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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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황정은 작가가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출간하고 상수동 이리 까페에서 낭독회를 가졌을 때, 독자와의 질문 대답 시간에 내가 첫타자로 '이 책에는 문단 첫 들여쓰기가 되어 있지 않던데 의도적인 것이냐' 라고 물었다. 작가는 대답했다. '의도적인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질의는 거기서 끝났다. 나는 당연히 의도적이라면 왜 의도적인 것인지에, 무슨 의도였는지에 대한 후속 답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작가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질문용 마이크는 다음 사람에게로 넘어갔다.


우리집에는 황정은 작가의 전작이 다 있는데, 2010년 민음사 출간작 '백의 그림자'는 문단 들여쓰기가 되어 있지 않다. 2012년 창비에서 출간된 단편소설 모음집 '파씨의 입문'은 문단 들여쓰기가 되어 있다. 바로 이 다음책이자 내가 의문을 제기했던 2013년도 출간작 '야만적인 앨리스씨' 부터는 다시 문단 들여쓰기가 되어 있지 않고, 그때부터 '계속해보겠습니다'와 이번 '디디의 우산' 역시 들여쓰기를 거부하는 형태로 문단을 짜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디디의 우산' 수록작 'd'의 전작격이라 할 수 있는, '아무도 아닌' 수록작 '웃는 남자'의 경우에는 들여쓰기가 되어 있다.


단 한 칸. 두 번의 스페이스 바. 왜 이것을 하지 않을까? 하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다. 어떤 소설에서는 하고, 어떤 소설에서는 하지 않는다. 그냥 우연인가? 랜덤인가?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럼 무엇인가? 어떤 의도가 있고 무슨 패턴이 있는가? 답을 모르겠다. 이거 하나가 나를 붙잡고 놔주질 않는다.


의도와 목적. 이런 것 없이 씌어지는 소설-책이 있을까? 작가가,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 긴 시간과 여러 사람의 공을 들여 기필코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의도'가 없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소설-책을 읽을 때마다 언제나 이것을 찾는다. 마치 계주 선수처럼, 저 뒤에서 달려와 내 손에 파란 바통을 넘기려고 하는 작가의 페이스에 맞춰 나도 먼저 달리기를 시작하며, 그 바통을 제대로 받아쥐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리고 그 바통을 쥐면, 다음 선수에게 달린다.


'디디의 우산'은 명백히 목적이 있는 소설이고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한다. 'd'를 읽으며 이 소설을 쉽게 독해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누구일까를 생각했다. 1층인 집이 묘한 경사를 타고 내려가 반지하가 되어 버리는 그런 집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을 생각했고,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세운상가의 골목길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해보았다. 그렇다, 이 소설은 철저히 '공간성'에 대한 소설이었다. 완만한 내리막의 반지하와, 골목길에서 마시는 양귀비차, 1950 6 28일 폭파된 한강 다리, 일본에서 건축 공부한 자들이 지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세운상가와 창문도 없고 오디오 놓을 자리도 없는 고시원 방. 그리고 차벽. 광화문을 에워싼 거대하고도 거대한 차벽-이른바 명박산성. 어디로도 빠져 나갈 수 없어 카프카의 ''에 나오는 K처럼 헤매고 헤매고 또 헤매야 하는 청계천과 종로의 거리들. 이 소설은 '공간' 에 대한 서사이며 '공간'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지도였다. 그리고 그 공간성의 제약을 기어이 넘어설 수 있는 '소리'-진정한 파동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윤선오 노인이 꿈꾸던 물 흐르는 소리, d가 고시원에서 재현하고자 했던 엘비스 프레슬리, 세운상가 564호에서 울려 퍼지는 진공관의 소리까지. 그 소리들은 '공간'-'space',두 번의 스페이스 바, 달칵달칵, 만들어진 한 칸의 공백-을 넘어서려는 어떤 결정적 파동이다. '탈출이 불가능하다면 여기서 날 수 밖에, 여기서 마찰하는 수밖에 없어.'1) 소설의 의도와 목적은, 소설의 형식과 맞물리고 독자는 여기서 쾌감을 느낀다. 문자를 해독하는 사람, 문자열이 만들어낸 형식을 감상할 수 있는 사람, 시야가 멀어지고 있는 '아무것도 말할...'의 주인공에게 너무나 잔인하게도, 오직 묵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쾌감이다.


