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 당신들의 대한민국 세 번째 이야기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6월
절판


무급 가족까지 포함해서 자영업자들이 전체 취업자의 34퍼센트를 이루는 한국이나 16퍼센트를 이루는 일본에서는, 당장의 자금 흐름이 문제가 돼 '경기 회복'을 약속하는 극우파의 감언이설에 귀가 솔깃해지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생산 수단을 소유하면서도 착취 대상이란 자신과 가족, 몇 명의 아르바이트생 빼고 별로 없는 중간 규모 이하의 자영업자들은 대체로 사회,경제적으로 이중적 존재들이다. 한편으로는 '진정한 자본가'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자신들과 주위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경기 변동에 따라 늘 도산위기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들이 '변화가 없는 호경기'를 찾다 보니 히들러나 무솔리니의 주된 지지 기반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유럽 역사가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29쪽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계를 2008년만큼 뼈저리게 절감한 해는 없었다.

첫째,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정확히 '국민' 집단에만 적용된다. 한국의 '불법 체류자'나,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 미군의 '오폭'(?)으로 2008년 한 해에만 약 4백 명이 죽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주인들'의 찬란한 민주주의는 전혀 해당사항이 아니다. '타자', 특히 경제적인 지위나 세계 질서에서의 지위가 낮은 타자에 대한 '국민' 집단의 폭력을,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효율적으로 합리화한다. 이스라엘 국민 80퍼센트 이상의 지지를 받는 2008년 12월 말의 가자 지구 맹공만큼 더 민주주의적인 실력 행사가 있을까? "민주주의 국가끼리의 전쟁은 없다"는 자유주의자들의 통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국민' 집단에 대한 절대적 귀속, 그리고 '국민'과 '비국민' 구분의 절대화를 전제로 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전쟁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 참고로, 가자 지구의 하마스 정권도 선거를 통해 민주적으로 탄생된 정권이다.-45-46쪽

둘째, 부르주아 대의민주주의는 선거 이외의 기간에는 정부의 통치 행위에 '국민'들이 개입하는 것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비국민'은 아예 배제되지만, '국민'의 역할도 투표가 끝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지난번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 국민들은 일관되게 70퍼센트 안팎이었지만, 아마도 반대자의 비율이 90퍼센트 정도 돼도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다. 민주주의고 뭐고, 재벌의 대미 수출과 통상협상에서 재벌의 대표자인 정부의 '신뢰성'이 문제가 된다면 '국민'의 의사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 그리고 3개월 동안 매일 집회를 해도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민주주의란 사실상 별로 '민주적'이지 않다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46쪽

셋째, 부르주아 민주주의 제도에서 국가의 통치권자를 '국민'이 투표에서 뽑는 건 맞지만, '국민'의 생활세계와 의식 세계를 좌우하는 것은 자본과 언론과 국가다. 유치원 때부터 "인생은 전쟁터, 사람들은 다 전사, 내가 살려면 나의 경쟁자들이 죽어야 한다. 승리는 모든 수단들을 다 합리화한다"는 걸 체득한 국민들은, 투표 전날 이명박이 본인이 BBK의 실질적인 설립자임을 자인하는 육성을 동영상으로 들었음에도, 그를 찍었다. 기성세대는 물론,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바도 약 22퍼센트가 "부자가 되는 것이 정직하게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답한다. 참고로 방글라데시에서 그렇게 답하는 이들은 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46-47쪽

노르웨이의 노동당이나 스웨덴의 사민당은, 과연 저들의 지배자들을 찬양하면서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 등의 엄청난 양보를 따낸 것일까? 천만의 말씀! 북구의 부르주아들이 대중의 급진화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보다 온건한 사민주의자들과의 '동상이몽적 동맹'을 맺은 것은 사실이지만, 공산주의자들과 경쟁해야 했던 1930-1940년대의 북구 사민주의자들은 말년의 여운형(1886-1947)이나 조봉암(1898-1959)보다 훨씬 급진적이었다. 노르웨이 노동당 당원들의 경우, 1945년 이전까지는 아예 국기를 게양하지 않았으며 국헌절(5월 17일)을 기념하지도 않았다. 대신에 5월 1일 노동절을 기념하고 부르주아 주류와 '정체성이 다르다'는 걸 늘 강조했다. 노르웨이가 독일 점령기를 거친 뒤에는 바뀌긴 했지만 노르웨이 노동당의 왼쪽 흐름은 구소련의 독재가 싫었을 뿐이지 원칙을 따지자면 차라리 공산당에 더 가까웠다. 그 이념적 후손들은 1970년대에 노동당을 탈퇴하고 "반미 반소, 사회주의 건설"을 외치면서 사회주의좌파당을 창설하기도 했다. -72쪽

이 정도의 왼쪽으로부터의 압력이 있었기에 북구의 지배층이 불가피하게 양보를 해서 복지 시스템의 건설에 동의를 한 것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주류에 위험한, 불온한 흐름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복지국가라는 '중간 지점'에마저도 갈 수 가 없는 것이다. --72쪽

스페인은 지난 2005년, 6개월 이상 스페인에 체류했으며 최소한 6개월간의 취업 계약을 보유하고 전과가 없는 일체 '불법 체류자'들에게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대대적인 이민자 사면을 시행해, 거의 70만명의 '불법 체류자'들의 신분을 양성화했다.-172쪽

