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쉽게 하기 : 캐릭터와 카툰 ㅣ 스케치 쉽게 하기 10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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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회사원의 소개로 이 책은 시작한다. 유일한 취미가 카툰 그리기였던 그는 10년 뒤에 인터넷에서 그동안 그려왔던 캐릭터들로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프리랜서 캐릭터 디자이너로 전업했단다.

전업을 할 수 있을만큼 멋지게 캐릭터와 카툰을 그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도 않고 그만큼 취미가 있지도 않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희망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취미생활이라도 꾸준히 하면 직업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쌓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꾸불꾸불 웃기고 못생긴 낙서만 하던 나도 언젠가 시니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멋진 콧수염에 모자를 쓰고 있는 찰리 채플린을 몇가지 특징을 완벽하게 잡아내서 쓱쓱싹싹 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신이 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 한 권의 책으로 채플린 그리기에 도전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으로 재빨리 마음을 잠재워본다. 너무 큰 기대는 실망으로 직결된다. 지금 기대하는 게 가능하다면 그것으로 더 이상 좋을 수 없겠지만, 만약에 이 책을 읽으며 열심히 연습했는데도 정체불명의 그림을 계속 그릴 수 밖에 없다면 그만큼 기운이 빠질테니까. 그리고 재능이 없다는 핑계뒤로 또다시 숨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래서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채플린 비슷하게 그릴 수 있다면 대성공, 아니면 다시 도전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다른 책들도 찾아보고, 연습도 더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학원을 다녀도 되니까 말이다.

 

'스케치 쉽게하기'에는 부록으로 캐릭터와 카툰 연습장이 있다. 선긋기, 도형 그리기부터 시작했다. 어째 선긋기부터 삐걱거린다. 자를 대로 그은 듯이 직선의 선은 아니더라도 '선에는 마음이 드러난다던데...'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정도로는 선을 그리고 싶었다. 도형도 제멋대로 개성을 뽐낸다. 캐리커쳐 드로잉은 할 말이 없다. 책을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한다고 했는데, 역시나 모델이 된 그림과는 딴 판이다.

남이 그렸다면 '누가 그렸는지 참 못 그렸다'라며 도리도리 고개라도 흔들겠지만, 막상 내가 그린 그림이 이렇다보니 조금 난감해진다.

아무래도 '스케치 쉽게 하기' 시리즈 중에 '기초 드로잉'을 구입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책으로 입문 과정에 다시 한번 도전해봐야 겠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채플린을 그리는 것은 완벽하게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희박한 게 사실이라는 것을 씁쓸하지만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오랜만에 어설프게나마 그림을 그려봐서 좋았다. 고등학교 미술 수업 이후로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그림을 그려본 적이 처음이 아닐까 한다. 그림 연습하는 데 쓴 종이들은 와락 찢어서 작은 종이 봉투에 넣어서 재활용 분류함에 넣어두었다. 꽤 괜찮게 그린 게 있다면 기념으로 한 장 정도는 가지고 있고 싶었는데,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 쓱쓱 그렸는데 대상의 특징이 오롯히 나타내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항상 신기했었다. 각각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어찌나 멋지게 포착해내는지,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건가 궁금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카툰 캐릭터에 어떻게 활동력과 에너지를 불어 넣었길래 생생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 항상 감탄했었다. 그래서 그런 멋진 그림을 한번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씩 했었던 것 같다. 물론 제대로 된 시도는 별로 해보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번 기회에 이 책으로 무언가를 그려보면서 느낀 점이 있었다면 우선 제대로 정확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상상 속의 그림이 되고 말았다.

그림을 그리면 상대방을 제대로 응시하는 방법을 알아가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의 캐릭커쳐를 그리려고 마음 먹었다면, 분명히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될 테니까 말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그를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꾸불꾸불 웃긴 그림을 그리지만 앞으로 좀 더 발전하고 싶다. 그래서 멋진 그림을 무리일지 모르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제대로 관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졌다. 앞으로 좀 더 시도해 볼 생각이다. 관찰하는 법을 배울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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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프 : 불만족의 심리학
존 네이시 지음, 강미경 옮김 / 예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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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오직 두 가지 비극만 존재한다.

하나는 원하는 것을 소유하지 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 오스카 와일드

 

불쌍한 사람은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탐내는 사람이다

-세네카의 '도덕에 관한 서한'중에서

 

삶은 즐거움에서 즐거움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욕심에서 욕심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새뮤얼 존슨

 

충분한 것도 부족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무엇에도 만족할 수 없다

-에피쿠로스

 

만족한다는 것은 곧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와 정반대로 생각하는 우리의 습관에 있다.

