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귀신의 노래 - 지상을 걷는 쓸쓸한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편지
곽재구 지음 / 열림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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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은 시작과 끝이 없다. 땅에서도 바다에서도 하늘에서도 길은 어디로부턴가 이어져왔고, 또 어디론가 이어져간다. 그 길 위에 서 있을 때 자신이 살아있음을 가장 명징하게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 역마살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저 여기저기 낯선 곳을 떠돌면  빈 가슴 속은 오히려 충만해져 갔다.

 

 자유로움과 호기심과 불안감과 자연과의 동화로 가득 채워지는 영혼을 느끼며 그대로 길 끝까지 갈 수만 있다면 어쩌면 생의 비밀을 엿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지도 상의 '풍세'라는 지명이 너무 좋아 꼭 피안의 이정표같이 여겨지기도 했다. 길 위의 삶에 대한 동경은 이십 대의 추억으로 남겨졌지만 여기 오늘도 길귀신들과 동무하며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사람, 곽재구가 있다.

 

 일찍이 시<사평역에서>로 눈내리는 겨울 허름하고 추운 대합실, 톱밥 난로곁에 모여서서 막차를 기다리던 곤궁한 사람들에게 밝은 불빛 같은 위로와 찬사를 건넸던 그.

 

 <곽재구의 포구기행>으로 우리나라의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가며 만나는 작은 포구마을들,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와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노래했던 그.

 

 그가 다시 오랜만에 우리 곁으로 돌아와 역시나 길 위의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편안하게 들려준다. <사평역에서>의 탄생과정과 그 속에 담겨있는 시인의 진실된 마음 한자락, 따뜻하게 누운 바다가 있는 와온 마을 이야기, 햇살과 흙과 바람 즉 늘 길 위의 그에게 주저없이 동행이 되어주는 세 길귀신들에 대한 헌사. 바다 풍경보다 사람냄새가 더 아름다운 여수 풍경 그리고 인도의 바라나시와 리시케시, 중앙 아시아의 타슈켄트까지 이어지는 길 위의 노래들.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 끝까지 함께 걸어가다 이승의 끝에서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 때 행복도 사랑도 아름다움도 허튼 꿈은 아니겠지요.'라고 노래 부른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잔잔하고 평화롭다. 감정의 범람이 없이 단정하고 깔끔하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한없이 선하고 따뜻한 시선과 믿음으로 부르는 노래. 그래서 그의 노래는 오늘도 길 위를 걸어가는 우리의 고단한 어깨 위에 포근히 얹히는 햇살 같은 위로가 되어준다. 길 위에서 만나는 초라한 자들의 삶이 결코 초라하지 않음을, 희망의 언어로 보여준다.

 

 그가 보여준 가장 아름다운 길은

 사람과 사람의 마음 사이로 난 길이다

 

 땅 위의 길에 서서 그것을 깨달은 자에게만

 길귀신들은 축복을 내려준다

 

 내가 지금 그 길을 가고있다

 

 당신, 거기서 기다려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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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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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고대인의 문자처럼 불가해한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주인인 인간에게 조차 언제나 본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 보이지 않기에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장막 속에 가려진 삶의 알맹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뜨거운지 차가운지, 악한지 선한지, 유사이래 그 어느 누구도 완전한 참모습을 본 사람이 없다. 그래서 불타는 사막 한가운데를 물 한 방울 없이 헤매이거나 캄캄한 어둠 속 폭풍우 치는 바다를 조각배로 건너 듯 위태로운 삶 속에서, 사람들은 하늘을 우러르며 신의 무릎아래 자신의 우매함을 부려놓고 겸손하게 엎드리게 된다. 그 중에서도 오로지 순정하게 세속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신을 위해 살겠다고 맹세하는 수도사와 수녀의 길, 옷깃만 보아도 왠지 눈보다 마음이 먼저 시린 그 길을 잠시라도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신에게 자신을 봉헌한 베네딕도 수도회의 수사인 요한 수사의 입을 빌어 규율과 기도와 노동과 침묵이 충만한 수도원의 생활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직 주님의 고귀한 뜻을 알고자 자신의 생명조차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젊은 수사들.