그러나 공간을 넘어서는 파동을 말하는 듯한 이 소설은, 결국 그 '공간'에 대한 밀도 깊은 묘사로 최종 기억된다. '디디의 우산'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이나 '천변풍경'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은 '쏘다니기'의 서사였고 청각 이미지보다 시각 이미지에 강한 나-아마도 다수의 현대적 독자들에게 결국 기억 남는 것은 철저히 현실적인 그 공간들이다. 오늘날 박태원의 소설들이 그러하듯 '디디의 우산'도 언젠가 하나의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가장 가깝게는 세운상가가 사라지는 날, 학생들이 갇혔던 연세대 생활관이 철거되는 날, 명박산성과 세월호 집회가 잊혀지는 날, 고시원과 반지하가 (간절히 바라옵게도) 사라지는 날, 그렇게 되리라. ' TR이나 IC가 발명되기 전에 나온 빈티지'인 여소녀의 진공관처럼, '세종대로 사거리는 두개의 긴 벽을 사이에 둔 공간이 되어' '고요하게 정지되어 있어 진공이나 다름 없고 '저 소리는 이 진공을 도저히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2)하지만 기어이 그 소리는 진공관 안을 뜨겁고 뜨겁게 채워 수백 만개의 불꽃이 되고 그것을 의심하는 자의 손을 아프게 하고 뻗어 뻗어 나가리라. '이제 그 얘기 그만하면 안 될까.' 하고 말하는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는, 2017 3 10일 오전 열한 시-생명권 보호 의무에 대한 판결문을 읽는 소리. 공간과, 공간이 만드는 진공에 대해, 그리고 진공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기어이 얘기하고야 마는 이 현실밀착의 목적 분명한 소설은 불완전한 혁명의 시대가 가고 언젠가 그 시절의 레퍼런스가 필요한 날 반드시 다시 책장에서 꺼내지리라. 몇 번이고.







1) 황정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디디의 우산", 창비, 2019, p.292'

2) 황정은, 'd', "디디의 우산", 창비, 2019, p.13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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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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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어느 매거진에서 (아마도 채널예스였던가) 정세랑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이 사람 괜찮네, 싶어 구매했다. 청소년 소설처럼 깜찍한 표지인데, 내용도 깜찍하다. 


첫 소설 '웨딩드레스 44'는 웹소설 시대에 맞네, 깜찍하다, 싶었고 두번째 소설 '효진'은 흔한 느낌 있었고 살짝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 정도면 역시 귀여운 범주에 넣어줄 수 있었다. 흥미가 돋기 시작한 건 세번째 소설 '알다시피, 은열' 부터였다. '은열'이라는 역사 속 인물을 조사하는 역사학과 대학원생의 글로벌한 동아시아 연합 밴드의 활동 내용이었는데, 꽤 괜찮았다. 경계를 가볍게 넘어다니는 젊고 발랄한 애들 이야기가 보기 좋았고 질척해지지도 암울해지지도 않는 마무리가 산뜻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소설 하나를 뽑으라면 네 번째 소설 '보늬'겠다. 언니 보늬의 돌연사 이후 돌연사.net을 만들고, 언니철머 갑자기 죽음을 맞은 사람들을 우주의 별처럼 인터넷 공간에 띄워놓는 작업을 하게 된 동생 보윤과 그들의 친구 규진, 매지의 이야기다. 인물들에 대한 이상화가 없었고, 역시 위에 적은 질척함과 암울함 대신 솔직함과 발랄함이 과장되지 않게 칠해져 있어 매력적이었다. '개인적 비극을 딛고 일어난 젊은이들이 사회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멋진 작업을 해냈'으며 '뿌리 깊은 착취의 구조를 점선으로나마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고' 보이고, '요새 젊은이들은 그저 무기력하다는 윗세대의 오해를 풀 때가 되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좋은 소설이었다.(보라색은 작중에서 돌연사.net을 취재한 기자의 기사를 인용) 이것은 작가가 인물의 입을 빌어 '개떡같이 말했지만 찰떡같이 받아' 해석한 독자-나의 평과도 일치한다.


