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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여섯 시까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선재 지음 / 팩토리나인 / 2019년 10월
평점 :

여섯 시가 지나서 어딘가로 나서는 저 빨강머리 사람의 표정은 얼마나 가벼운가.
분명 여섯 시면 공식적인 업무 종료이지만,
내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일이 여기저기 토스를 거치며 스피드가 느려져서인지
아니면 막판에 (칼퇴를 꿈꾸는 줄 어찌 알고서!!) 별 거 아닌 사소한 일이라며
툭- 하고 던져주신 일감 때문인지 절대 사무실을 벗어날 수 없다.
6시에 제2의 자기 삶을 위해 홀연히 일어나는 사람들이 부럽지만,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 싶기도 하는 불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남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를 흘끗거리다가
그마저도 지쳐서 제2의 삶이고, 저녁의 삶이고 다 필요없고
그저 얼른 집에 가서 눕고 싶은 요즘에 이 책을 만났다.
깔끔한 표지이지만 결코 가볍기만 한 내용이 아니라서
쉽게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나의 정체성은 무색무취, 어디에도 끼워맞출 수 있는 직장인이 되어버렸는데
저자 이선재는 각자 고민의 근본적인 원인을 깊이 생각해보자고 하며
'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회사를 바꾸거나 그만 두어도 결코 풀릴 수 없는/변할 수 없는 '나'의 문제.
6시 이후에 새로움을 꿈꾸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R&D해보며 '나-직장=0' 의 삶에서 탈출한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아니 주말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주말에도 격렬하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멍- 하게 머무르다가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다시 주말을 기다리는
무기력 중에서도 중증에 빠졌을 때 이 책을 읽으며 처음 든 생각은
솔직하게 말하면 시기심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바쁘고, 힘이 들고, 여유가 없고-"
하며 이유를 주워삼기는 모습을 인정하고 나서 비로소 받아들인 것이
나를 가장 위하고 아끼는 것처럼 보였던 나의 안전제일, 현상유지, 위험회피가
가장 나를 밋밋하고 재미없게 만들며 무엇보다 내 인생에서 '나'스러운 색깔을
표백제로 빨래하듯 말끔히 지워버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언젠가 우리 모두 배에서 내려야 할 때가 있음을 알지만
망망대해에서 둥둥 떠내려가고 싶지 않아 구명보트만 꼭 움켜쥔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퍼런 파도와 하늘을 번갈아 보며.
그 자리가 싫고 의미를 찾을 수도 없지만, 왠지 벗어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서퍼'가 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불만족스러워
그것을 가리기 위해 이런저런 이유를 가져다 붙이는 현상을 인정한다면
이제 모험을 떠날 때이다.

드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고 집이 초라해지지 않는 것처럼,
<딱 여섯시 까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6시까지 직장에서의 삶도 열심히, 좋아하며 살려고 한다.
직장인으로서의 나도 내 인생의 꽤나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데
그 시간이 괴롭다면 6시 이후의 삶에서는 더 많은 보상을 원하게 되고
세상 일이라는 것이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지극히 당연할진데
조금의 풍랑을 만나면 금방 깨지고야 만다면,
고민-결심-실행-위기-포기-고민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올리가 없다.
그래서 남들 보기에 거창하지 않아도
정해진 길대로 가지 않는 '딴짓' (혹은 '허튼 짓')이어도
우리는 시도하고 경험하고 지속하며 만족을 얻을 권리가 있다.

물론 권리가 있다면 의무도 있다.
게임처럼 안전지대를 벗어나야 몹도 만나고, 경험치도 쌓고, 아이템도 얻고
레벨업도 하게 되는 것이니 '일하는 나'라는 캐릭터를 키운다고 생각하고
머리 속으로만 시뮬을 돌릴 것이 아니라 직접 부딪혀 보아야 한다.
귀차니즘과 아무것도하기싫어병에서 탈출해서,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 아니면 언제" 정신으로!

사실, 퇴근 이후의 삶에서 돈을 얻고자 하지 않는다면
선택지의 범위는 무한대로 뻗어나간다.
돈은 6시까지, 내 삶의 가치는 6시 이후부터로 노선 정리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
삶을 조금 더 거칠지만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8명의 탐험가들의
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를 읽다보니
당장은 이들처럼 '실행'에 옮길 에너지를 확보하진 못하고 있지만
마냥 웅크린 채로 투정하듯 '힘들어, 힘들다구. 의미없어' '복세편살'만
웅얼거리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내가 사는 인생. '나'라는 색깔이 흠뻑 묻어나게 살아봐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