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참정권, 그냥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차별 ‘벽’ 넘기까지의 눈물겨운 투쟁사
 
 
한겨레 최현준 기자
 


 

» 영국의 에멀라인 팽크허스트(1858~1928)가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의 상징이던 그는 한 해 12번이나 감옥에 가기도 했다.
 


〈청소년을 위한 양성평등 이야기〉
이해진 지음/파라주니어·10000원


이탈리아의 한 병원에서 모든 아기에게 똑같이 노란색 옷을 입히는 실험을 했다. 평소 아기를 잘 돌보던 간호사들은 성별 구분이 어렵게 되자 아기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태어나면서부터 남성과 여성에 대한 차이를 은연중에 강요받고, 남녀의 성역할이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책은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 남녀 성역할에 대한 쉬운 소개로 시작해 양성평등에 다가서는 고통스런 과정들로 이어진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은 지난하고 힘겨웠다. 양성평등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는 참정권조차 20세기 초반에 와서야 주어지기 시작했다. 스위스 같은 선진국도 1971년에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용했다. 1870년 흑인 노예들에게 참정권을 줬던 미국은 여성들의 백악관 앞 쇠사슬 시위와 40만명이 넘는 서명운동 끝에 1920년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다. 아랍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월경이 정치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에게 한 표의 권리가 주어진 지가 이렇게 짧은 데는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배경이 작용한다. 산업혁명 이후 사람이 하는 일을 기계가 대신하게 되면서 남성은 밖으로 나가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은 가정에 남아 뒷바라지를 하는 게 ‘괜찮은 가족’의 모습으로 여겨졌다. 이런 추세는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져,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은 수많은 여성들이 ‘주부 우울증’으로 진단받은 것도 1960년대가 돼서였다. 인류가 살아온 기록을 담은 역사조차 철저히 남성 중심으로 쓰여졌고, 여성들은 외면받았다.



 

» 〈청소년을 위한 양성평등 이야기〉
 
여성학자인 지은이는 여성 차별의 역사와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들을 인류학·사회학·역사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정리했다. 목표 독자층인 중·고교생들이 역할 모델로 삼을 수 있도록 양성평등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고, 남녀 차별의 두꺼운 벽을 뚫어낸 여성들도 다수 소개돼 있다. “우리 모두가 전 세계 60억 인구 중에 오직 하나뿐인 매우 독특하고 특별한 존재이며, 자유롭게 ‘나다움’을 발휘할 때 우리 삶은 더 행복할 것”이라는 게 지은이의 울림 큰 지적이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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