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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오션 브엉 지음, 김목인 옮김 / 시공사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책 표지에 홀려서 집어들었는데, 읽을 수록 아프고 힘들었다.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는 아련한 저녁 노을만큼이나
슬픔, 상실, 외로움과 소외감 속에서의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가끔은 지나치게 담담하게 기술하여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드는 책이다.
소설의 경우 작가 소개를 먼저 읽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작가의 그림자를 소설 전반에 걸쳐 느끼게 되어
작품은 작품 자체만으로 접하고 싶어 선택하는 읽기 버릇인데
이번 작품은 책을 읽다가 '어? 잠깐만' 하고 바로 날개표지로 돌아왔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포함-
미국에서 활동 중인 오션 브엉은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미국으로 갔다.
시인이자 퀴어작가, 그리고 미국과 전쟁을 치른 당사국의 출신으로
그가 기회의 땅 미국에서 접했을 시선이나 시간을 감히 짐작해보게 된다.
뉴욕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생애의 거의 전부를 미국에서 살았지만
가까운 뿌리에는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가족들이 있는 그는
자신의 존재를 고스란히 녹여내어 이번 작품을 썼다.
서양의 교육과 표현 속에 동양의 감성을 담았다고 해야할까?
그래서인지 소설이지만 시적인 표현, 시적인 감성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작가의 '시'도 궁금하다!)

전쟁통에 나이가 세 배가 많은 남자와의 결혼생활에서 도망쳐 성노동자로 일하며
어머니를 키운, 치매에 걸린 할머니.
혼혈이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모든 것에 위협과 불안을 느끼는,
열일곱 어린 나이에 주인공을 낳은 어머니.
그리고 난민캠프에서 가족들을 위해 영어를 배우며 생존하던 아시아 남자이자
퀴어인 주인공 '나'
이들이 미국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때로는 서로를 버거워하며
버티고 나아가는 과정과 그 시간을 관통하는 관조적 자세, 서러움을 끌어안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쳐버릴 수 없는 외로움과 삶에 대한 가느다란 희망은
우리의 예전 모습과도 겹쳐져서 오히려 더 읽기 힘들었다.
차라리 남일 같으면 소설이려니.. 하는 마음으로 이 기구한 사연들을 바라볼텐데...
지금까지 서양인들의 시각에서 베트남 전쟁을 바라보며
그들의 상처와 트라우마, 극복하려는 시도들은 충분히 다뤄진 반면,
전쟁 당사자이지만 자국에서는 '승리'한 전쟁의 국민으로서
미국에서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열세인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들의 고통이 가시화되고 또 충분히 존중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체적인 목소리로 담겨있는 내용이다.


읽을 때는 괴로움을 감수해야하지만
읽고 나서는 계속 책 속 인물의 얼굴들이 떠오르게 하는 책.
보드랍고 매끄러운 감촉과 아름다운 노을이 담뿍 담긴 표지만큼
그 사람들의 앞날이 조금은 평안해지기를 바라게 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