우리는 충분히 가져야만 비로소 만족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다

-데일리 인라이튼먼트 뉴스레터 편집자, 셴 슈이안

 

이들이 한 말에 공감한다면,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불만족의 심리학'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은 만족주의를 주창한다.

이제는 '이너프!'를 외칠 때가 되었다고, 원시적 습성을 버려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한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콩쥐의 물항아리가 생각났다.

콩쥐가 아무리 발을 동동 구르며 물을 채워넣어도 항아리는 가득찰 수 없다. 아니, 팥쥐 엄마의 심술을 채울 수 없다는 말이 맞겠다.

밑빠진 독에 물붓는 일은 스스로를 녹초로 만들 뿐이다.

우선 그 항아리의 구멍을 막아야 한다. 여차하면 새항아리를 사면 된다.

아니면 콩쥐 이야기에서 나오는 만능 조력자라도 찾아나서야 한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깨진 물항아리에 비유한다면, 항아리의 깨진 틈을 막아줄 두꺼비는 '만족주의'일 것이다.

자신과 지구의 생태를 소진하면서도 결코 만족할 수 없다면 우리는 소비의 악순환 속에서 영원히 갇혀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거나 이전보다 더 행복해졌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다만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추구하기 위해 또다시 달려나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소모적인 활동을 계속하기 충분할만큼의 자원을 지구는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이 진정코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인지를 말이다.

 

인간은 행복을 끊임없이 추구하도록 설계되었지, 행복에 이르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는 문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어떤 것을 가지면, 어떤 지점에 도달하면 만족스럽고 행복한 일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게 환상일 뿐이라면, 스스로를 재촉하고 다그치는 일은 더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손에 넣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공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제안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제는 진화할 때라고. 만족하고 감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할 때라고.

유통기한 지난 끝없는 욕망충족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과 직시해야 한다고 말이다.

 

정보중독, 폭식, 채울수 없는 물질적 탐욕, 일중독, 과도한 선택지, 지나친 행복추구에 대한 글을 읽으며 찹찹해졌다.

하지만 누구도 여기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페라리와 롤스로이스를 소유하면 요트에 마음을 쏟게 되고,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고 이 책은 누누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페라리를 경탄하고, 먹고 싶은 것을 이것저것 접시에 담다가 어느새 음식동산을 만들게 된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처음에 무엇을 하기 위해 컴퓨터를 컸는지를 완벽하게 잊어버릴 때도 있다.

이런 일상에서 벗아나 자신이 통제하는 삶을 독창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인 만족주의는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다. 

만족하는 태도가 일상화되도록 의식적인 노력이 꾸준히 할 것인가 빈독에 물붓는 피곤한 짓을 끝없이 반복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마저도 이렇게 망설이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결단을 내려야 한다. 자신이 마음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똑바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진정한 풍요로움에 다가서기 위한 매뉴얼을 따라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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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박찬욱 외 지음 / 그책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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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조조로 영화 '박쥐'를 봤다. 상영 30분전에 후다닥 일어나서 새집지은 머리카락을 정리하지도 못한채 근처 영화관으로 달렸다. 전날 그 시간으로 예매한 스스로를 책망하면서. 작은 상영관에는 10명이 채 안되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앉아 있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친구를 잠깐 만났다. 어떠냐는 물음에 영화 예고편에서 본 줄거리와 같더라는 싱거운 대답만을 했을 뿐이다. 그 당시 노출수위에 대한 관심이 불붙고 있었던지라, 쌍화점보다 야하냐는 질문도 받았는데 쌍화점을 보지 못해서 묵묵부답 모르쇠로 일관했다.

 

저들이 아니었으면 누가 이 역할을 연기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멋진 캐스팅, 때때로 사람들이 실소를 자아냈던 등장인물들의 행동들에서 감지될 수 밖에 없는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선과 악, 인간의 욕망에 대한 고찰들로 지겹지 않은 영화였다. 박찬욱 감독이 깨워낸 뱀파이어는 복잡하지만 단순하고, 단순하다기에는 복잡했다.   

 

그리고 소설 '박쥐'를 만났다.

