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김민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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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의 이름과 출연자는 알아도, 

그것을 만든 PD의 이름까지 기억하는 작품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나에게 김민식PD는 그의 작품보다는 MBC파업으로 이름을 익힌 경우이다.


엄혹했던 시절, 좋아했던 방송국과 거기서 일하던 사람들이

말 그대로 밑바닥까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는 것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다른 방송국들과는 구별되는 색깔과 보이스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좋은 친구' 였던 방송국이 흐릿하고 밍밍해질 때

자신이 일하는 터전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사람들 중 하나로

김민식PD를 알게 되었다.


그가 홀로 복도를 메우며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스스로 찍어 

짧은 동영상으로 SNS에 올린 것을 본 다음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

그의 똘끼(?)와 웃음소리는 굉장히 인상깊었고

그래서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매일 아침 써봤니?> 책이 궁금했다.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꾸준히 열심히 살아가기를 권하는 것이 아닐까해서

살짝 부담스러웠던 두 개의 책과는 달리 세번째 책은 여행이 토픽이다.


"인생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나를 구해주는 3개의 요술 주머니가 있다.

영어, 글쓰기, 여행. 

그중 가장 쉽고 재미난 것이 여행이다" 라고 작가 김민식이 얘기한 것처럼

이 책은 그의 세 권의 책 중 가장 부담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영어가 좋아서 통번역 대학원까지 다녔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자전거 전국 일주까지 다녀온

방송국 사람의 여행은 어떨까? 싶었다.

물론 아시아, 유럽, 미국, 아프리카까지 그의 해맑은 긍정의 정신으로

발바닥을 찍으며 돌아다녔던 일화들은 매 에피소드가 시트콤처럼 재밌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동네 뒷산부터 시작한 걷기이다.


또다른 '걷기 권장 책'인 하정우 배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도 

재밌게 읽은 터라, 김민식 PD의 걷기에 대한 궁금증이 컸던 까닭이다.


하루 아침(은 아니지만)에 좋아하고 긍지를 갖고 일했던 일터에서

부당하게 밀려나, 말도 안되는 일상에서 충분히 괴로워할 만 할 때

그는 동네 뒷산부터 서울 둘레길까지 돈 들이지 않고도 

자신의 경계를 조금씩 넓혀갈 수 있는 걷기를 선택했고 실행했다.


그의 말마따나, 회사에서 징계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고

(2012년 MBC파업 때 정직 6개월, 대기 발령, 교육 발령을 받았다)

자신의 경력은 싸그리 무시당하면서도 열심히 이뤄낸 성과가 

(다시는 성과를 낼 수 없도록) 더 열악한 위치로 박혀버리게 만들 때

집에서도 든든한 위로를 받지 못할 때

그가 선택한 여행은, 울분이나 회환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아서 

어려운 순간에서도 재미와 신선함을 발견해서 놀랍고 멋졌다.


"긍정적으로 살아도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 때도 있는 법"


~ 했으니 ~해야 한다. 라는 기대 혹은 편견은 내려두고

매일 새로운 세계를 만나듯, 마음을 가다듬고 하루만큼의 여행을 하는 

김민석 PD의 여행기를 읽다보면 마음 속에 단단한 심지가 생긴다.

그리고 그저 유쾌하고 짐짓 호쾌하게 웃게 된다.


나의 힘든 오늘을 빨리 지나버리라고 독촉하거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고 정신승리하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 짓는 어른.

알 수 없는 여행지에서 잠시 길을 잃은 경험처럼

새롭고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길 수 있도록 여유와 재미를 찾는 법을

멋진 척하지 않고 조언하지 않고 삶으로 보여주는 선배를 만난 것 같아

읽고 나서도 기분 좋은 책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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