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체성 허문 '젠더 계보학' 소수자 철학으로 확장
주디스 버틀러 Judith Butler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수사학과와 비교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유대계 백인 레즈비언 철학자이다. 버틀러는 논쟁적 페미니스트이자 퀴어 이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헤겔이 20세기 프랑스 철학사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 논문으로 예일대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1990년 <젠더 트러블>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미국 학계에서 영향력 있는 진보적 지식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 번역서로는 <안티고네의 주장>,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젠더 트러블>, <불확실한 삶>, <누가 민족 국가를 노래하는가> 등이 있다.
헤겔 철학에 대한 연구로 주저를 시작한 주디스 버틀러는 다양한 이론적 배경과 현란한 철학적 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난해한 글쓰기로도 정평이 나 있다. 버틀러는 프로이트와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주체형성 이론, 폴 드 망과 자크 데리다의 해체론의 영향을 받았고 미셸 푸코의 권력이론과 (역)담론이론을 주요한 방법론적 토대로 삼고 있다.
버틀러가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 주요 저작은 무엇보다도 <젠더 트러블>(1990)이다. 이 책은 기존 페미니즘이나 철학에 대해 도발적인 논쟁과 문제를 제기하면서 학계에 트러블을 일으켰고 세계적으로 번역 출간되어 10만부 이상 팔리면서 인기를 누렸다. 또한 인터넷상에 ‘주디’라는 국제 팬진까지 탄생시키면서 버틀러를 영미 지성계의 떠오르는 아이콘, 학계의 주목받는 스타로 만들었다.
<젠더 트러블>은 버틀러의 ‘젠더 계보학’이 표면화되는 저작이다. 젠더는 불안정한 사회적 구성물이므로, 공통된 집단으로서의 여성이 페미니즘의 주체라는 주장은 특정한 정치권력이 작용한 결과임을 밝히려는 작업이다. 이 책은 페미니즘이라는 정치학에 여성이라는 주체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여성 주체가 있어야 여성 해방이라는 정치학이 있다는 전제에 있어서 그 ‘여성’은 확고한 본질이 아닌 일시적인 구성물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라는 성의 정치학의 정치 주체가 여성이라면, 이때 성을 지칭하는 것은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가 될 것이다. 선천적으로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이 섹스, 후천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교육받은 성이 젠더라면, 섹슈얼리티는 인간의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으로 말해진다. 쉽게 말해 우리는 태어날 때 남자와 여자라는 생물학적인 몸을 가지고 태어나, 남성성과 여성성을 학습하면서, 남녀 간의 이성애를 당연한 욕망으로 여기며 자란다. 그런데 섹스라는 생물학적이고 해부학적인 특성도, 섹슈얼리티라는 원초적인 욕망도 사실은 애초부터 그렇게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제도담론이 그렇게 명명하고 인식하도록 지식 체계를 동원한 결과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는 모두 사회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의미에서 ‘젠더’로 수렴되며 규범이 만든 허구이기 때문에 분명한 정의가 불가능해진다.
계보학은 근본적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사실상 어떤 것의 결과임을 역사적으로 밝히려는 방법론이다. 계보학은 원래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논의를 계승한 푸코의 비평적 접근방식으로서 권력 효과나 담론의 구성물을 마치 근본 원인이자 전제인 것처럼 조작하기 위해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배타적 실천을 역사적으로 밝히려는 논의 양식이다. 공통 집단으로서의 여성을 페미니즘의 주체로 ‘재현’하는 언어와 정치의 사법적 구성은 그 자체가 하나의 담론적 구성물에 불과하며 당면한 ‘재현 정치학’의 결과일 뿐이다. 이는 사실상 이성애 중심주의라는 토대 위에서 안정된 여성성을 확보한 것으로 전제되는 생물학적 여성을 페미니즘의 법적 주체로 생산하려는 특정한 정치적 작용이기 때문에, 특정한 권력의 역학 관계 속에서 조작되고 구성된 결과물에 불과하다. 이 여성 주체에서 복장 전환자, 젠더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자, 성적 소수자 등은 배제되기 때문이다. 이런 젠더 계보학은 소수자 섹슈얼리티를 인정하고 그것과의 평등한 공존을 모색하려는 퀴어 이론의 현실적 정치성과 맞닿아 있다.
