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제목을 보자마자 '티팔이 뭐지?' 궁금했다.
본명은 아니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의심을 다 버리지는 못했다-
무슨 뜻인지 호기심이 잔뜩 일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로 책 읽을 물리적인 시간은 많아졌지만,
글자보다 재미있는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책을 손에 잡기가 쉽지는 않은데, 이 전략(?)은 효과적으로 보였다. ㅎㅎㅎ
그런데, 막상 책을 열고 보니 저자 박티팔씨는 그렇게 전략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소개를 이렇게 재밌게 하는 사람이라면 엄청난 핵인싸가 아닐까?

필명 '티팔'은 사회성이 부족하고 독특한 정신세계를 지닌 사람을 일컫는
스키조티팔 퍼스널리티 디스오더 Schizotypal Personality Disorder
(정신분열형 성격장애)에서 따온 정신과 은어라고 한다.
독자들도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자신이 티팔씨와 비슷한 부류인지 알아볼 수 있다.
참고로 이 테스트는 온라인 서점의 해당 책 소개에서 업어온 이미지라는 출처를 밝힌다.
자신의 결과 해석이 궁금한 사람은 온라인 서점에서 이 책을 검색해보면 되시겠다.

처음엔 제목과 작가 소개를 보고 정신과 임상 심리사로서
많은 환자와 케이스를 통해 지식+경험으로 습득하고 정리한
대인관계기술을 배울 수 있으려나, 싶었다.
타인을 관찰하고 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갈등, 불화를 잘 해결하는 방법,
각종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공동체와 인간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고
당사자로 그 상황에 엮였을 때 슬기롭게 빠져나가는 성숙한 방법을
배워보고 싶었는데, 책의 목차가 얘기하는 것은 조금 달랐다.


책에 나온 케이스는 심리학자의 윤리 규정을 준수하여
환자 및 독자들의 인권감수성에 저해되지 않도록 인적 사항을 변경하고 각색했고,
환자의 이야기를 한 발짝 떨어져서 다루거나,
임상심리사로서 어떤 상담을 하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말하기 보다
그 환자와의 상담을 통해 박티팔씨 스스로가 느끼고 변하고 이해한 것을 기술했다.
직장인으로, 정신과의 임상심리사로, 정신과를 다니는 사람으로
직장 내 동료와 상사와 어울리며 겪는 성격/성향에서 비롯된 일이나
사랑과 애증의 미묘한 경계 속에서 매끄러운 불균질이라는 모순을 품고 있는
가족들과의 관계 (배우자, 자녀, 부모님, 배우자의 부모님과 가족 등),
학교생활, 사회생활, 세상을 살아가며 알게 되는 친구, 지인과의 일화 등
본인의 감정과 행동 패턴을 어색해 하지 않고 들여다보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파악해보며 자기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남들의 요구나 사회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금 더 편안하고 스스로가 성장(?)하기 위해 소통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나를 관찰하고 알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진솔하게 본인의 '특이점'과 '엉뚱함'을 드러내어 그런지
한번 책을 펼치면 웃음을 터뜨리며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매력이 있다.

어른이라고 모두 성숙한 것은 아니다.
남들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짐작하여 원활하게 사회생활을 하려는 노력 중에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가?
저자 박티팔씨처럼, 나는 나의 삶과 일상, 내가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
이렇게 오랫동안 기록하고 관찰해 본 적이 있나? 싶었다.
내가 박티팔씨처럼 살 수는 없지만
남을 부러워 하거나 남의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에너지만큼
남도 나를 이해하고 나에게 맞추도록 '나 다움'의 중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
요즘처럼 웃을 일이 별로 없을 때, 재밌게 읽고 홀가분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