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더 테이블
김범준 지음 / 성안당 / 2018년 3월
평점 :

스스로를 '찬밥' 같다고 느껴본 적이 있나?
매번 밥상에 올라오지만 강렬한 맛과 화려한 비주얼의 반찬들에 밀려
정작 밥상의 주인공이 되기는 어려운 '밥'
심지어 따스한 기운마저 잃어버려 한 옆에 밀려나거나, 꽁꽁 언 냉동실에 들어갈 '찬밥'
이렇게 자칫 불쌍해 보이는 '찬밥'에 미식가가 전하는 진미와 진가가 있다.
"그래도 라면에 말아먹기엔 찬밥이 최고지!
국물을 텁텁하게 만들지도 않으면서, 탱글탱글한 밥알이 참 맛있거든!"
힘이 들어 울고 싶고 내 모든 것이 그저 짜증날 때
그 자체로의 내 존재를 인정하고
게다가 나도 발견하지 못한 내 장점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건강한 말을 건넬 때,
우리는 '소중히 대접받는다'는 위로와 존중을 느낀다.
[더 테이블]에는 우리가 받은 위로와 평안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말'이 차려져있다.
작가 김범준은 서울 불교대학원에서 명상에 관해 탐구하고 있고
말과 대화에 대한 많은 책을 펴내고 경연하는 사람이다.
흘러가듯 내뱉는 말에 담긴 힘과 에너지,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변화를
평범하지만 꼭꼭 씹을 수록 속이 편안해지는,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처럼 펼쳐내준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의외로 매우 사소한 것으로
힘을 얻고, 힘을 잃는다는 걸 느끼게 된다.
낙타를 쓰러트리는 것은 등에 얹혀져있는 육중한 짐, 그 위에 살풋 내려앉은 깃털 하나의 무게.
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내 마음이 온갖 감정들로 크게크게 부풀어 오를 때
그것을 잠잠하게 부드럽게, 고요하게 가라앉혀주는 말과
펑- 하고 요란하게 터뜨리게 만드는 말의 힘을 일깨워주고
'그래서 어떻게 말하란 말이냐' 하고 갈피를 잡기 어려워 하는 독자들을 위해
깊숙하게 있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감정들을 하나씩 길어올리는
작가의 많은 에피소드들을 읽다보면
어느새 옮겨적고 싶을 정도로 나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찾기도 하고
쪽지에 적어 전해주고 싶을 정도로 좋은 말을 만나게도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에 크게 와닿았던 구절.
때론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고 들리지 않는 먹먹함에 온통 휩싸여 있을때
그 속에 네가 혼자 외롭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따스한 온기로 곁을 지켜주던 존재들을 떠올리게 만들어준 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에세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꼭꼭 천천히 씹어 음미할 수록 다른 맛을 발견하게 하는
평범해서 매일 질리지 않는 '밥'같은 언어를 담은 '건강한 자연주의 밥상'을 맛본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