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 늘 남에게 맞추느라 속마음 감추기 급급했던 당신에게
유수진 지음 / 홍익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작가의 이 말이 참 좋다.


"마음은 모양이 없지만, 

 꺼낼수록 구체적인 모양이 만들어진다."


주간발표를 하기 위한 자료를 모으고, 어떤 순서로 발표해야할지,

어떻게 파일을 만들어야 가독성과 참신함을 적절히 갖출지,

그리고 어떤 단어를 써야할 지 고르고 고르면서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매해 다이어리를 사지만, 일상에 치여 몇 개월을 꼬박 채우지 못하고

듬성듬성 빠진 이처럼 적혀있는 글들은

처음에는 다짐으로 시작해서 하루에 대한 감상, 

혹은 너무너무 좋았던/싫었던 잊지 못할 영화, 음악, 사람이었다가

힘들다, 쉬고 싶다는 넋두리 단계를 거쳐

To do list나 일정 정리가 되어버렸다.


작가 유수진은 남들 앞에서 본인의 책을 읽어보라고 하면

발가벗은 기분이 들 것 같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로 에세이를 썼다.

꺼내면 꺼낼수록 오히려 시원한 기분이 드는 글쓰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만큼 무거운 마음을 글로 적어 떨쳐보기.

못생긴 마음을 드러내 홀가분해진 기록들을 첫 책으로 엮어 냈다.


말이 쏟아지는 만큼, SNS를 타고 글/단상도 쏟아진다.

남들의 어떤 감성은 그 날의 나의 것과 놀랍게도 딱 맞아 '좋아요'를 누르고

내 현실은 이런데, 그대는 멋진 곳에서 맛난 것을 먹고 놀고 앉아있구나! 하며

시기/질투를 덧입힌 '좋아요'를 누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은 찰나이면서도 영구적으로 남는다.

왜 거기에 '좋아요'를 눌렀는지 혹은 그런 '갬성'글을 남겼는지 후회해도

커다란 온라인의 세계에서 나의 흔적이 어딘가, 누군가에게 남게 될 지도...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글을 블로그로 만난 것 보다

책으로 만나서 안전하다고 느꼈다.

오프라인으로 만난 물질인 책에다가 내 갬성을 끄적여도, 

같은 제목을 달고 나만의 이야기를 적어놔도 나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먼저 속마음을 털어놓으면서 마음의 구체적인 모양을 잡는다.

조각가가 뭉쳐진 흙을 철사에 덧바르고, 자기 손으로 조금씩 모양을 내듯

누구나 겪을만한 일상적인 소재를 이야기하며 자기만의 글과 마음을 내놓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의식할 때 

세상 무엇보다도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글쓰기를 제일 쉽게 만드는 것은 

쓰는 자신을 검열하는 '머리 속 나'의 목소리를 끄는 것.


이 책은 글 쓸 때 조차도 남들의 의견과 시선, 자아를 신경쓰느라

정작 자기 마음이 어떤 색깔이고 어떤 모양인지 몰랐던 당신에게

담백하게 글쓰는 방법을 조근조근한 말투로 보여준다.

카페 영수증을 잔뜩 품고 어딘가에 꽂혀있을 다이어리를 찾아 

지금 당장 뭐라도 적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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