장르문학 작가 출신임을 입증하는 듯한 '옥상에서 만나요', '영원히 77사이즈'나 '해피 쿠키 이어'도 나쁘지 않았고 역사학도 출신임을 반영하는 듯한 '이마와 모래'도 좋았다. 이 모든 게 다 프레임인 건 알지만, 어쨌거나 한국작가와 한국소설의 저변이 어둡고 칙칙하고 희망도 대안도 의지도 없는 구질구질의 경계를 허물고 범위를 넓혀가는 걸 보는 일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짧고 가벼운 터치로 씌어진 문장들, 인물이 직접 말하는 것 같은 구어체의 활용은 문학이 생동하는 일상의 영역 깊숙이 들어왔음을, 또 인터넷과 sns 세대의 세상 안에 확고히 맞물리게 되었음을 느끼게 했다. 꾸미지 않은 단순한 말들 속에 오늘의 사회와 인간들에 대한 응시와 고민이 무겁지 않게, 하지만 분명히 진지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이 같은 '옥상에서 만나요'의 성취는 오늘의 한국문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도 같다. 참신한 소재도 좋고 인물들의 굽히지 않는 꿋꿋함과 공동체적 연대에 대한 한결같은 믿음도 든든하다. 앞으로 주목할만 한 작가가 한 명 늘었다 싶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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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오늘 뭐 먹지? 12 오늘밤은♪꼬치구이 (체험판) 오늘 뭐 먹지? (체험판) 12
후쿠마루 야스코 외18명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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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체험판이라지만... 각 에피소드의 첫 장들만 보여주고 끊어버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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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의 세계
듀나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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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지는 사랑스럽지만 내용은 사랑스럽지 않은 책, 듀나의 '민트의 세계'를 읽었다. 배스킨라빈스 민트 초콜릿 칩 같은 달콤하고 향기로운 소설을 기대한다면 책의 시작부터 '덕트 안에서 불타버린 여고생의 시체'에 깜짝 놀라고 말 것이다.

 여고생은 얼굴도 몸통도 불타 알아볼 수 없지만 오른손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어 쉽게 신원을 알 수 있는 사람이다. 하긴 오른손이 불타 없어졌다고 해도 신체의 DNA 정보만 있으면 쉽게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이 시대는 2050년이기 때문이다.

2050년은 어떤 시대인가. 초능력자들의 세상이다. 초능력자라는 말이 더 이상 사용되지조차 않을 만큼 초능력자들이 흔해진 시대이다. 2026년 전주에서 최초의 '배터리 인간'이 등장한 후로, 인간의 내부에 감춰져 있던 갖가지 초능력들이 '배터리'의 힘을 받아 깨어난다. 초능력의 종류는 다양하다. 타인의 정신과 접속해 그것을 조종할 수 있는 정신감응자, 물건을 움직이는 염동력자, 하늘을 나는 비행능력자 등 여러 종류가 있고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능력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복합능력자'가 되기도 한다. 많은 인간들이 선천적으로 초능력을 갖고 태어났지만 그건 우물 없는 두레박 같은 것, 배터리 없는 전자기기처럼 아무 쓸모도 없이 그저 내재되어 있는 장치일 뿐이었다. 그러나 '능력자'에게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배터리 인간'이 태어나고 와이파이처럼 존재만으로도 주위에 에너지를 주는 이 배터리들 때문에 세상은 깨어난 초능력자들이 가득한 곳이 된다. 당연히,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자 한다. 이에 LK 그룹을 위시한 거대 기업들은 초능력과 배터리를 연구하며 능력자들을 특수 학교에 넣어 체계적, 전문적으로 교육시켜 나라의 심장부를 거머쥐려 한다. 이것이 2050년의 세상이다.

