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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영시경 - 배혜경의 스마트에세이 & 포토포에지
배혜경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11월
평점 :

책 이름이 참 예쁘다. <화영시경> 꽃 그림자 드리운 시간 풍경이란 뜻이다.
표지를 넘기기 전, 곰곰히 제목만 가만가만 곱씹어 보는 맛이 있다.
항상 있지만 늘 존재하지는 않는 순간.
눈을 뜨고 있지만 찾아 보는 사람, 의미를 두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그 순간의 감정.
찰나의 순간에 스치듯 일렁이지만, 강렬함에 두고두고 회상할 수 있는 짙은 기억.
스마트 에세이 & 포토포에지라는 브랜드가 낯설어도,
SNS를 하는 우리 모두는, 그 순간을 박제해서 남기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찍고
그때의 여운을 미래의 내가 잊을 새라, 짧은 글로 감정과 감상을 새겨놓는다.
<화영시경>은 배혜경 저자의 그런 순간들을 모아서 엮어낸 책이다.
2005년 격월간지 <에세이스트>로 등단한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꾸준히 수필을 쓰며
새털처럼 가볍게 내려앉고, 눈처럼 반짝이다가 어느새 바람에 휩쓸려 사라지는
일상의 모든 순간들을 평범해서 오히려 짙은 여운이 남는 단어들로 매어놓았다.
지금, 여기에서 쓴 글들이라,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일상과 기억할 만한 순간들을
꺼내어 보게하고, 그저 흩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게 하며
그래서 나의 마음이 어떻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하게 흘러가는
매순간의 의미를 찾게 한다.


그래서, 저자의 글과 사진으로 만나는 일상은 낯설지 않고
문득 그리운 추억을 소환해 코끝을 찡하게도 만들며.

아직 오지 않았으나,
기어코 자연의 순환에 맞추어 오게 될 계절을 그리워 하게도 만들고
앞으로 주어질 시간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 가슴을 부풀어 오르게
간질간질 바람을 넣는다.

특히 5부 '책 들려주는 시간'에는 저자가
13년간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 봉사를 했던 도서를 선별하여 담아놓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면 반가울 책의 제목들이
5부 안에서 새로운 챕터 이름을 달고 하나씩 정체를 드러내면
"아, 이 사람은 이 책을 읽고 이런 감정을 느꼈구나." 라는
저자와 독자와의 교류가 이뤄진다.
한발짝 나아가 나의 감상과 생각을 작가와 나눌 수도 있겠으나
동일한 풍경을 보거나 음식을 먹어도 각자의 평가와 인지가 다르니
그저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랑을 받는지, 어떤 존재로 남았는지
슬쩍 들여다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시간 또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e-북이 종이책을 없애버릴 거라던 예언.
사람들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을 거라는 전망.
출판사들이 적자에 허덕이다 문을 닫을 거라는 예측.
아름다운 글을 써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사람들의, 알고 싶지 않은 면모들이
'책'과 '문학'의 존재감에 흠집을 내려고 종종 시도하고, 가끔은 성공하지만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책의 활자를 눈과 귀, 마음과 기억, 삶으로 체화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상,
그리고 그 사람들이 기꺼이 자기 영혼의 한 조각을
용기를 내어 공유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한,
삶의 아름다움을 사진과 글로 잡아내어
"이것 봐. 반짝거린다!" 하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이 순간들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사라진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