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은 고대인의 문자처럼 불가해한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주인인 인간에게 조차 언제나 본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 보이지 않기에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장막 속에 가려진 삶의 알맹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뜨거운지 차가운지, 악한지 선한지, 유사이래 그 어느 누구도 완전한 참모습을 본 사람이 없다. 그래서 불타는 사막 한가운데를 물 한 방울 없이 헤매이거나 캄캄한 어둠 속 폭풍우 치는 바다를 조각배로 건너 듯 위태로운 삶 속에서, 사람들은 하늘을 우러르며 신의 무릎아래 자신의 우매함을 부려놓고 겸손하게 엎드리게 된다. 그 중에서도 오로지 순정하게 세속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신을 위해 살겠다고 맹세하는 수도사와 수녀의 길, 옷깃만 보아도 왠지 눈보다 마음이 먼저 시린 그 길을 잠시라도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신에게 자신을 봉헌한 베네딕도 수도회의 수사인 요한 수사의 입을 빌어 규율과 기도와 노동과 침묵이 충만한 수도원의 생활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직 주님의 고귀한 뜻을 알고자 자신의 생명조차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젊은 수사들.

 

 날카롭고 지적이며 행동파인 미카엘 수사,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따뜻함으로 주위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천사 같은 안젤로 수사, 논문 자료 수집을 위해 수도원에 온 소희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요한 수사. 작가는 각기 다른 세 수사의 성격과 신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통해 그들도 여전히 고뇌하고 흔들리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수천 수만 번의 흔들림 속에 한 발자국씩 신에게 다가가는 길, 그것이 진정한 신앙임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특히 마음을 끌었던 건 미카엘 수사의 신앙에 대한 정의였다. 오로지 수도원 내에서 규율에 순명하며, 노동과 기도와 공부로 신께 헌신하기를 바라는 성직자들의 가르침과 지시에 저항하며, 예수가 그랬듯이 낮은 곳에서 굶주리고 억압 받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하려는 미카엘 수사. 정말 어느 것이 진정 그분이 원하는 바인지 현실 속에서도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수사와 신부들이 해방 신학이란 현실 참여의 길을 걸어왔고 또 지금도 걷고 있다.

 

 평화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고통 한가운데서 혼란 한가운데서 죽음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붙들고 있는 것이라는데, 그렇다면 성직자들이 진짜 있을 자리는 고요하고 또 고요한 수도원이 아니라, 예수가 사랑한 평범하고 못나고 모자란 우리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 저잣거리가 아닐까 싶다.

 

 미카엘과 안젤로 수사의 죽음, 요한 수사의 사랑과의 이별, 한국전쟁 전후 수사들과 요한의 할머니가 겪었던 고난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은 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느님은 왜 그토록 어여쁜 젊은 수사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이별의 고통을 선사하며 동족끼리 서로의 가슴에 총을 쏘게 만드신 걸까. 그 불가해한 신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오늘도 종은 올리고, 종소리를 따라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높고 푸른 사다리. 비록 손으로 만질 수 없지만 영원으로 통하는 그 문을 열기 위해 우리 나약한 인간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종교가 없기에 쉽게 읽힐 줄 알았는 데 읽는 내내 때때로 솟구쳐 오르는 눈물과 어지러이 떠오르는 생각과 먹먹한 가슴 때문에 책장을 넘기기 힘들 때가 많았다. 작가의 예전 작품보다 소설적 재미나 몰입도는 덜하다. 하지만 방황을 끝내고 돌아가 십자가 앞에 엎드린 자의 안정감과 깊이 같은 것이 느껴진다. 소설로서의 완성도나 작품성을 떠나 아주 의미있는 글이다.

 

 가슴 속에 나만의 종탑을 짓고 싶다.

 언제나 겸허하게 삶을 사랑하는 일

 자신보다는 주위를 둘러보며 작은 관심이라고 건네보는 일

 아집과 탐욕을 내려놓는 일

 

 종이 댕댕댕 울릴 때마다 더 맑아지고 더 너그러워지는 내 얼굴이 햇빛처럼 빛났으면 좋겠다

 진정한 사랑은 결코 보답을 원하지 않으며, 영원히 가시지 않으며, 성장은 고통을 통하여 이루어지니

 

" 하느님, 나를 도우소서, 주님, 어서오사 나를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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