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시간이 많아서 다행이야 - 낯선 세계에서의 익숙한 조우
채주석 지음 / 푸른봄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700일 동안 세계를 여행한다니! 얼마나 좋을까?!

요즘처럼 사막보다 덥고, 동남아보다 찌는 우리나라를 떠나

2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동안,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다면!!


<돈보다 시간이 많아서 다행이야>는 이러한 낭만과 현실이

날실과 씨실로 엮이며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한 사람이 여행한 '시간'의 조각들을 보여준다.


다른 여행기처럼 아름다운 여행지의 사진 위에 감성적인 문구로

청춘과 낭만, 호기심과 발견, 성찰과 깨달음, 소위 '힐링'이 

가득가득 들어가 있지 않아서 오히려  신선했다. ^^

아무래도 작가 특유의 낙천성과 위트가 독특한 여행을 만들었던 것 같다.


책날개에 있는 작가 채주석의 소개도 재미있다.


'영어 이름은 채리. 

독일에서는 세련된 남자들이 많이 쓰는 이름이라던 

첫 룸메이트의 거짓말에 속아 세계여행을 하는 내내 사용하게 됐다.

(사실은 필리핀 여자 이름이라고 함)

딱히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해 틈만 나면 어디든 가려고 노력한다.'


이런 사람이라서(?) 여행책의 시작이 다음과 같겠지 싶다


part 1. 미리 알았다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꿈꾸었던 것과는 아주 달랐던 대학생활에서 실망감을 느끼고

당장 즐거운 것이 행복이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매일 놀다가, 

노는 것도 지치고 (당연한 결과로) 학점도 엉망이라 군대로 고!했던 작가가

무전여행이라는 컨셉을 잡고, 히치하이킹을 글로 배워서 하는 여행.

심지어 영어도 잘 못하는 사람이 3주만에 결정해서 시작한 여행은

그야말로 휘황찬란, 유일무이, 모험만발이다.


'아... 이 사람, 억세게 운이 좋구나. 살아돌아오다니' 싶은 경험들과 


21개월간 아끼고 아껴 모으는 돈을 5일만에 벌어 여행을 시작하게 만든

디자인을 전공한 지인이 일하고 있던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닭고기 공장'을 직접 경험하며 뱉은 소회들에 덩달아 마음이 울렁거린다.



무전여행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말하다니(!)

직접 겪지 않아도 생생하게 냄새와 질감이 느껴지는 이 기분은 무엇일까.

꾸미지 않아 더 착착- 감기는 저자의 어투가 책을 손에 놓지 못하게 한다.


분명 고생담인데 고생만으로 보이진 않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법한 인연들이 저자 앞에 툭툭 놓이는 것도 신기했다.


다소 '무대뽀'처럼 보이는 이런 여행을 통해서 만나는 

미국, 캐나다, 하와이, 남미, 호주, 유럽, 그리고 인도 사람들의 면면은

그래서 여타의 자유여행, 패키지여행과는 매우 다르다.

평범한 여행자들이라면 결코 만나지 못했거나, 적극적으로 피했을 사람들이다.

세상에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고 새삼 느낄 만큼.


아무래도 작가가 '남성'이므로 경험할 수 있는

'아찔한 (것만으로 끝나는) 순간'들은 누구나 누릴 법한 일들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첫 해외여행을 앞두고 있는 자식을 둔 부모님의 손에서

 살포시 치워두어야 할 것이다.)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도, 동의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자기가 선택해서 시작했기에

그가 얻은 경험과 결과와 책임이 빚어낸 세계는 유일하고 독특하다.


커피를 마시면서 컵을 올려둔 카페의 냅킨처럼

낭만과 현실이 서로에게 얼룩을 조금씩 남기면서

다시는 흉내내어 만들어낼 수 없는 그 순간만의 '그림'을 만들 듯이

700여일의 시간과 그 안의 경험들이 빚어낸

남의 시선, 사회적 통념, 의무와 평균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오롯이 자신의 자유와 책임의 주체로 선 자신감을 얻은 작가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작가는 박수든 야유든 아무 상관하지 않을지도 ^^)


더 좋은 내일을 위해서는

오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오늘 내가 행복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나의 선택에 따르는 고생을 기꺼이 껴안아야 하지만.

그것 또한 '내가 되는 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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