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거울나라의 앨리스 (패브릭 양장) - 1871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손인혜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책소개를 보자마자 저 질감을 손으로 얼른 느껴보고 싶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거울나라의 앨리스> 초판본.

원작의 삽화가 고스란히 실려있는 것은 물론이다. 

거기에 1871년 오리지널 표지를 살린 패브릭 양장이라니!

앨리스를 좋아하고, 책을 사랑하는 덕후들의 마음을 아주- 제대로 파악한 기획이 아닐까? ^^

이래서 책이 있어도 또 지갑은 열리고야 마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의향이 충분히 있으니, 이런 기획을 계속- 끊임없이- 진행시켜주길 바랄 뿐:)


작가 루이스 캐럴은 옥스퍼드 대학교의 '수학' 교수였다.

수줍음이 많고, 전형적인 학자였던 그가 당대 최고의 아동문학가로 등단하게 된 계기가

재미있고, 의아스럽기도 하다. (혹은 직장인으로서 공감가는 부분도 생겼다 ㅎ)

대학 학장인 리델의 집에 찾아갔다가 -그러니까 직장 상사- 

어린 세 딸을 만나 들려준 이야기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상상을 뛰어넘은, 그야말로 '이상함'의 총집합이라 그 우스꽝스러움에 깔깔대다가도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논리적이지 않아보이는 말들이 묘하게 철학적이기도 하여

읽을 수록 '이거 동화 맞아?' 싶은 감상을 느끼게 하는 그의 이야기는 

그래서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도 연령에 상관없이 '좋아요'를 외칠 수 밖에 없는 

고전으로 남았나보다.

-그리고 '앨리스'는 작가 루이스 캐럴이 평생 사랑했던 리델의 둘째딸 이름이라고;-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1869년 크리스마스가 배경이다.

지난번 '이상한 나라'에 뚱딴지같이 빠져들어갔을 때는 화창한 여름날이었는데

이제는 겨울에 '거울나라'에 들어가게 된 앨리스.

체스판 처럼 생긴 '거울나라'에는 지난 여름 '이상한 나라'에서 나왔던 캐릭터들,

즉 붉은 여왕, 하얀 여왕, 삼월토끼, 모자장수 등이 반갑게 등장한다.



"너의 길이라니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구나. 여기 있는 모든 길은 내 길이니라.

 그런데 넌 여기에 왜 왔느냐?" p.39


"대답할 말을 생각하는 동안 무릎을 구부리고 절을 하거라.

 그러면 시간이 절약될 테니 말이다." p.39


영국인의 안 웃긴데 웃긴 농담이나, 격식과 잔소리가 꼰대스러워 더 재밌는 언어 유희가

사실 한국어로 번역할 때 고스란히 담기기는 어려울 법도 하다.

말장난, 문화적 배경, 패러디(!) 같은 잔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점은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스 캐럴의 독특한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은 

글로벌하게 어필하는 매력이 가득하다.

 

추운 겨울날, 아기 고양이와 놀면서 거울나라를 얘기하던 앨리스는

거울을 통과해서 거울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7살 앨리스의 두번째 모험은 '이상한 나라'의 후속편의 성격보다는 

체스판 위에서 감정과 행동이 반대로 움직이는 신비로운 세계관인 '거울나라'로 

독자들을 단숨에 몰입시킨다.




"가장 예쁜 건 항상 멀리 있어!" p.108


동화의 매력은 이런 것이 아닐까?

어렸을 때 읽었을 때는 몰랐던 감정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을 때 알게 된다는 점!

시간이 흘러 세상을 경험한 어른인 저자가 보물지도처럼 곳곳에 숨겨 둔 생각과 감정들을

하나씩 발견하며 공감하는 즐거움, 곱씹어 생각하며 페이지를 바로바로 못 넘기는 아쉬움이

독자가 문득, 자신이 '나이'를 먹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살짝 사무치는(!) 감정으로 책을 읽다가 '나이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만났다.

ㅎㅎㅎ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툭툭- 튀어나오는 이 재치스러움과 황당할만큼 자유로운 추상적임은

루이스 캐럴이 수줍음이 많았다는 사람들의 평가가 과연 진짜일까, 

사람들은 루이스 캐럴에서 속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답 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체스판의 끝에 다달아 여왕이 되기까지의 여정은 

'거울나라'라는 특징상 원래 품었던 마음이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과는 반대의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자기의 틀 안에 갇혀서 도통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언뜻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추어 보이는 것 같다.


쓰여있는 그대로의 의미가 아닌 글자나

졸이 여왕이 될 수도 있는 체스의 규칙, 

같은 장소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처럼 달려야 하며

앞에 있는 것을 보고 쫓아갔지만 뒤에서 만나게 되는 공간의 왜곡,

어제와 내일은 오늘이 될 수 없고

미래와 과거가 함께 존재해서 결과가 원인보다 먼저 나오기도 하는 시간을 가진 거울나라.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예측불허 대사와 엉뚱하고 대담한 앨리스의 티키타카,

책 곳곳에 등장하는 '시'들은 과연 원서로 읽으면 어떤 맛이 날까? 하는 

위험한(!) 궁금증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 


다행히(!)  출판사의 각주로 언어유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고

더불어 원서로 읽었으면 답 못찾을 문화적 배경에 대해 알 수 있어서 고맙다. 

책 뒤에 실린 작품 해설은 저자의 생애에 대한 정보를 주어 스토리의 색을 더해준다.


이 세계관에서 영감을 얻어 (혹은 세계관을 빌려오고 싶은 욕망으로) 미디어로 선보인

몇몇 작품들이 책을 읽는 동안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도 재미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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