 책의 뒷편에는 '전 인류가 초능력을 갖게 된 2049년' 이라는 배명훈 작가의 추천사가 적혀 있다. 그런데 내가 지금 2050년이라고 쓰는 것은, 이 책은 두 개의 시간축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것을 작가가 교묘히 감추고 있기 때문에 - 감췄다기 보다는 그냥 말을 하지 않은 거지만, 작품의 후반부에서 독자는 지금껏 하나의 시간 위에 굴러가는 두 개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두 개의 다른 시간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둘 다 2049년 10월 25일부터 26일까지의 24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의 이야기가 아니라, 능력자-배터리 연합 팩(무리)인 민트 갱과 그들이 일으키는 LK 대전투가 2049년 10월 25~26일간의 이야기이며, 불타버린 시체의 신원이 LK 특수학교를 탈출한 복합능력자 소녀 류수현임을 알게 된 형사 한상우가 미스테리 속으로 빠져 '나는 누구이고 이 사건은 무엇인가' 의 질문 속을 헤매게 되는 이야기는 그로부터 약 1년 후의 이야기임을, 독자는 책이 거의 끝나갈 때쯤 알게 된다. 나만 그런가? 나보다 눈치 빠른 독자는 일찌감치 눈치 챘을지도.

 이렇게 미리 적어놓으면 스포일링이 아닌가 하겠지만, 이 이야기의 재미라는 게 '두 개의 시간축을 놓고 전개되는 것이었다!' 가 전부가 아니므로, 쓰는 데 별로 망설이지 않았다. 듀나는 좋은 SF 소설이 갖춰야 할 두 가지 조건, 첫째 '시간'을 염두에 둘 것과, 둘째 '새로운 세계'를 구축할 것, 둘 모두를 달성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 소설의 진짜 재미는 후자에 있기 때문이다. 즉 '민트의 세계'는 그야말로 정교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2018년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서울과 전국의 주요 도시들을 배경 삼아 그것을 눈에 잡힐 듯 사실적으로 활용하는데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인간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2049~2050년의 신인간이며 이들이 펼쳐 보이는 활동들은 지금의 우리가 감히 꿈꿀 수 없는 적극적 환타지다. 이 두 가지의 부조화스러운 충돌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도리어 독자를 매혹시킨다. 익숙한 공간을 완전히 뒤흔드는 새로운 인간상의 출현. 그로 인해 붕괴되는 '익숙함'의 느낌. 내 눈앞에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펼쳐지는 것처럼 보이는 '자명한 세계' 에 대한 의심은 이 사랑스러운 책 '민트의 세계'로 인해 촉발된 '새로운 세계'이다.  

 분량이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굉장히 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2050년 서울은 코스모폴리탄들의 대도시이므로 당연히 전세계의 다양한 국적, 다양한 인물들이 뒤섞여 있다) 많은 지명과 가공의 사건명들이 계속 쏟아져 나와 독자를 어지럽게 하지만, 그 어지러움 마저도 새로운 세계에서 타는 롤러코스터의 짜릿함으로 느껴진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라. 초능력을 갖춘 신인간이라고 해도 그들의 나약한 정신 세계는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억의 형태를 가진 마약'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몽마' - 인간의 미련과 집착적 회상의 표상물 같은 이 괴물이 자라나 '유령'이 되고 결국 사회의 주요 인간형을 이룬다는 점에서 그렇고, 제멋대로 조작하고 기워붙인 정보-기억들이 또한 스스로 '유령'이 되어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사실 2049년의 초능력자들도 2018년의 우리와 별다를 바 없기도 하니까. 당신의 롤러 코스터는 그다지 낯선 것만은 아닐 것이다.




-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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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E. W.
김사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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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호, 얼루어 매거진 창간 15주년 기념호에서 치프 에디터 FAZIN LEE 는 이 시대의 테마를 ‘YOUNG & RICH’로 선언했다. ‘지금의 우리가 가장 원하는 건 뭘까. 젊음, 부, 강력한 영향력! 이 시대가 칭송하는 이 세 가지 덕목을 갖춘 사람과 브랜드.’ 2018년의 미덕은 성실, 용기, 겸손 같은 것들이 아니라 젊음, 부, 영향력이며, 이 세 가지를 갖춘 신흥 강자들이 세상을 이끌어 간다고 말이다.