박찬욱 감독이 '테레즈 라캥'에 아주 느슨하게 기초해서 '박쥐'를 만들었고, 이 소설은 그 영화 '박쥐'의 시나리오에서 영감을 얻어 새롭게 창조된 독립적인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를 보고 원작을 찾아 읽거나, 책을 읽고 마음이 끌려서 내침김에 영화까지 보게 된 적은 몇번인가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소설화된 책을 읽는 것은 처음인것 같다. 

 

책을 펼치기 전에 이전에 봤던 영화 '박쥐'를 잠깐 떠올려봤다. 인상 깊었던 몇몇의 장면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단편적이었다.

당연할 수 밖에 없겠지만, 이 소설은 영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책장을 빠르게 넘겨나가는데, 문장들이 영화의 장면장면과 배우들의 표정으로 하나씩 되살아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을 기본으로하면서 사건의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만들고, 캐릭터의 심리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영화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을만큼 의아했던 장면들에 대한 좋은 해설서 역할도 하고 있다. 133분이라는 한정된 시간적 제약으로 어쩔 수 없었겠지만 중간과정을 생략해서인지 쌩뚱맞다고 느꼈던 어떤 부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책 속에서는 그 부분들의 전후과정이 영화보다는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왜 영화에서 느닷없이 그 장면이 등장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의 소설화!

원작을 읽는 것과는 또다른 기분이다. 영화를 다시 한번 생생하게 살려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마치 영화를 두번 본 느낌이다. 마음에 드는 영화를 몇번씩 보는 걸 좋아하는데, 다시 볼 때마다 이전번에는 감지하지도 못한 것을 발견해서라는게 비중있는 이유다. 

그런 보물찾기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런지, 영화를 소설로 만든 형식에 꽤 호감이 간다. 이 책만 하더라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잠시 딴 생각을 하다 놓쳐버린 부분도 보완해주었고, 인쇄매체를 통해 접함으로써 스크린을 통해 보았던 '박쥐'를 다른 분위기 속에서 다른 인상을 받으며 만날 수 있었으니까.

앞으로도 영화가 소설로 만들어지는 시도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멋진 영화가 스크린 밖으로 행보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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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ㅣ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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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이란 제목을 보고 '불멸의'이라는 수식어는 역시 이순신 앞에서 가장 빛나는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아니함'이라는 수식어가 붙기에는 책 속에 펼쳐진 내용들은 고결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다만 씁쓸함이 있을 뿐이었다.

'불멸의 신성가족'은 스물 세명의 구술자들을 인터뷰해서 만든 원고지 7천장이 넘는 녹취록을 기본자료로 해서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의 모든 문장에는 "모든 판사(검사, 변호사)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모든 법원(검찰청,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고 생각해주기를 바란다면서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일반화의 결과물이라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내용을 읽어가면서, 구술자의 신분이 드러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소개할 수 없었다는 원고지 7천장에 있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법조인이 말하는 '남들이 들으면 기절할 만한 사연'들도.

 

알지 못하는 곳에 가면 당황하고 긴장하기 마련이다. 몇 번은 같은 곳을 빙빙 돌기도 하고, 지나치는 사람에게 길을 물을 때도 나름대로 크게 쉼호흡을 하고 말을 붙이게 된다. 몇번을 망설이다 용기를 짜내서 말을 붙였는데, 찬바람 쌩하게 지나가거나 불퉁한 목소리로 마지못해 던지는 몇마디 말은 사람을 주눅들게 한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도 이러한데, 사법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상황에 처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위축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사법서비스가 그들을 위해 친절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사법에 대한 불신을 공고히 만드는 데 한 몫하지 않았나 한다. 

 

거의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의사소통의 부재'가 여기서도 문제인 것 같다. 한 공간 안에서 이해하고 납득하는 과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도 같은데, 뫼비우스 띠의 반대편에 서서 끝없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치 다른 차원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비효율적이고 상식에서도 크게 한걸음 뒤에 서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책을 통해서 들여다 본 신성가족의 모습은 어째 당당해보이지 않는다. 유지해야 할 인간관계, 달갑지 않은 청탁과 평판관리, 막대한 업무량으로 인간이기에 당연히 물리적, 정신적으로 피로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사법이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10년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졌고 관행적으로 존재하던 비리도 거의 사라졌다는 문장도 읽었다. 하지만 그런 문장 뒤에 숨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말하는 현재는 언제나 예전보다 나을 수 밖에 없으니까.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인정하고 개선해나가야 한다. 예전보다 나아졌으니까 괜찮다라는 모습보다 그런 과거까지 책임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게 훨씬 떳떳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법률서비스가 국민들을 소외시키지 않고, 그들을 위해 귀기울이고 배려하는 움직임을 보여줄 때 진정한 신뢰가 싹트지 않을까 한다.

