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철학자들의 서 -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우며 숭고한 철학적 죽음의 연대기
사이먼 크리칠리 지음, 김대연 옮김 / 이마고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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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우며 숭고한 철학적 죽음의 연대기'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에서는 수많은 철학자를 만날 수 있었다.

탈레스에서부터 들뢰즈와 푸코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철학자 190여 명의 삶에서 특정한 장면에

사이먼 클리칠리는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 장면은 바로 죽음이었다.

그 이름만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런 철학자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고,

어떤 방식으로 죽음에 대처해왔으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몇몇 철학자들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곁들이고 있는데

이제껏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어렵다고만 생각해왔던 것은 그동안 어렵게 쓰여진 책만 읽어와서인게 아닐까를

의심했을 정도로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철학자들의 죽음에 대한 글이다보니 다소 무겁거나 어두운 분위기라고 짐작할 수도 있는데

전체적으로도 세부적으로도 그런 분위기가 그다지 큰 부분을 차지 하지 않고 있다.

이 책에서 여러번 인용되고 있는 키케로의 말이 있다. “철학한다는 것은 곧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 문장 그대로 죽음에 맞딱들여서도 평점심을 잃지 않은 용감한 철학자들도 있었고

콩밭을 건너지 못했다거나, 닭을 눈 속에 파묻다 병에 걸리거나, 과식으로 인해, 불사를 의심치 않으며 활화산으로 투신해서

이 세상과의 인연을 끊어버린 철학자들도 있었다.

저자가 책의 첫페이지에서부터 강조했던 것을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즈음에야 아주 희미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저 두려워하고 달아나려고 하는 것은 몸부림칠수록 옥죄어오는 그물을 두르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힘을 빼고 담담한 태도를 보이면 어쩌면 생각했던것만큼 거대하지 않을수도 있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지 않고 담담하게 대면할 수 있다면, 그런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면

어쩌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뿐이지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죽음에 담담했던 철학자들이 대단해보이기는 하지만 그게 정말 가능한건지, 허세는 아니었는지

죽음에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면 삶에 대해서도 정답을 찾을 수 있는건지.

이것에 대한 대답을 알아가려고 노력하는게 이 책을 읽고나서부터 해야할 과제인 것 같다.

'죽은 철학자들의 서'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이름만 들어봤던 철학자들이 모여있는데다가

그들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대부분 그들이 어떻게 죽었느냐가 주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널리 알려져있는 아주 유명한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좀 더 책을 찾아서 읽어봐야 겠다는 의욕이 샘솟을만큼

그들이 일구어놓은 철학의 일부분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호기심을 자아내게 서술하고 있어서 

철학자들도 사람이었구나, 결국은 인간으로서 하게 되는 고민들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할당해서 풀어내려고 했던 사람들이구나를 느끼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철학자들이 이전보다는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는 것같다.

그동안 철학에 대한 책을 한 권 읽으려면 마음도 단단히 먹어야 했고, 몇 페이지 채 읽지 못하고 책을 덮기도 했었을만큼

그들과의 거리감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 이전보다 미세하게 심리적인 거리감이 줄어들었다.

앞으로 이 책에서 만나면서 호감을 느낀 철학자들에 대한 글을 가능한한 많이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외면했던 많은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마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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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화 속 현대 미술 읽기
존 톰슨 지음, 박누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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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큐레이터이자 평론가인 존 톰슨의 '세계 명화 속 현대 미술 읽기'는 그 제목 그대로 현대 미술을 읽는 법을 알려준다.

이전까지는 그림에 관한 책을 읽을 때면 그림은 그림대로, 글씨는 글씨대로 따로따로 읽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글을 읽다가 그림을 다시 한번 보게 되고, 그림을 보다가 다시 문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존 톰슨은 미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작품의 관람포인트를 집어주고 있는데

그 손끝을 따라가다보면 이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그림의 또다른 면을 발견하게 되어서

이 책을 읽어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 예술가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그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화가에 대한 최소한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작품을 그린 사람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 그림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겠다는 것을

예술가의 삶과 그림을 이어놓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낀게 된다.

차례가 바뀔때마다 매 파트에서 소개하고 있는 대표적인 그림이 있다.

그 그림에 대한 소개와 감상이 주를 이루면서 그 당시 화가의 위치와 입지 그리고 그들의 교류들도 들려주고 있는데,

존 톰슨이 해주는 그 이야기들이 이 책에 실려있는 그림만큼 흥미롭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빠져드는만큼 그 그림에도 한층 관심이 향하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허투로 보아넘겨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게 없나싶어 그림을 꼼꼼히 살피게 된다.

이전에 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볼 때보다 훨씬 긴 시간을 그림을 바라보게 된다.

이 책으로 인해서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화가와 눈인사라도 나눌 수 있었고,

너무나도 유명해서 이미 그 화가의 이름은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럽게도 그의 것인지 알지 못했던 그림들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을 이번 기회에 고쳐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전까지는 화가와 그림을 선을 그은 다음에 이 정도는 알아두어야겠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살폈었다. 그것도 대충대충 말이다.