 

 날카롭고 지적이며 행동파인 미카엘 수사,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따뜻함으로 주위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천사 같은 안젤로 수사, 논문 자료 수집을 위해 수도원에 온 소희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요한 수사. 작가는 각기 다른 세 수사의 성격과 신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통해 그들도 여전히 고뇌하고 흔들리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수천 수만 번의 흔들림 속에 한 발자국씩 신에게 다가가는 길, 그것이 진정한 신앙임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특히 마음을 끌었던 건 미카엘 수사의 신앙에 대한 정의였다. 오로지 수도원 내에서 규율에 순명하며, 노동과 기도와 공부로 신께 헌신하기를 바라는 성직자들의 가르침과 지시에 저항하며, 예수가 그랬듯이 낮은 곳에서 굶주리고 억압 받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하려는 미카엘 수사. 정말 어느 것이 진정 그분이 원하는 바인지 현실 속에서도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수사와 신부들이 해방 신학이란 현실 참여의 길을 걸어왔고 또 지금도 걷고 있다.

 

 평화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고통 한가운데서 혼란 한가운데서 죽음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붙들고 있는 것이라는데, 그렇다면 성직자들이 진짜 있을 자리는 고요하고 또 고요한 수도원이 아니라, 예수가 사랑한 평범하고 못나고 모자란 우리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 저잣거리가 아닐까 싶다.

 

 미카엘과 안젤로 수사의 죽음, 요한 수사의 사랑과의 이별, 한국전쟁 전후 수사들과 요한의 할머니가 겪었던 고난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은 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느님은 왜 그토록 어여쁜 젊은 수사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이별의 고통을 선사하며 동족끼리 서로의 가슴에 총을 쏘게 만드신 걸까. 그 불가해한 신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오늘도 종은 올리고, 종소리를 따라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높고 푸른 사다리. 비록 손으로 만질 수 없지만 영원으로 통하는 그 문을 열기 위해 우리 나약한 인간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종교가 없기에 쉽게 읽힐 줄 알았는 데 읽는 내내 때때로 솟구쳐 오르는 눈물과 어지러이 떠오르는 생각과 먹먹한 가슴 때문에 책장을 넘기기 힘들 때가 많았다. 작가의 예전 작품보다 소설적 재미나 몰입도는 덜하다. 하지만 방황을 끝내고 돌아가 십자가 앞에 엎드린 자의 안정감과 깊이 같은 것이 느껴진다. 소설로서의 완성도나 작품성을 떠나 아주 의미있는 글이다.

 

 가슴 속에 나만의 종탑을 짓고 싶다.

 언제나 겸허하게 삶을 사랑하는 일

 자신보다는 주위를 둘러보며 작은 관심이라고 건네보는 일

 아집과 탐욕을 내려놓는 일

 

 종이 댕댕댕 울릴 때마다 더 맑아지고 더 너그러워지는 내 얼굴이 햇빛처럼 빛났으면 좋겠다

 진정한 사랑은 결코 보답을 원하지 않으며, 영원히 가시지 않으며, 성장은 고통을 통하여 이루어지니

 

" 하느님, 나를 도우소서, 주님, 어서오사 나를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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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심야특급
조재민 지음 / 이서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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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목시계를 오른 손에 찬다. 중학교 입학 선물로 아버지가 시계점에 데려가서 고르라고 하자, 그 당시로는 흔치 않았던 사각형의 전자시계를 골라 오른 손목에 찼다. 왼 손잡이가  아닌데 왜 시계를 오른 쪽에 차냐고 했지만 조용히 고집 있던 아이는 끝까지 그것을 고수하였다. 이유는 단 하나, 남들은 둥근 시계를 왼 쪽에 차니까였다.

 

 막 사춘기로 접어 든 치기어린 자아가 자신만의 특별함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사각의 시계를 오른 쪽에 차는 행위는 기성세대가 정해 놓은 질서에 대한 무언의 도전이자 궤도로 부터의 일탈이었다.

 

 누구든 일탈을 꿈꾼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와 역할이 아무리 마음에 들고 만족스럽다 해도  인간은 낯설고 새로운 무언가를 태생적으로 그리워 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 욕망을 실천하기는 힘들다. 감히 쉽게 해 볼 수 없기에 일탈은 더더욱 독을 품은 사과처럼 매혹적인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여기 무모하리만치 독사과를 크게 한 입 덥썩 베어 문 사람이 있다. 그 독사과의 맛과 치명적인 독의 농도가 궁금하여 이 책을 읽었다.