 

자기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제 목소리를 내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파고, 등이 가려우면 알아서 긁어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목말라, 등 가려워한다고 바뀌는 건 없다.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다. 책에서의 말처럼 신성가족의 해체할 수 있는 열쇠는 가진 사람들은 국민들일지도 모르니까.

 

서로에 대한 다분히 소모적인 불신과 경계를 툭툭 털어버리고, 모두가 올바르다고 인정할 수 있는 구조가 하루빨리 구축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보여주는 많은 이야기가 오래전에 흘러간 전설같은 모습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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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최후의 해결책 ㅣ 새로운 셜록 홈즈 이야기 3
마이클 셰이본 지음,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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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의 최후의 해결책'은 셜록홈즈 탄생 120주년 기념해 기획된 코난 도일에게 바치는 헌정작을 모은 <새로운 셜록홈즈 시리즈>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이다. '동시대의 가장 유명한 작가'라는 작가로 불리우며, 퓰리처 상을 비롯해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진 마이클 셰이본의 문장으로 셜록 홈즈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최소한 '셜록홈즈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셜록홈즈를 좋아한다. 처음 읽은 추리소설도, 추리소설의 매력을 알려준 인물도 셜록 홈즈였다. 셜록홈즈 전집이 끝없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딱 적당한 것 같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 셜록홈즈를 읽고 꿈을 키운 사람들이 그 빈공간을 채우려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여러 작품들 속에서 셜록 홈즈를 찾는 보물찾기를 계속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만큼 그의 존재감도 견고하게 지속되지 않을까하는 기분 좋은 기대 때문에 그 공백이 더 의미있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첫 페이지를 읽기 전에 이 책에서는 셜록 홈즈의 어떤 모습을 만나게 될까 궁금해하고 기대했었다. 마이클 셰이본이 그린 셜록 홈즈가 만나게 된 사건은 무엇일까도.

'셜록 홈즈 최후의 해결책'이라는 책제목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이 책에서 셜록 홈즈는 89살의 노인이다. 빠른 걸음걸이도, 예리하고 빈틈없었던 통찰력과 관찰력도 예전같지 않다. 그리고 그의 절친이 떠나간 빈자리는 허전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갑자기 소년이 나타난다. 앵무새를 데리고 다니는 9살짜리 남자아이가 꿀벌들과 생활패턴을 함께하는 그의 평온한 일상에 등장한다. 소년이 말하지 않는 대신에 앵무새는 독일어로 정체불명의 숫자를 내뱉는다. 그리고 오랜동안 잠들어있는 그의 추리본능이 일깨워진다.

앵무새가 조잘거리는 독일어 숫자의 비밀, 그리고 소년의 유일한 친구인 앵무새를 노리는 사람들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은퇴한 탐정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민첩한 기동성과 빠른 상황판단능력이 떨어졌을지 몰라도, 그는 예전의 명성에 걸맞게 사건에 접근해나간다. 책장을 넘길수록 비밀은 하나씩 드러나고 사건의 정체는 그의 손에 의해 가닥이 잡힌다. 그리고 셜록홈즈는 언제나 그렇듯 당연히 사건을 해결한다.

 

잠시간의 무료함도 못 견뎌하던 셜록 홈즈가 꿀벌을 기르며, 죽음의 순간을 걱정하며 예전만 못한 감각에 자괴감을 느끼는 장면들이 낯설게 다가왔다. 세월이 그의 성격을 바꿀 수 있었을까. 비슷하지만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이가 들어가는 셜록 홈즈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확실히 내가 그린 셜록 홈즈의 모습은 책 속의 그와 많이 달랐다. 같은 이야기를 읽었지만, 사람마다 각자가 그리고 있는 셜록 홈즈의 모습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하지만 이 책 자체는 멋졌다. 셜록 홈즈의 일상을 탁월한 재현능력으로 뼈대를 잡고, 화려한 필력으로 책을 읽는 사람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어서 순식간에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다. 일러스트가 쌩뚱맞아서 아쉽다는 점을 제외하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꽤 괜찮은 책이다.
셜록 홈즈의 전집이 9권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면,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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