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편집장 - 말랑말랑한 글을 쓰기는 글렀다
박현민 지음 / 우주북스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쁜 편집장>이란 책 제목을 보니, 한 영화가 떠오른다.

화려한 패션의 세계에서 자기의 성채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악마' 소리를 들을지언정, 프로페셔널하고 강단있게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싶은 선망의 패션잡지회사의 간판인 편집장과

그녀의 수족이 되어, (비록 지옥 속에 있을지언정)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갖고 있는 직원들.


이번 <나쁜 편집장>은 그러나, 영화와는 좀 결이 다르다.

우선 편집장이자 저자 박현민은 스스로를 잡지 마감노동자라고 소개한다.

거창하게 '편집장'이라고 붙어 있을 뿐, 하는 일은 결국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음을

아니, 오히려 '장'이라는 이름 때문에 더 감당하고 신경쓰고 책임져야 하는 것이 많음을

그는 책 한권을 걸쳐서 간간히 토로한다. 고단한 노동자의 삶이여....

 


남들은 이렇게 바라보고 있지만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이러고 있다는 것.

직장인이라면, 아니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남들 눈에는 쉽거나 폼나거나 멋진 일들이

색과 농도가 다른 노동의 한 모습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게 그린 재미난 일러스트다. ㅎ


저자가 담당한 잡지는 '빅이슈'이다.

영국에서 노숙자들의 자활을 위한 잡지로, 판매 수익의 일부가 판매원인 노숙자에게 돌아간다.

우리나라에서도 지하철역, 길거리에서 종종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빅이슈'

그 잡지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나와야 하는 이유, 계속 나오도록 하는 노력만을

책 한권에 우겨 넣었다면 금방 흥미가 떨어졌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에는 편집장이자,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이 지나온 굵직한 사건들, 혹은 잊혀져가는 것들, 

거기에 더해 잊기를 강요당하는 것들에 대한 저자의 사유와 곱씹음이 실려 있다.

자신과 관계가 없고 시끄러우며 취향이 아니거나 '지겨워'져서 생각하기를 멈춘 일들을

끈질기게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을 한 축으로 하여

다른 잡지가 아닌 '빅이슈' 편집장으로서의 색채를 보여준다.


또한 여행, 문화콘텐츠 등 본인의 관심사와 한결같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찰나라도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 노력하는 직장인의 모습을 한 축으로 하여

숨가쁘게 돌아가는 마감 (뒤의 또 마감) 속에서도 스스로를 챙기는 청년의 모습도 있다.


'빅이슈'라는 취지를 듣고 "좋은 일 하시네요." 하는 찬사(?) 혹은 인사치레(?)에 취해

맡은 일의 성과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거나, 

잡지를 사는 사람들에게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무책임하거나 무능력하지 않으며 예민함을 간직한 '나쁜 편집장'인 현재의 모습을 담고

웃으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어내는 내일을 꿈꾸는 저자의 꿈을 응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