얼마나 잘못된 방법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는 단 하나의 그림도 제대로 볼 수 없겠구나 느꼈다.

앞으로는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을 익혀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몇번이고 하게 된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은 여기에서도 예외로 작용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림도 많이 보고, 그만큼 그림에 대한 공부도 조금씩이라도 해나가야 겠다.

그러면서 그림과 즐거운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이해가 커지는만큼 세상을 보는 시각도 좀 더 넓어졌으면 하고 바래본다.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림을 제대로 보게 되면 세상도 지금보다는 좀 더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최소한 그러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 같다. 그런 예감이 든다고 해야할까.

'세계 명화 속 현대 미술 읽기'는 미술 관람을 위해 꼭 필요했던 멋진 가이드 역할을 해주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그림 감상을 위한 지침을 막연하게나마 마련하게 되었다는데서 감사하고 있다.

마로니에 북스의 이 시리즈를 주목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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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연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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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의 말 한마리가 우리를 벗어나 파란 하늘로 날아오르는 표지를 보고 해피 엔딩을 짐작했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은 지금 이 책이 과연 해피 엔딩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무겁거나 어두운 건 결코 아니다.

'회전목마'의 주인공은 고향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토노 케이치다.

도쿄에서 회사를 다니다 과감하게 사표를 내던지고 귀향했다. 그리고 공무원 9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온한 직장 생활을 뒤흔들 사건이 일어난다. 아테네 마을 재건 미션이 떨어진 것이다.

아테네 마을은 용케도 운영된다고 감탄할만한 적자 중의 적자 상태에 빠져있는 놀이공원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공간이다.

들어오는 손님도 쫓아내고도 남을만큼의 매력을 발산하는 그곳에 케이치가 몰아넣어진다.

변화나 개혁같은 것들을 비난하고 경계하는 아테네 마을 관계자들의 관심은 오로지 '이대로 계속!'일 뿐이다.

더 잘해서도 안되고, 못해서도 안된다. 그저 하던 대로 하자는 철학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다.

회의를 하더라도 그들이 관심있어 하는 것은 자기 주머니에서 꺼낸 돈으로는 도저히 사먹지 않을 것이 분명한

고가의 유명 도시락뿐이다.

그런 아테네 마을을 재건하는 프로젝트에 관계하게 된 토코 케이치는 아내와 딸에게도 소심하다고 놀림을 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케이치가 이번만큼은 다르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당한 아테네 마을을 리모델링하려한다.

물론 케이치가 마음 먹었다고 순식간에 아테네 마을이 요술봉을 휘두른 것처럼 달라질리가 없다.

그는 이제부터 자갈밭을 김매고, 깨진 독에 물을 채워야 한다. 그를 위한 콩쥐미션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콩쥐에게 참새나 두꺼비가 있었듯이, 그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도움으로 하나하나 헤쳐나가게 된다.

아테네 마을을 재건시키는 과정을 동화같이 그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 있었던 알력싸움이 드러나면서 씁쓸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 부분들을 읽다보면 이 책의 주요인물 중 한 명인 괴짜단장이 해주는 콩사나이 이야기가 계속 떠오른다.

그리고 콩사나이의 숙명과 회전목마를 유심히 살피다가 씁쓸해지고 만다.

하지만 회전목마 봉에서 탈출할 말과 운명을 개척하기로 한 콩사나이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분명히 있을것이다. 그러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매일에 익숙해지는 게 무섭다는 대사가 나온다.

어쩌면 더 오싹한 것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매일에 익숙해지는 게 더 이상 무섭지도 않은 게 아닐가라는 생각이 든다.

무덤덤해지는 것, 둔감해지는 것, 적응하는 것...

그런 것들도 나름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물론 긍정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는 것에 그래버린다면 안될 것 같다.

코믹하고 유쾌하지만 가볍게 책을 덮을 수는 없었다.

오기와라 히로시는 방심할 수 없는 작가인 것 같다. 그 순간 그의 덫에 걸린다고나 할까.

그리고 숨겨둔 한 방을 결정적인 순간에 날린다. 그게 그가 쓰는 소설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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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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쿳시의 작품 중에서 가장 실험적인 소설이라고 평가받고 있었다.

책을 펼치고 몇 페이지를 읽어나갔을 때 '과연'했었다. 우선 책의 구성부터가 남달랐다.

중간 중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책장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우선 페이지 처음 부분은 독일의 한 출판사로부터 '강력한 의견들'이라는 제목으로 집필 의뢰를 받은

세뇨르 C의 쉰 다섯 개 주제의 글이 실려있다.

그 바로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두번째 파트는 세뇨르 C가 화자로 등장해서 주로 안냐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마지막이자 세번째 파트에서는 안냐가 주도권을 잡는 부분이다. 안냐가 바라보는 세뇨르 C에 대해 알 수 있다.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의 1/8 정도는 차례차례 순서대로 읽어낼 수 있었다.

