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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 -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
김용언 지음 / 반비 / 2017년 6월
평점 :
흔히 사전적 의미의 문학소녀란 '문학을 좋아하고 문학 작품의 창작에 뜻이 있는 소녀 또는 문학적 분위기를 좋아하는 낭만적인 소녀'를 말한다. 학창시절에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문학소녀를 꿈꾸던 학생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문학소녀란 좋은 의미보단 나쁜 뜻으로 표현된다. 문학소녀란 말이 역사의식이 없고 현실성이 결여되어있고 감상에 치우쳐 있는 등 폄하된 단어로 사용된다. 관연 그럴까? 이 책은 문학소녀란 말이 폄하된 시대의 중심에 살았던 전혜린에 대한 이야기와 여류 작가 수난사를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전혜린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그녀는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아버지인 전봉덕은 일제 강점기의 경찰 간부이자 군인, 변호사이다. 이런 아버지를 둔 덕분에 그녀는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된다. 독일 유학 시절에 결혼을 하고 딸을 낳게 되지만 고국에서 보내주는 생활비는 빠듯하여 생활고를 겪게 된다. 같은 유학생이었던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번역과 집필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살았던 당시 여성 지식인이 겪어야만 했던 고충을 알 수 있다.
전혜린은 제1기 여류 문인과 제2기 여류 문인이 겪은 호기심과 조롱과 모욕적인 숭배를 모두 경험한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란 저자의 생각에 공감이 되었다. 그 시절의 소녀들의 독서와 글쓰기는 훈육과 계몽의 주체, 특히 남성들의 시선을 만족시킬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기에 더 폄하되었다고 생각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불란서 시집을 읽는 고운 손”이라고 그녀를 표현했다. 그녀가 1960년대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현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녀의 자전적인 에세이집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젊은이들과 문학소녀들에게 문학적 감수성을 심어주었다. 또한 <데미안>과 <생의 한가운데>는 그녀가 번역한 대표적인 번역작이다.
남아선호사상과 가부장적인 생각이 강했던 시대와 식민지 시절에 부유한 엘리트 집안에서 자라고 외국에서 교육받은 그녀를 그동안 너무 쉽게 철부지 문학소녀라고 폄하하지는 않았는가?
이 책을 통해서 책 읽는 여자들의 흑역사를 돌아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저자의 말처럼 전혜린은 그 시절 젊은 사람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감수성을 불러일으켰던 수필가이자 번역가로 재조명되어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