‘김사과가 약쟁이들을 그린 것인가, 혹은 김사과 자신이 약쟁이가 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약빨고’ 쓴 듯한 신작소설 ‘N.E.W.’를 읽었다.  불륜 소설이며 세태 소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젊은이가 오직 몸뚱이 하나와 타고난 매력만을 무기삼아 거대한 부와 권력의 세계로 달려가 부딪히는 이야기. 화려하고 공허한 언변으로 가득차 흡사 약에 취한 정신병자의 헛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소설이지만 그 구조는 의외로 교과서적이다. ‘N.E.W.’는 작가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발자크 류의 프랑스 근대소설을 떠올리게 만드는 책이었고 더 정확히 말하면 소설의 교과서라는 ‘고리오 영감’의 패러디가 아닌가 싶었으니 말이다. 1800년대 프랑스의 라스티냑은 시골에서 올라온 잘생기고 야심만만한 법대생이었고, 2010년대 대한민국의 이하나는 고졸 출신의 유튜브 BJ다. 그녀가 입주를 허락받은 메종드레브는 라스티냑이 살던 파리 하숙집의 더욱 진화된 형태다.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젊은이들을 엄선하여 입주시키는 이곳은 야심의 둥지라 할 수 있다.

일단 이 둥지에 입주를 허락받은 이하나는, 메종드레브라는 성 바깥의 허름한 식당에서 만두와 칼국수를 파는 ‘마녀’ 성공자를 오른팔로 두고, 충실한 '기사'인 이우진을 왼팔로 두고 즐겁게 살아가다, 거대한 성채의 주인, 정지용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만남은 어디까지나 우연의 산물이며 이하나의 의지는 어디에도 없다. 이 관계는 정지용에 의해 선택된 것이고 이하나는 완벽한 비주체 - 개나 미술품처럼 주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된 오브제에 불과하다. 정지용이 우연히 엘리베이터 버튼을 잘못 눌렀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화살을 거듭 날려 수천 발의 화살 중 하나가 우연히 과녁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게 만들겠다는 최영주의 다짐을 무색하게 만들 듯, 거짓말 같은 우연으로, 우연과 무지와 오해 속에서 오직 그런 방식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변화1)의 산물로, 이하나와 정지용은 만나고 운명은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동시에 기이한 꿈 같은 시간으로 천천히 패닉에 빠져들었다.’2)


한국의 뉘싱겐 부인, 하지만 뉘싱겐 부인보다 몇 배 더 덩치가 키워진, 젊음, 부, 영향력의 세 가지 덕목을 한몸으로 실현하고 있는 신흥 강자 정지용은 누구인가. 그는 오손그룹의 후계자이며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누군가의 눈길 속에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정대철은 오손그룹의 회장이며, 막대한 부를 쌓은 ‘제분업자’ 고리오 영감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 인물 역시 2010년대 버전으로 변주되어 있다. 그는 ‘몰락하지 않았다’. 정대철은 메종드레브의 초소형 원룸에서 하나뿐인 아들의 성공을 기원하며 죽어가지 않는다. 그는 막대한 부를 쌓았고, 그 부로 영향력을 가졌으며, 그만의 화려한 언변과 신비주의로 영향력을 종신적인 것으로 굳혔다. 그는 우렁찬 목소리로 선언한다. “이따금 내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곤충이거나, 신이거나.” “아버지, 저희를 위해 죽어주시면 안 되나요?” 라고 정지용-뉘싱겐 부인이 묻자 정대철-고리오 영감은 대꾸한다. “ 넌 꿈, 희망, 야망 같은 관념을 이해 못 하는 것 아니냐?” 고. 3) 아버지는 ‘죽어주어야’ 하는 인간이 아니고, ‘죽여야’ 하는 인간이다. 정지용은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최영주는 이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정지용은 어리석었지만, 최영주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물이라는 그의 직관만은 옳았다.) 그녀는 이 세상을 지탱하는 것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었다. ‘자신 있게 환상을 깨부수고 나간 자는 현실의 광기에 의해 으스러질 뿐이며, 망상은 유일한 구원이라’4) 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페이크 다큐를 찍는다. 정대철의 하나 뿐인 손자를 구덩이에 던져 죽이는 환상을 만들어 정대철에서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우리를 위해 죽어달라.’ 고 강변하던 아들 정지용의 ‘말’ 보다 강한 것은 갓난아기를 던져 죽이는 ‘만들어진 이미지’, ‘거짓된(페이크) 현실 기록 (다큐멘터리)’ 였고 이 방식으로 최영주는 마침내 부친 살해에 성공한다. 2010년의 성공한 고리오 영감은 자신의 신적 지위를 포기하려 들지 않았지만 결국 친-자식이 아닌 새로운NEW-자식의 ‘만들어진 현실-환상’ 속에 죽음을 맞는다.


