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부드러움
마리옹 파욜 지음, 이세진 옮김 / 북스토리 / 2020년 5월
평점 :
이 책으로 처음 이 작가를 만났다.
호기심의 시작은 제목이었다.
<돌의 부드러움>이라니.

어떻게 돌이 부드러울 수 있지?
어떤 책과 영화는 '트레일러'나 '예고편', '책소개' 조차도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본체를 만나기 전, 애써 피하며 기다림을 즐기게 한다.
이 책 <돌의 부드러움>도 그런 책이었다.
제목과 섬세한 펜화에 끌려 책을 받아 들었을 때의 묵직함이 인상적이다.
두꺼운 하드커버에는 아주아주아주 가늘고 촘촘하게 표현된 돌덩어리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것처럼 식탁에 꽂혀있었다.
가족들은 그 돌덩어리를 보고도 놀라워하지도, 그렇다고 심드렁하지도 않은 표정이다.
가족들이 계곡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첫 장면에서만 해도
다음 페이지에 이런 글이 나올 줄은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다.

"아빠의 허파 한쪽을 묻었다" p.9

기묘했다. 뭐지?
책을 읽어가며 알게 되었다.
이 책은 SF나 동화같이 묘사되었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며 철학적인 이야기였다.
아마도 아빠는 처음에는 폐가 아팠으리라.
폐가 아파 코를 떼어내 목에 붙이고, 허파를 여행가방처럼 들고 다니는 모습이
어떤 상황을 연상하게 하는지 아는 것이 조금 서글펐다.

서글퍼하기에는 너무 일렀다는 것을, 역시 책을 읽어가며 알게 되었다.
아빠의 병이 진행될수록, 아빠가 변화했고 가족도 그에 맞추어 변해갔다.
가족보다 자기 고객, 자기 사업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돌' 같던 아빠가
집안의 '막둥이'가 되고, 집안 식구들은 막둥이의 손과 발, 입이 되었다.
아빠는 '막둥이'에서 '왕'이 되고 때때로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마치 군대처럼 집안을 휘젓고 가기도 하고
그때마다 가족들은 '완벽한' 가족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생명체가 성장하고 활발히 에너지를 뿜어내다 병에 걸리거나 다쳐서
그로부터 회복해 다시 살아가거나 혹은 결국에는 '죽음'으로 세상과 이별하는 것은
생로병사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이자 -슬프게도- 정해진 수순이지만,
인간의 경우, 특히 가족의 경우, 그 과정을 모두 함께 그리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겪어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 경험을 해 본 사람도 있겠지만
이렇게 철학적으로, 담담하게 읽자니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과 생각이 들었다.
저자 마리옹 파욜이 암에 걸린 아버지의 투병과 죽음의 과정,
그 길을 함께 걸었지만 아직 길 위에 남아있는 가족의 마음으로
자신이 알고 있었던 아버지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발견하고 알아가며
그것이 또 자신의 삶에 흔적과 영향을 남긴 경험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냈다.

그림이 주는 느낌과 기분, 글이 주는 생각과 감정이 시너지를 이뤄내는 기분이었다.
미술적인 감흥과, 철학적인 사유를 동시에 하게 만드는 책을 어찌 분류해야할까?
미술일반/교양으로 분류된 <돌의 부드러움>은 단어로 한정짓기에는
너무 아쉬울 정도로 장르를 넘나들며 만족감과 묵직한 감동을 준다.
서로에게 조금씩 있던 조각들을,
훨씬- 나중이지만 날려보내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이 책은 아픈 가족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꾹꾹 눌러담은 모두에게
조용히 강한 공감과 위로를 보내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