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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내 곁에 머문 것이었음을 -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모를 사랑에 대해
황지현 지음 / 레터프레스(letter-press)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책표지가 낯설지 않다.
사랑을 했고, 이별을 해봤으며,
툭- 잘린 인연을 이어보려고 손끝이 빨개지도록 부벼보았던 사람이라면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짐 캐리)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였으리라.
'나에게 왜 이런 행운이!' 하며 감격에 겨워 사랑에 진입했을 때.
아니면 '아, 이게 사랑이구나' 하고 따스한 담요를 두른 듯 편안함을 느낄 때.
막장 드라마에서만 보던 일들을 몸소 겪어내고 있을 때.
각자가 느끼는 감정이 어떠한 색깔이든 그것이 사랑임을 느낀다.
내가 알고, 이해하고, 조종하고, 매만지는 사랑의 단계가 지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도 아는 것이 없고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납득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내 몸과 감정이 내 의지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내가 느꼈던 충만했던 사랑에 잡아먹혀
어딘지 모르는 끝을 향해, 오로지 꾸역꾸역 버텨낼 때 이별은 시작된다.
지극히 평범했던 모든 것들과 그저 스쳐지나갔던 주변의 풍경들이
그 사람이라는 존재로, 그 사람과 내가 사랑을 하고 있다는 감격으로 인해
하나하나 의미를 갖게 되고, 반짝반짝 빛나게 되던 그 기분이
순식간에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듯 허무하게 변하는 이별을 맞으면
이 책과 같은 마음이 생기게 되는 걸까?
<그저 내 곁에 머문 것이었음을> 은
사랑에 대한 무려 367가지의 질문과 풀이과정을 담고 있는 에세이다.
저자 황지현님은 글쓰기가 하나의 삶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사랑을 할수록 사랑의 형체가 사라지고
이쯤이면 알 것 같았던 사랑이 수많은 질문을 남겨놓고
도대체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모를 사랑에 대해
사랑 속을 헤매며 마주친 다채로운 이야기를
일상의 평범한 단어를 사용하여 과장하지 않고 담백하게 써내려간다.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시간과 장소를 어긋나지 않고 생긴다는 것, 알아챈다는 것, 나눈다는 것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혹은 태어나서 항상 함께 있었던 나 자신에게 '사랑'이란 감정이 움트는 것도
거의 기적같은 일이다.

그저 스쳐 지나갔으면 영영 몰랐을 사랑이 시작되는 그 순간들을 잡아 챈
감성 넘치고, 기운 나는 글들도 다소 있었지만
대부분의 글들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홀로 우두커니- 있던
기억과 경험들을 불러 일으킨다.

책을 차분히 읽을 수 있는 요즘이라,
소환되는 기억들이 더 많았던 걸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턱- 마주친 지난 사랑의 흔적들에
당황하고, 멍-하다가 허탈한 웃음도 났다.
잊었고 보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둥실- 떠오를 때가 많아
긴장하며 책장을 넘겼던 적도 있다.
소위 '과몰입' 상태가 되어 질척대고 있을 때
이 페이지를 만나 버렸다.

작가.
나쁜 사람.
기어코 사람을 울려 버린다.
나의 모소 대나무는 지금 흙을 꽉- 쥐고 튼튼하게 다시 서려고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