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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박찬욱 외 지음 / 그책 / 2009년 4월
평점 :
일요일 조조로 영화 '박쥐'를 봤다. 상영 30분전에 후다닥 일어나서 새집지은 머리카락을 정리하지도 못한채 근처 영화관으로 달렸다. 전날 그 시간으로 예매한 스스로를 책망하면서. 작은 상영관에는 10명이 채 안되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앉아 있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친구를 잠깐 만났다. 어떠냐는 물음에 영화 예고편에서 본 줄거리와 같더라는 싱거운 대답만을 했을 뿐이다. 그 당시 노출수위에 대한 관심이 불붙고 있었던지라, 쌍화점보다 야하냐는 질문도 받았는데 쌍화점을 보지 못해서 묵묵부답 모르쇠로 일관했다.
저들이 아니었으면 누가 이 역할을 연기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멋진 캐스팅, 때때로 사람들이 실소를 자아냈던 등장인물들의 행동들에서 감지될 수 밖에 없는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선과 악, 인간의 욕망에 대한 고찰들로 지겹지 않은 영화였다. 박찬욱 감독이 깨워낸 뱀파이어는 복잡하지만 단순하고, 단순하다기에는 복잡했다.
그리고 소설 '박쥐'를 만났다.
박찬욱 감독이 '테레즈 라캥'에 아주 느슨하게 기초해서 '박쥐'를 만들었고, 이 소설은 그 영화 '박쥐'의 시나리오에서 영감을 얻어 새롭게 창조된 독립적인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를 보고 원작을 찾아 읽거나, 책을 읽고 마음이 끌려서 내침김에 영화까지 보게 된 적은 몇번인가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소설화된 책을 읽는 것은 처음인것 같다.
책을 펼치기 전에 이전에 봤던 영화 '박쥐'를 잠깐 떠올려봤다. 인상 깊었던 몇몇의 장면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단편적이었다.
당연할 수 밖에 없겠지만, 이 소설은 영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책장을 빠르게 넘겨나가는데, 문장들이 영화의 장면장면과 배우들의 표정으로 하나씩 되살아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을 기본으로하면서 사건의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만들고, 캐릭터의 심리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영화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을만큼 의아했던 장면들에 대한 좋은 해설서 역할도 하고 있다. 133분이라는 한정된 시간적 제약으로 어쩔 수 없었겠지만 중간과정을 생략해서인지 쌩뚱맞다고 느꼈던 어떤 부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책 속에서는 그 부분들의 전후과정이 영화보다는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왜 영화에서 느닷없이 그 장면이 등장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의 소설화!
원작을 읽는 것과는 또다른 기분이다. 영화를 다시 한번 생생하게 살려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마치 영화를 두번 본 느낌이다. 마음에 드는 영화를 몇번씩 보는 걸 좋아하는데, 다시 볼 때마다 이전번에는 감지하지도 못한 것을 발견해서라는게 비중있는 이유다.
그런 보물찾기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런지, 영화를 소설로 만든 형식에 꽤 호감이 간다. 이 책만 하더라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잠시 딴 생각을 하다 놓쳐버린 부분도 보완해주었고, 인쇄매체를 통해 접함으로써 스크린을 통해 보았던 '박쥐'를 다른 분위기 속에서 다른 인상을 받으며 만날 수 있었으니까.
앞으로도 영화가 소설로 만들어지는 시도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멋진 영화가 스크린 밖으로 행보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