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 - 일상처럼 생생하고, 소설처럼 흥미로운 500일 세계체류기!
정태현 지음, 양은혜 그림 / 북로그컴퍼니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고 여행하다.

인간이 참된 자아를 마주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서 태어난다'라고 말했지만, 이것을 사랑과 여행으로 바꿔 살펴보아도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사랑과 여행 모두 늘 설레며 꿈꾸지만 쉽게 해볼 수 없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하는 도중에 자신도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과 조우하게 된다는 본질에서 서로 통한다. 그것이 예쁘고 고운 얼굴일 수도 있지만 때때로 그것은 밉고 추한 얼굴이어서 마주하는 순간 자신을 당혹시키고 좌절과 우울의 늪으로 밀어넣기도 한다.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예기치 못했던 반응을 보이는 자신. 예전에는 절대로 느껴보지 못했고 상상하지 못했던 감정과 행동들이, 봄날 미친듯 터져대는 꽃망울처럼 툭툭 터지는 곳이 바로 사랑과 여행의 진정한 자리다. 인간은 바로 그곳에서 상처받고 치유받으며 또 한 뼘 성장한다.

 

 그러나 사랑과 여행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것도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불타오르는 사랑을 위해서도 아니고, 얼마든지 선택권이 주어지는 여행을 위해서 그동안 쌓아올리고 쟁취한 모든 것을 과감하게 정말 남김없이 내던져버린 한 남자가 있다.

 

 값비싼 양복과 멋진 넥타이, 구두로 치장하고 잘나가는 금융회사의 잘나가는 직원이었던 그.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여행길에서 부상당한 동료를 길위에 내버려두고 기록달성을 위해 냉정하게 가버리는 남자들을 목격한 후, 그는 자신 또한 성과주의에 목매달고 살고있는 건 아닌지 진짜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한다. 그리고 그는 떠난다. 직장에는 사표를 내고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나누어주고, 캐나다인 아내와 함게 배낭 하나씩 메고 떠나는 길.

 

 이미 이 결정과 행동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놀라우며 보통의 우리가 가지지 못한 무엇인가를 가졌을 거라는 느낌을 준다. 이렇게 길 위에 서서 보낸 시간이 무려 500일. 북미로, 남미로, 유럽으로, 인도로...

 

 이 책은 그 500일 동안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누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하고 무엇을 느꼈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이처럼 여행지의 정보가 들어있지 않은 불친절한 여행기는 처음이다.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코드는 관광지가 아니라 '일상'과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낯선 곳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일상에서 눈앞이 밝아지고 가슴이 트이는 무수한 깨달음을 얻는다.

 

홍수가 나 범람한 갠지스 강에서 신 나게 다이빙하는 인도의 젊은이들. '얼마 전 집과 사람을 삼킨 강에 어떻게 다이빙을 하며 웃을 수 있는가'란 질문을 던진 그에게 '그건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 그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느끼지 않아야 하는가'라고 답하는 젊은이.

 

 저잣거리의 길바닥에 누워 안마를 받으며 충분한 만족과 행복감을 느꼈지만, 자신을 쳐다보는 주위의 시선에 불편해하는 그에게 '당신은 왜 오고있는 행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라고 말하는 노인안마사.

 

 시가의 나라 쿠바에 가서 시가를 자르고 피우는 방법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려는 그에게 '방법이 왜 중요한가, 그냥 자체를 즐기면 되지'라고 말해 준 시가경력 30년의 쿠바인.

 

 '그 사람'들로 인해 그도 자라고 우리도 자란다.

그러나 진짜 반전은 따로 준비 돼 있다. 안정적인 일상을 미련없이 버리고 여행길에 올랐던 그도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여행이 끝난 후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주위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을 무거운 짐처럼 배낭위에 얹어다닌다. 결국 그도 우리와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여행은 그를 황홀한 마지막 깨달음의 순간으로 인도했다. 불안이란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이며,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 또한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은 순간, 그는 웃으며 여행을 끝낸다.

 

 결코 목소리를 높이거나 강하게 얘기하지 않는다. 그저 여행 도중 자신이 겪은 일상을 일기처럼 적어놓았다. 하지만 어떤 개그프로보다 톡톡 튀고 재미있으며, 어떤 소설보다 빨리 읽히며, 어떤 자기 계발서보다 가슴에 와닿는 가르침을 주며, 어떤 철학서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킥킥거리고 웃으며 읽고난 후 마음이 성큼 자란 느낌

 

내 옆의 사람에게 읽어주고 이야기 해주고 권해주고 싶은 책

 

잘 익은 포도주 한 모금을 음미한 순간처럼, 참으로 기꺼운 마음

 

나의 일상 속에서 만나게 될

스승들이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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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로그컴퍼니 2014-06-18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북로그컴퍼니 출판사입니다.
다음주 토욜일인 6월 28일 오후 5시에 영풍문고 종로점에서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의 정태현 작가의 강연회가 있습니다. 무료 강연회이고 선착순 입장이니 관심 있으시면 덧글 남겨주세요. 자리 맡아 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