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마티스를 떠올리게 하는 표지의 주인공은 작가의 아내입니다.
아내를 책 표지에 담고, 처음으로 담는 동그라미에 대한 에피소드도
아내의 '눈동자'에 관한 것이라니.
이런 로맨티스트가 어디 있을까? 싶어 책을 열기도 전에 훈훈합니다. ㅎㅎㅎ
저자 일이(김대일)은 부산에서 태어나(!) 글을 쓰며
자신을 알아가는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부인은 (저 그림의 주인공이자 저 그림의 주인공 ㅎ) 그림을 그리며 저자와 함께
햇살, 바람, 바다를 동경하며 부산에서 삶의 유랑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해요.
도대체 디자이너의 눈으로 본 세상은 얼마나 다를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일상 속의 평범함 속에서도 특별함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일종의 뮤턴트(초능력자) 같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이 책에서 다룰 '동그라미'들이 궁금하고 만나보고 싶었답니다.
이건 저같은 독자만의 생각도 아닌가봅니다.
책 뒷 표지를 장식한 김하나 작가님의 추천사에서도 볼 수 있듯
무언가를 좋아하고 수집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꼭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혹은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가능한 일임을 책을 읽으면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 책 가격을 표시하는 칸에 있는 동그란 사과/혹은 오렌지/혹은 유자같기도 한 과일과
새초롬한 초승달도 너무 예쁘지 않나요?

처음과 끝이 맞닿는 동그라미에 대한 철학적인 단상으로 책이 시작됩니다.
결국, 새로운 것을 온 몸과 마음으로 영접하고 느낌과 기억을 기록해 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오고 있는 각자의 삶을 조금 더 우리답게 만드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지금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모든 순간을 추억으로 바꾸는 기쁨의 더듬이를 조금 더 높이 세워야겠다는 다짐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다시 '들어가며'를 읽은 뒤 더욱 강해졌습니다.

오늘과 어제, 내일의 동그라미들을 뽑아놓은 목차.
이것만 읽어도 소제목 아래 어떤 에피소드가 펼쳐질 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

기념일을 따로 챙기지 않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딱 꼬집어 요청하는 아내에게
스노 글로브 (스노우 볼이 더 익숙해서 소제목만 봤을 땐 겨울 장갑인가? 했답니다. ㅎㅎㅎ) 를 대령하며
프리랜서 4년차로 겪는 불안감과 현실감으로 120년을 스노 글로브를 일관되게 만들어 온 회사의 정신에
'버틴다'의 고됨을 다르게 표현해 보고 싶어 '미준시'라는 사랑스러운 말로 바꿔버리는 에피소드는
정신승리라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왠지 따뜻하고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누가 뭐라고 하든, 힘든 시간을 지나가야 하는 것이 정해져 있다면
아득바득- 힘겨운 느낌보다는 기대와 희망이 차오르는 기분이 더 좋지 않을까요?

작가의 유머러스함은 다른 에피소드 곳곳에서 느껴지는데요.
아... 정말, 이 대목은 퇴근길에 읽다가 빵- 터져버렸어요.
마침 아침에 먹으려고 싸온 사과를 못 먹고 내내 가방 속에 넣고 있다가
"이걸 먹어야 해, 말아야 해" 라고 망설이던 차에 읽은 페이지라서
생활감이 확실히 느껴졌달까요? ㅎㅎㅎ

또, 묘한 동질감을 느꼈던 '모기향' 에피소드.
무의미하고 낭비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내 손과 욕망을 어찌할 수 없이 무료한 행위에 집착했던 기억.
특히 살짝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돌돌말린 색연필 심 종이를 후루룩- 풀어내던 어렸을 때의 기억이
다른 여러가지 기억들을 연이어 불러내서, 읽으면서 행복했던 에피소드입니다. ^^
이 책에는 무려 60가지의 동그라미에 얽힌 에피소드가 담겨 있어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아, 맞아! 나도 이거 기억 나!' 할 만한 오브제도 나오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스스로에게 면박을 줬던 요상스런 취미나 상상이
의외로 다른 사람들도 즐기고 있던 무용하며 기분좋은 여가/일탈/즐거움이라는 것을 알면서
점점 자기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하는 책이에요.
다른 사람들의 에세이를 읽으며 글쓰기를 시도하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들 때가 있지 않나요?
이 책을 읽으면 분명, 뭘 주제로 잡을까? 하고 궁리하기 시작할 거에요.
장난꾸러기같은 킥킥거림을 입가에 매달고 말이죠. >ㅁ<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