 

 대대장의 당번병으로 보낸 2년의 군 생활이 끝나고 전역을 하자마자 그 동안 자신을 가둬 온 울타리를 벗어나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한다. 대강대강 배운 운전실력으로 캘리포니아의 고속도로를 질주하다 결국 사고를 낸다. 그런데 행운인지 불행인지 상대방이 음주운전이었던 연유로 받게 된 보상금으로 과연 무엇을 했을까?

 

 놀랍게도 그가 택한 것은 라틴아메리카로의 여행이었다. 콜롬비아를 시작으로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를 거쳐 쿠바로 가는 남미여행은 한 마디로 충격적인 일탈의 연속이었다. 질서보다는 혼돈 속을, 밝음보다는 어둠 속을 헤매이며 온 몸으로 남미의 밤을 껴안는다. 라틴 아메리카의 밤 속을 헤맨다.

 

 심야특급 이용수칙 즉 따지지 말 것, 누군가 따라오라고 하면 따라 갈 것, 재워 준다고 하면 가서 잘 것, 빤한 수가 보여도 속아 줄 것, 악마와 타협 할 것, 경찰서는 생 깔 것, 그리고 눈부신 세뇨리따들과 놀아 날 것. 이 수칙만 봐도 그의 여행이 상식적인 궤도를 벗어 났다는 것만은 쉽게 짐작이 될 것이다. 자신이 강도를 당하기도 하지만 또 현지인의 돈을 훔치기도 한다. 마약에 빠진 청년들과 밤을 지새기도 한다. 부패한 경찰을 만나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삐끼생활을 하고 길거리 여자를 만난다.

 

 그의 여행행로는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한 것이다. 무모하리만치  펄펄 끓는 젊음이 올라 탄 아메리카 심야특급은 끝모를 어둠 속으로 무한 질주한다. 하지만 직접 체험했기에 사실적이고 솔직하며 생생한 날 것이다. 자신의 악함과 비겁하고 나약한 인간의 본성을 숨기거나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한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 눈물과 용서와 사랑을 배운다. 그래서 그의 일탈은 눈부시다.

 

 방황을 끝내고 다시 돌아 온 자리

 성큼 자라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 할 때

 지나간 시간들은 기꺼이 추억이란 이름에 몸을 맡긴다.

 

 젊음이여 , 태양이 쏟아지는 낮의 얼굴만 보지 말고 심야 특급에도 승차해 보시기를 -

 

 삶의 풍미를 더 해 줄 각양각색의 풍경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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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발랄 맛있는 남미 - 상
이애리 지음 / 이서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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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또다른 나를 발견하는 축복의 순간이다. 낯선 곳의 풍경과 문물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여행은 사실 내면 속에 잠재 되어있는,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끄집어내고 확인하는 길에 다름 아닌 것이다.

 

 누구는 여행지의 자연 풍경에 매혹되고 또 누구는 역사 유적에 마음을 빼앗기며, 누구는 그곳의 사람들에게 동화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여행기로 펴내게 되는데 여행자의 개성에 따라 각양각색의 여행기가 쏟아져 나온다. 교통편이나 숙박, 음식점 등의 실질적인 정보 위주의 책, 문화나 역사 유적지를 소개한 책, 감성적이거나 사유를 담은 에세이 형식의 책. 그러나 이 책은 어디에도 해당이 되지 않는다. 여행 루트에 따른 자세한 교통 편이나 숙박지 소개도 없으며 심지어 남미하면 무조건 떠올리게 되는 페루의 마추픽추 같은 유명 유적지를 관광할 때도 유적지에 관련된 이야기는 없다. 오직 '사람'이 있을 뿐이다.

 

 다가오는 불분명한 미래가 두려워 대학을 휴학하고 날아간 남미에서 만나고 부대낀 사람들, 첫 번째 여행지인 콤롬비아에서는 초보 여행자답게 이방인들에 대한 두려움만 안고 여행의 첫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내 안의 두려움에 나를 가두었다는 것을. 그것을 깨고나니 전에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의 진심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숙박업소에서 청소 일을 하며 살아가는 아주머니의 평범하고 소소한 하루에서 라돌체비타(근심 걱정없는 달콤한 인생)를 배운다.

 

 두 번째 여행지인 에콰도르 살라사카 마을에서는 3개월 간 자원봉사 교사로서 일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점점 정 많고 소박한 그곳 원주민들과 비록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마음을 나누게 된다. 졸지에 태권도 사범이 되어 우리나라를 알리기 위해 학생들에게 발차기를 가르치는 모습은 코끝 찡한 웃음을 주었다.

