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 - 혼자 있는 시간의 그림 읽기
이동섭 지음 / 홍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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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힘들어, 조용히 있고 싶을 때 나는 문득 미술관이 생각난다.

그렇게 문화인은 아니지만, 사람이 별로 없어 큰 공간이 조금 서늘한 미술관.

그곳에 마련된 등받이 없는 큰 소파에 앉아 지붕 끝까지 닿을 만한 큰 그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처음에는 그림을 보다, 그림 속 사람들을 세세히 만나다

그림의 풍경에 들어갔다 내 생각에 빠졌다가 문득 일어나 버리는 그 모먼트를 

머리 속으로 상상하며 고요함을 소환한다.


그래서 <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은 방 안에서 그 호사를 누리고픈 독자에게

넌지시 동행이 (그것도 꽤나 유쾌한!) 되어준다.


part 1 혼자를 선택하는 시간

part 2 너무 사소해서 잊어버린 장면들

part 3 혼자 알게 된 삶의 비밀들

part 4 거리 두기가 필요한 순간

part 5 더는 숨지 않고 나다움을 찾을 때


파트들의 제목은 여느 힐링에세이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약간의 우울감 혹은 쓸쓸함이 펼쳐지려나~ 싶었는데 왠걸!!


그림을 크게 보았을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을 글로 만나면 즐겁다.

그림과 글이라는 시각적인 정보에 저자 이동섭은 후각과 청각, 촉각을 더한다.

예술작품으로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예술인문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데

어렵거나 교훈을 굳이 찾으려는 글을 독자에게 주지 않아 유쾌하다.


반 고흐와 모차르트가 에스프레소와 딸기 케이크 처럼

효과적인 영양제라고 말하는 사람이 소개하는 그림과 

새벽 1시 45분 (혹은 그를 훌쩍 넘거나 아예 쨍난 낮일수도)의 감성이

물씬물씬 느껴지는데 곳곳에서 '픽-' '훗-'하고 웃게 만드는 재주가 멋지다.


유명한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잘 몰랐던 그림, 조각상, 풍경, 일러스트 등

작가가 글과 함께 들고 오는 낯설고도 익숙한 그림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어쩌면 이 책은 '그림'을 매개로 했지만 

새벽 1시 45분, 이런저런 이유로 잠이 쉬이 들지 않는 사람들이

휘적휘적 밤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만나서 슬쩍 눈인사를 건넨 뒤

각자 자기의 일을 하다가 아무 일 없이 휘적휘적 집으로 들어오는 

일련의 '혼자임을 오롯이 즐김' 의 에피소드들을 묶어 만든 것 같다.


저자는 때로는 팟캐스트처럼, 때로는 직장 동료처럼

소소한 일상의 것들을 함께 공유하면서도 

그 일상을 그림처럼 한 발짝 떨어져서 관조하는 여유로움을 보여준다.




애면글면 하루의 걱정거리와 마뜩찮음을 굳이 끌어안고 끙끙 대다가도

이런 페이지를 만나게 되면 다시 내일, 그 자리에 돌아갈 기운을 차리게 된다.


인생 뭐 있나.

화가나 작가가 자기의 삶과 인연을 녹여내어 그림과 글로 표현한 것을 보고

관람객과 독자가 자기만의 버전으로 오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남들과 자기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감상을 주고 받는다고 착각하며 사는거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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