"청소부와 이야기하든 장관과 이야기하든 똑같이 대하기. 어조, 태도, 말이 주는 느낌으로라도 인간을 차별하면 절대 안 된다." (러시아 유전학 연구자 티모페에프-레소프스키의 회고록에서 인용한 것) -184쪽

탈민족 담론의 문제점

...한국 사학계의 헤게모니를 잡아온 것은 제도사, 즉 국가의 통치사가 아니면 운동사, 즉 국가 권력을 잡거나 그 권력에 영향을 미치려 했던 이들의 역사였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고학력,성인,남성,비장애인,이성애자,순수 혈통의 한국인 출신이 '국가'와 '민족'등의 이름으로 주도한 '운동'이나 '투쟁'의 역사에만 관심을 두고, 그와 무관한 비주류들에게 행해졌던 폭력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던 것은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탈민족'은 여성,아동,장애인,동성연애자,이주민 등 모든 비주류들에 대해 친화적이고 해방적이다.... -222쪽

'민족'과 같은 유형의 토착적 요소들을 강조하는 개념어들은, 많은 경우 저항 담론에 전유되기가 쉬웠다. 박정희가 '민족중흥'의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위한 최저임금제 실시까지 반대했지만, 그에게 철두철미하게 맞섰던 민중주의자 함석헌도 '민족'이라는 말을 썼다. 다만 함석헌은 최저임금까지 포기하게 만드는 우상의 의미가 아니라, '씨알'로서의 '민중'과 통하는 의미로 '민족'을 썼다. 또한 그는 소련군 대위 김일성이나 일본군 중위 박정희를 동시에 반대하고 두 괴물이 억압, 착취했던 남북한의 모든 씨알들을 아울러서 생각한다는 의미로 (남북한을 동시에 아우르는) '민족'을 쓰기도 했다. 김일성의 '민족'과 박정희의 '민족', 그리고 또 한편의 함석헌의 '민족'은 기표는 하나지만, 기의는 많이 다른 것이다.-223쪽

...'밑'의 투사들이 간혹 저항적 의미로 전유하곤 했던 민중적 의미의 '민족'까지 지배자들의 '민족'과 똑같이 취급하여 파기해버리면, 자칫 의도하지 않게 지배자들의 편에 서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일부의 '탈민족적' 학자들이 식민지 시대를 "자본주의의 발전, 문명의 발전"이라고 하여 긍정시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는 문제이다.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모든 '민족'을 파기해버리면 무정부주의자 이을규(1889~1972)나 공산주의자 박헌영이 이야기했던 '민족 해방'도 하나의 '억압 담론'으로 평가되고, '야마토 민족'의 이름으로 중국의 독립투사들을 학살했던 김석원(1893~1978)과 같은 일제 강점기의 어용적 '세계인(그때 '세계'는 도쿄 중심이었다)'들도 결국 한국, 중국 독립 운동가들과 똑같이 취급되면서 면죄부 아닌 면죄부를 받게 딘다. 각각이 내세운 민족을 계급적으로 분석해보면 피착취 계급의 입장을 대변했던 박헌영과, 착취 계급이 되려고 안달이 난 박정희 사이의 차이가 분명해지지만, 일부의 '탈민족'쪽은 계급론에 어둡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결정적 약점인 것이다.-223-224쪽

다시 한번 오해를 경계한다. 나는 '지금' 한반도에서의 계급적 해방운동에 '민족'이란 백해무익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한민족만이 사는 공간도 아닐뿐더러 한민족의 남성 구성원들이-하류층까지도-심심하면 20~30만원으로 하노이에 가서 주지육림이나 즐기는 판에 "우리 민족은 착한 피해자"라는 말은 너무나 파렴치한 거짓말이다. 세계적 투자국, 선교사 파송국, 관광객 출발국, 군대 파병국인 대한민국은 이미 악명 높은 가해자가 된 지 거의 20년이 지났다. 지금은 우리가 베트남, 중국, 인도 노동자들과 손을 잡고 삼성의 주인들을 상대로 투쟁할 시대지, 이건희 전 회장과 같은 부류를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좋게 봐줄 시대는 아니다. 즉 진보적 의미의 '탈민족'이 요청되는 시기인 것이다. 하지만 보수적 의미의 '탈민족'은 '민족'의 다양한 역사적 맥락 등을 일부 무시함으로써 결국 지배자들의 논리를 합리화하는 도구가 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 또한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224쪽

대한민국에서는 좌우가 아무리 치열하게 대립해도 '신성한 국토'로서의 독도 문제가 '터지기'만 하면, 원칙상 '국제주의적'이어야 하는 민주노동당부터 오히려 독도 사수 의지의 경쟁에 가장 열심히 뛰어든다. 일제 침략이라는 아픈 외상의 후유증이라는 차원에서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국가의 각종 '국민화' 기제에 걸려드는 것은 어설프게 느껴진다. 독도를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 해도, 독도 관련 망언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일본의 극우들에 대항해서 일본의 진보 단체들과의 튼튼한 연대부터 만드는 것이 근대의 야만을 극복하려는 이들로서는 급선무가 아닐까? 독도 문제로 의견을 달리한다해도, 일단 일본 민중과의 연대와 친선은 자본주의 국가가 만들어놓은 영토의 복잡한 관계보다 더 일차적이지 않은가? '국토'라는 근대의 유사 신앙을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가 20세기의 살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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