 

 세 번째 여행지인 페루의 마추픽추 관광에서도 저자에게 중요한 건 마추픽추의 전경이 아니라 투어를 계약한 현지 여행사에 대한 믿음, 여행 길에 만난 동행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 등 역시 사람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제목에서 말하듯 엉뚱하고 발랄하고 맛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여행기가 아니어서 엉뚱하고, 좌절하지 않고 온 몸으로 부딪히며 겪어내니 발랄하고, 남미의 음식들이 입맛을 돋구니 맛있다.

 

 여행은 그곳의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섣부른 편견으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고 직접 그 속으로 들어가 만지고 냄새 맡고 온 몸으로 경험해 보는 삶의 체험형 여행.

 

 그 속에서 얻어낸 사람과 삶에 대한 통찰이 어여쁘다. 우물 안에 있을 땐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우물 밖에 나와서 알게 된다. 우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사다리가 바로 여행이다. 자기에게 알맞은 사다리를 타고 우물 밖으로 나가 보자.

 

 그곳엔 더 넓은 하늘과 향기로운 바람 그리고 땀냄새 나는 삶의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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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구시 한국경제 - 통념을 허무는 10가지 진단과 해법
강신욱 외 지음, 원승연 엮음, 이건범 기획 / 생각의힘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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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사구시의 정신, 조선 중기 공리공론만을 일삼는 성리학을 배격하고 관념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 속의 민생문제와 사회문제를 참다운 이상과 방법으로 해결하여 다 같이 행복한 생활을 하자는 한국 실학의 이상이었다. 즉 실용적인 관점에서 사회를 개혁하자는 주장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론에 치우친 성리학이 사회개혁과 발전의 걸림돌이었다면 오늘 날 우리에게는 이념이라는 장애물이 있다. 본래 이념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신의 사유와 실천을 결정지어주는 이상적인 견해로 삶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골조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되돌이켜보건데 굴곡진 모퉁이마다 이념이라는 검은 괴물이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우리의 삶을 집어삼켜 왔다. 조선 시대의 당쟁과 사화, 현대사의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보수와 진보에 이르기까지 삶의 시너지가 되어주어야할 이념이 언제나 우리를 벼랑끝으로 내모는 얼굴없는 무서운 괴물이었던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 역시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인 이념의 논리에 갖혀 모든 현실적 문제들을 재단하려고 하는 잘못된 지적 사회적 풍토가 만연되어 있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매우 빠른 발전과 변화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회로 변모하였는데 아직도 1980년 대의 보수와 진보의 시각으로 오늘 날의 한국사회를 진단하는 것이야 말로 크나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들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념의 한정된 틀에서 빠져나와 현재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바로 '실사구시의 정신'을 제안하고 있다. 1980년 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고 경제학을 공부한 공통점을 가진 10명의 저자들이 각자의 길에서 일가를 이룬 후 다시 만나 5년 동안 매월 토론회를 개최하면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해결방안을 제시한 작업의 성과를 담아낸 책이다.

 

 평소 경제와 정치에 문외한이기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책을 펴들었다. 그런데 너무나 다행스럽고 고맙게도 10명의 저자들은 친절하고 쉬운 글쓰기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지 또 대안은 문제인지를 세세히 짚어준다.

 

 이 책은 크게 세 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첫 세 글은 중국과 북한 등 한국경제를 둘러 싼 국제환경과 글로벌 사회에서 한국사회가 처한 위치를 다루었다.

두번 째 세 글은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가 되고있는 소득분배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논의했다.

마지막 네 글은 우리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교육, 부동산, 정부의 재정지출과 정책, 에너지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였다.

 

 추상적인 이론서가 아니고 우리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진단하고 개혁하는 실재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내용이기에 '실사구시 정신'에 걸맞은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일상에 치어 사회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적잖은 관심이 있더라도 올바른 지표가 부족하여 부화뇌동하곤 한다. 더욱이 요즘처럼 쓰레기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옥석을 가려내기가 힘들다.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판단력, 표면에 머무르지 않고 그 너머까지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 그 힘을 기르고 현실에 적용시켜 다 함께 잘 사는 정의로운 사회로 역사의 바퀴를 밀고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한국사회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하는 기본의무가 아닐까.

 

새삼 실사구시의 길을 먼저 걸어간 조선시대 실학자들의 지혜로움을 떠올려 보게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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