버틀러는 9·11 사건 이후 국가가 가져온 폭력의 악순환과 현실의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여러 담론에 대해서도 새로운 규범을 제시해야 할 윤리적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관심은 이제 성적 소수자뿐 아니라 인종적, 종교적 소수자의 관점으로 확대됐다.
<젠더 트러블> 이후 버틀러는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1993), <권력의 심리 상태>(1997), <격분하기 쉬운 말>(1997) 등을 출간하면서 젠더 수행성 논의를 육체, 권력, 언어의 문제로 구체화한다.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2000)은 우연적 토대 위의 ‘보편성’이라는 주제를 면밀히 고찰했으며, <안티고네의 주장>(2000)은 희랍 비극의 고전적 여성 영웅 안티고네를 친족 교란과 젠더 역전의 급진적 퀴어 주체로 재해석했다.
주목할 점은 버틀러가 <불확실한 삶>(2003) 이후 <젠더 허물기>(2004), <스스로를 말하기>(2005),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2007) 등의 후기작에서 보여주고 있는 시각의 변화이다. 버틀러는 미국이 겪은 대참사였던 9·11 사건 이후 국가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이라크를 공격한 것은 폭력을 제어하기 위해 또다른 폭력을 동원하는 악순환을 가져왔다고 본다. 그리고 대테러 전쟁을 주창하면서 현실의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여러 담론에 대해서도 새로운 규범을 제시해야 할 윤리적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버틀러의 관심은 이제 성적 소수자뿐 아니라 아랍인이나 유대인과 같은 인종적·종교적 소수자의 관점으로 확대되며, 특정한 삶만을 살 수 있는 삶으로 제한하고 정당화하는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를 극복하여 또다른 폭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애도와 함께 있음으로써, 곧 가멸적 육체의 취약성과 이질성에 대해 사유하고 그 애도 상태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생산할 수 있는 정치적·윤리적 행위에 주목하는 것이다. 윤리적 가능성은 나의 내부에 내가 알지 못하는 불확실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레비나스의 ‘얼굴’처럼 재현의 한계를 드러내는 타자성이, 곧 자신의 실패를 드러내는 재현이 윤리적 재현이라고 해석되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출간된 가야트리 스피박과의 대담집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에서 버틀러는 시민권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불법 체류자나 난민의 관점에서는 국가 없음이 단순한 국적의 누락이 아니라 권력의 장 내부에서 법적인 권리를 박탈당하는 적극적인 방식이 된다고 주장한다. ‘국가 없음’은 한 국가의 권력이 닿지 않는 곳으로 그저 벗어난 상태가 아니라, 권력이 적극적으로 특정한 사람을 배제하는 현실이다. 실제로 국가에서 추방된 사람이나 추방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독일의 이주노동자, 팔레스타인 점령지구의 사람들, 관타나모 수용소의 포로들의 권리 박탈은 보편적 주체의 양상이 아니라 특정 권력이 복잡한 방식으로 개입된 역사적 상황이다.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는 ‘벌거벗은 삶’도 사실상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보편적인 조건이자 주권 권력 이면의 한 양상이기보다는, 특정한 법제적 권력에 의해 권리가 박탈된 사람들의 겪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상황이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버틀러의 논의는 전기의 젠더 존재론에 대한 계보학적이고 이론적인 통찰에서, 후기의 실천적 정치윤리학에 이르기까지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이것이 단순히 여성이나 성적 소수자뿐 아니라 인종적·종교적 소수자의 문제까지 포괄하면서 이 사회 속에서 인식 가능한, 또한 생존 가능한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에 대한 철학적 문제로 논의를 확대하고 있는 버틀러의 타자의 윤리학이 보여주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조현준/경희대 객원교수·영문학
(한겨레 200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