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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도 인생이니까 - 주말만 기다리지 않는 삶을 위해
김신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평점 :

연휴에 이 책을 다시 설렁설렁 읽고 있다.
'주말만 기다리지 않는 삶을 위해' 라는 부제가 제목 위에 붙어 있지만
주말보다 더 좋은 연휴를 -비록 어디 못 가고 있지만- 보내며 읽는 책은
나의 마음에 더더욱 여유와 느긋함을 안겨준다.
<평일도 인생이니까>는 김신지 작가의 에세이다.
그는 스스로를 '최선을 덜 하는 삶을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마음에 든다.
누구나, 누구에게나 '최선을 다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듣고 자라게 되는데
그렇게까지 자신을 갈아넣으며 애쓰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다고 진심으로 말해주는 사람은
의외로 만나기 어렵다.
그리고 그 사람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더더욱 힘들다.
뭐라도 열심히 하면 봐주고, 점수도 주어가며 '열심'과 '최선'을 독려하는 학창시절이나
내 노력, 혹은 요행으로 노력보다 좋은 성과를 얻고도 그게 오롯이 내 성과인 줄 착각하다
노력 그 이상의 받침대와 디딤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대학시절과 사회초년생 시절을 거쳐서
인생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나이가 되면
오로지 나에게만 꽂혀있던 나의 관심과 우주관이 조금씩 허물어지며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계속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에 따른 새로운 방식으로 갈아탈 것인가.
소위 '열심' '최선' '열정' '노력'을 다하며 살아온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나태, 안일, 무기력, 무덤덤으로 빠지는 것과 동일하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나름의 결심과 결단, 그리고 용기가 필요했다.
'나'라고 믿어왔던 삶의 방식을 바꿀 때 '나 다움'을 잃지 않을까-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시시하다고 -마음대로 섣불리- 생각했던 삶을 살지 않을까-하는
두려움과 허무함,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작가의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나도 얼기설기 묻어두고 봉합해두었던, 찝찝했던 감정이
이 문장을 보고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저자는 상당히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다.
이 책의 추천사에서 김신지 작가를 정말 잘 표현한 말이 있다.
' 여러 모양의 초라함을 아는 사람,
재능 있는 친구 뒤에서 박수를 치는 사람,
자꾸자꾸 비어가는 마음을 가까스로 채우며 자라온 사람,
내 맘 같지 않은 평일이 익숙한 사람,
나무가 사계절을 어떻게 견디는지 골똘히 보는 사람,
기다리는 마음을 연습하는 사람'
왠지 좀 쓸쓸하게도 보이지만, 책의 꽤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강한 웃음과 기발함 뒤에는
언뜻언뜻 관조적이고 예민하며 섬세한 저자의 모습이 포착된다.
마냥 활기차고 밝은 사람-들이 어디 있겠느냐마는-에게서 보다는
삶의 굴곡을 지나며 넘어져도 보고, 주저앉아 쉬어가기도 했던 '짬바'에서 나오는 바이브.
굴곡진 부분을 만나면 '롤러코스터를 탈 땐가!' 라며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경험치.
인생에 그늘이 있어 '시원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내공이 책의 곳곳에서 반짝거린다.
스승을 만나 기쁜 점은, 그의 시행착오를 축약형으로 익히고 좋은 것을 빼다 쓸 수 있다는 것.
'새해 빙고' 라니 ^^
'To do list'와 큰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우선 순위대로 써 내려가는 To do list에 비해
순서가 뒤죽박죽이어도 전략적으로 내 한 해를 이끌어갈 수 있는 즐거움이 있지 않나? ㅎㅎ

신체적 나이만큼 사회적/경험적/정신적/영혼적 나이도 중요하다는 것을
질긴 구석이 있는 자기 삶을 말랑말랑하게 글로 녹여낼 줄 아는 작가들의 책을 읽고
마음으로 그들을 '선배'로 모신 뒤 늘 마음에 새기는 바이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
그 누구가 내가 되기도 한다.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혼자만 간직하고 싶거나 홀로 간직해야만 할 사연도 생긴다.
고맙거나 부담스럽게도, 그런 사연을 나에게 나눠주는 사람도 생긴다.
남들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생각없이 불쑥- 뱉은 말의 부메랑을 몸소 느끼면
남도 그리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 내 삶도 조금은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더라.

나만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주말이 아니라
나의 시간과 에너지, 능력을 팔아 남의 일을 해주어야 하는 (그래서 먹고 살아야 하는) 평일도
내 인생에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간이다.
하릴없이 흩어지게 하거나, 꾸역꾸역 견디는 시간으로 생각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쉽다.
하루를 충실하게- 하는 열심파가 되지 않더라도
평일이든 주말이든 내 인생의 생기를 유지하려면
그냥 흘려보내는 것들이 없어야 한다.
살면서 얻은 경험, 책에서 얻은 지혜가 담긴 글귀, 식물을 키우는 방법 같이
별 것 없는 것처럼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에 비밀이 숨어있다.
내 생각에 맞추려고 하지 말고 무슨 말인지 편견없이 잘 듣고,
알고 깨닫게 된 것을 마음에 새기고 행동에 옮기며, 관심과 관찰의 끈을 놓지 않는 것.
그렇게 하다보면 섬세한 촉이 생긴다.
촉이 생기면 더 자주 알아차리고, 느끼고, 찾아다니며 향유하게 된다.

모처럼 여행을 갔는데 비가 온다?
"비가 내린다는 사실에 우울해져서 그 여행을 스스로 망치지만 않으면 된다(p.204)"
"여행을 하면 된다. 우리는 여행을 하러 온 거니까.(p.203)"
인생도 그런게 아닐까? ^^
무슨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우울해져서 내 인생을 스스로 망치지만 않으면 된다.
우리는 '삶'을 살러 온 것이니 살아가면 된다. ^^
ps : 책의 활자가 초록색인 것도 참 좋았다.
핸드폰을 오래 보다 떨어진 시력과 시린 눈에 독서가 힘들어 우울해질 뻔 했는데
이런 사소한 -작가의 배려일까 미감일까- 차이가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