'강력한 의견들'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 될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나서, 작가가 일상을 살아가는 현실에서의 생각과 느낌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 작가의 타이피스트로 잠시 고용된 안냐의 솔직한 언어와 마주했다.

처음에는 구성의 특이한 신비함에 매료되어서 페이지를 넘겼는데, 어느 순간부터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조급함을 느낄 정도로 떨어졌다.

그러다가 결국 이 책을 세 번 읽게 되었다. 물론 파트를 나누어서 였지만.

'강력한 의견들'을 정독했고, 세뇨르 C의 독백을 두번째로 읽었고, 안냐의 독백을 마지막으로 읽었다.

하지만 두 부분으로 읽었어도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강력한 의견들'과 독백 파트로 나누어서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다시 한번 전체적으로 읽어 볼 생각이다. 세 파트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아버린 이상

그저 빨리 읽으려는 욕심으로 조각내서 읽어버렸다는 게 아쉬워졌으니까 말이다.

'야만인을 기다리며'가 처음 읽은 존 쿳시 소설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나서 그 유명세에 편승해서 그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을 읽는 내내 고민했다. 책을 여기서 그만 덮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결국에는 밥투정하는 세살짜리 아이마냥 꾸역꾸역 읽어내기는 했지만

존 쿳시와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생각하면 책 내용이나 인상적인 구절은 별다르게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나서 드디어 읽어냈다는 만족감에 흐믓해하던 바보같은 모습이 떠오를 뿐이다.

그 후로 한참동안 존 쿳시 소설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러다 몇 년만에 읽게 되었다. 존 쿳시의 작품을.

바로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라는 독특한 제목만큼 특이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이 소설이다.

그리고 존 쿳시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워낙 예전에 읽었던 책이라 자세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쩐지 몇 년 사이에 읽기가 어렵지 않아졌다는 느낌도 받았다.

어쩐지 '야만인을 기다리며'도 조만간에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이번에 읽게 될 그 책에서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까.

어쨌든 그만큼 이 책이 마음에 들었고, 존 쿳시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깨부셔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강력한 의견들' 원고를 통한 세뇨르 C와 안냐의 대화와 교감의 파장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강력한 의견들' 파트를 읽어나가다보면 문득문득 골목길로 돌아가는 존 쿳시의 뒷모습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뇨르 C가 존 쿳시인가라는 확신이 들었다가, 어느 순간 말끔히 사라지곤 한다.

뭐랄까...지하철 안에서 아는 사람과 마주쳤지만, 동일이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아 아리송해하는 순간과 비슷하다.

세뇨르 C에게 그것과 비슷한 시선을 던지게 된다.

앞으로 존 쿳시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리라 마음 먹는다.

그리고 처음 읽은 소설이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라는 편협한 이유로 거리를 두었던 많은 책들도 차근차근 읽어봐야 겠다.

그때는 그다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다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스스로를 내가 만든 우리에 가두는 짓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독서에서 이미 그러했다는 걸 이런 소설을 읽으면 매번 깨닫게 된다. 각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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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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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두고 주제 사라마구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위대한 작품이라고 했고,
문학적 유머감각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말했다고 한다.
사라마구와 마르케스가 극찬한 작가, 라우라 레스트레포의 장편소설 '광기'는
찬사의 글만으로도 한껏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문학적 유머감각이란 어떤 것일까 궁금해지는 한편
문학적 유머감각을 눈치채지조차 못하는 빈틈많은 센스를 가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까봐 걱정도 된다.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은 자, 과연 누구인가?"라는 강렬한 문장이 소설이 시작되기 전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 강렬한 문구와 '광기'라는 제목으로 짐작할 수 있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고  
사라마구와 마르케스, 그들의 극찬한 면모를 이 소설에서 찾아내기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읽어내려갔다.
우선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화자가 한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시간 순으로 차분하게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소설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시선을 이동하고, 화자도 끊임없이 갈아치우고 있다.
그래서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점들이 이 소설이 드러내고자 하는 광기와 혼돈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혼란스러운 틈에서 사건의 진상과 등장인물의 현재에 영향을 끼치게 된 과거가 서서히 드러난다.
가족 구성원 한 명의 문제가 아니었다. 등장인물들 각각이 가지고 있는 상처와 광기가 만나면서
이야기는 꼬일 대로 꼬인 채 흘러간다.  
폭력이 어떤 상황을 만들어 내고 그 여파는 광기를 가속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잘못 된 길로 들어선 마음은 결코 정상궤도로 돌아올 수 없고, 설령 그렇게 보인다해도 임시적인 상태일 뿐
도화선에 붙은 불꽃 같은 상황이 생긴다면 광기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짐작해본다.
이런 광기는 도대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일까.
그 광기로 인해 황폐화 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공간은 과연 광기로 가득차 있는 것일까.
그 광기가 우리 사회를 잔인하게 만드는지, 사회가 잔인하기 때문에 광기가 짙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들이 슬픈 도돌이표를 그리며 무한히 반복되고 있는 것인지.
이 책을 읽다보면 도대체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그렇기에 더욱 이 책을 읽은 의미가 있었다.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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