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책을 사랑하는 흙수저 책덕후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 이덕무 청언소품
정민 지음 / 열림원 / 2018년 5월

조선시대의 흙수저. 이덕무(1741~1793)

그의 글 [선귤당농소] 전부와 [이목구심서] 일부를 우리말로 옮기고

평설을 보태다가 혼자만 누리기엔 아깝자고 생각해서 책을 냈다고

정민 교수가 말한다.

초판이 나오고 20여년이 지났다.

요즘 책들처럼 멋진 표지도 아니다. 이 점은 조금 아쉽다. 

'조금만 신경썼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어

간서치 이덕무의 멋진 문장과 사유가 더 넓게 퍼졌을 텐데!' 하고 생각하다

그래서 이덕무의 글을 담은 책 답다고 결론지었다.

언뜻 보면 눈에 띄지 않는 사람.

조용히 불을 밝히고 진정으로 좋아하는 책에 빠져 행복한 사람.

하늘 아래 초라한 조각 지붕 말고는 내리는 비와 눈을 막아줄 것이 없고

땅 위에 고스란히 앉을 자리 말고는 더 차지해보지 못한 흙수저 서얼.

그러나 비어있는 공간만큼 책과, 사유와, 친구와, 지적인 호기심이

우주를 이루어 꽉- 채워진 사람.

책덕후의 선배, 간서치 이덕무.

이번에 영국 Cambridge Scholars 출판사에서 김지영씨의 번역으로

[The Aphorisms of Yi Deok-mu] 란 제목의 영문판으로 출간된 연유로

재출간의 행운을 얻게 된 책이 <이덕무의 청언소품>이다.

조선 후기 문인 이덕무를 검색해보면 이렇게 나온다. (쌩큐, 네이버)

조선후기 서울 출신의 실학자 그룹인 이용후생파(利用厚生派)의 한 가지를 형성한 이덕무는 박제가(朴齊家), 이서구(李書九), 유득공(柳得恭)과 더불어 청나라에까지 사가시인(四家詩人)의 한 사람으로 문명(文名)을 날린 실학자이다. 그는 경서(經書)와 사서(四書)에서부터 기문이서(奇文異書)에 이르기까지 박학다식하고 문장이 뛰어났으나. 서자였기 때문에 출세에 제약이 많았다. 그러나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하여 서얼 출신의 뛰어난 학자들을 등용할 때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 등과 함께 검서관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박물학에 정통한 이덕무는 사회 경제적 개혁을 주장하기 보다는 고증학적인 학문 토대를 마련하여 훗날 정약용(丁若鏞), 김정희(金正喜) 등에 학문적 영향을 준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덕무 [李德懋] - 자국 중심의 세계관을 가진 고증과 박학의 대가 (인물한국사)

여기엔 건조한 팩트만이 나오지만 그의 책을 읽다보면

지적인 호기심과 앎에의 욕구로 충만하고 영민한 사내가

서자 출신으로 자신이 배운 바, 익힌 바, 생각한 바를 펼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여유있게 학문을 즐기며 살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 좋아하는 책을 팔아 식구를 먹이며 자조하고, 

자신과 비슷하게 곤궁하고 서자인 친구가 책을 팔아 산 막걸리를 마시며

세상에 대한 설움을 삼키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 자체를 원망하고 비관하지 않았다는 것,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리고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앎을 추구하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

어떠한 상황이나 경우에도, 그 두껍고 무거운 흙수저의 현실에도

스스로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이 대단하고 경이롭다.

자기 안에 큰 우주를 품고 있는 사람이었던 이덕무가

책을 읽으며, 책을 읽고 난 후 사유했던 조각들을

친절한 (저자가 교수님이다) 설명과 풀이로 달아놓아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도 그의 문장을 알 수 있다는 점이 감사하다.

책덕후인 그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신통한 영약' 편

지식을 넓히고 정미하게 되며, 옛날에 통달하고 뜻과 재주에 보탬이 되는

독서는 스윽- 스치듯 언급하고 말며 얘기하는 책의 네가지 유익함.

배고플 때, 추울 때, 근심하고 번뇌로울 때, 기침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배고픔도 잊고, 읽는 기운에 몸이 따스해지며, 천만가지 생각이 스러지고

기침소리가 갑자기 그친다는, 

그야말로 책의 매력에 빠진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어딘지 서글픈 책과 독서행위의 예찬이다.

'복있는 사람'을 읽다보면 그의 곤궁한 처지가 안스러워 살짝 눈물도 난다.

퇴근 후 만족스럽게 밥을 먹고 누워서 책을 보다 스르르- 잠에 빠지는 때가

일상에서 겪는 행복 중에 하나인 나는 참 복있는 사람이었구나, 싶다.

그럼에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는 커녕

자신이 누리지 못한 복을 누리는 사람을 부러워하기는 커녕

참으로 복있는 사람이라고 소박한 마음 한쪽을 청아하게 보여주는 이덕무이다.

<이덕무 청언소품 한서이불과 논어병풍>책을 읽다보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블로그를 보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 시절, 맹자왈공자왈 하며 현실과는 점점 멀어지던 사대부와는 달리

일상의 모든 것과 책을 연결지으며, 깨달은 바를 삶으로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어디에도 있을 법한 겸손한 멘토같다는 느낌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쉽게 변하지 않아,

결국 비슷비슷한 일들이 큰 나이테를 그리며 반복되는 것 같다.

나보다 앞서, 힘든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의 글을 통해

오늘을 복기하고, 내일을 꿈꾸게 된다.

이렇게 편하게 ^^ 지혜를 접하고 누릴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나

별 어려움없이, 복있는 사람 처럼 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책덕후의 후배(?)로서 행복함을 담뿍 느끼며 읽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