중요한 것은 ‘보여지는’ 것이다. 최영주는 이 ‘보여짐’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다. 정지용은 ‘보여짐’ 을 그냥 자기 삶으로 생각할 뿐 ‘연출’은 하지 못한다. 이하나는 ‘보여지고’ 싶어하고 ‘연출’도 하지만 그녀는 이류일 뿐이다. 이하나의 삶 자체가 이류이기 때문에 그녀는 아무리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도 ‘타고난 촌티’를 어쩌지 못하고 그녀의 모든 이미지는 수백 개의 프릴 장식처럼 과잉의 것이 된다. 최영주는 ‘어쨌든 예쁘고 좋아 보이는,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고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는 삶’5) 속에 자신을 세련되게 연출할 줄 아는 일류이다. 답답함과 허무함 속에서 속절없이 늙어가는 기분에 사로잡혀6) 살아가는 현대인- 그들의 권태와 무력감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젊음과 부와 영향력의 세련된 연출이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자신의 부와 젊음을 ‘전시’하고 그로 인해 더 큰 영향력을 획득하는 21세기 SNS 인플루언서는 바로 정대철 회장이 그토록 강변하는 새시대의 젊은이-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초상이다.7) 심지어 최영주는 자신의 슬픔까지 ‘전시’하는 것으로 쿤데라가 말한 키치의 절정에 오른다.8)


이들은 이해되지 않는다. ‘보여지고’ ‘연출되지만’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진정한 매력을 획득한다. 다 이해되는 것, 알 수 있는 것, 빤한 것, 속이 보이는 것에는 어떤 매력도 없다. ‘이것이 대체 무엇인가? 내가 와 있는 이 장소는 과연 실재하는 곳인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9) 싶은 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21세기의 신흥 귀족들은 바로 그 ‘알 수 없음’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것이 바로 오손그룹 일가를 향한 그 많은 루머와 선망의 원인인 것이다. ‘저 알 수 없음! 저 유령적인 것! 갖고 싶다! 전부! 전부 다!’ 정대철이 쏟아내는 정신나간 주문 같은 말들과 정지용의 난데없음, 최영주의 제멋대로성, 은미라의 미스터리한 죽음까지도, 모두, 모두, 모두! 이 생태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 성공자는 조언한다.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는 없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마. 그저 꽉 물어. 절대 놓지 마.”10) 그렇다, 주인의 도덕을 노예가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노예는 보복할 수 없다. 다만 지배되고, 다만 복종한다. 그리하여 자신을 뜯어먹은 주인의 관대함과 다정함 앞에 마침내 중얼거리는 것이다. “고마워요, 맛있게 먹어줘서.”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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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사과, ‘N.E.W.’, 문학과지성사, 2018, p.213~214

2) 위와 같은 책, p.20

3) 위와 같은 책, p.262~264

4) 위와 같은 책, p.213

5) 위와 같은 책, p.43

6) 위와 같은 책, p.43

7)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은 8월 마지막주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2주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8) 눈물을 전시한 후 카메라가 클로즈업하는 최영주의 모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등장하는 사비나의 멜론모를 떠올리게 한다.

9) 위와 같은 책, p.20

10) 위와 같은 책, p.119

11) 위와 같은 책,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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