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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황정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가롭게 피크닉을 즐기는 중에 아이가 타고 있는 열기구가 공중에 떠 있는 걸 본다면, 그쪽으로 아무 생각없이 달리게 될까?
맹자가 우물가의 어린이에 대해서 말한 것처럼, 사람에게는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마음이 있는것일까?
만약 그런 마음이 인간으로써 당연하다면, 그 마음은 언제까지, 어느 범위까지 지속되는 것일까?
열기구 사고가 일어나고, 주변의 사람들이 도움을 주기 위해 달려간다. 그리고 열기구에 사람들이 매달린다. 하지만 어느 순간 위기감을 느낀다.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속에서 누군가 열기구에서 손을 놓아 버렸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과연 그 순간에도 열기구에서 분리 될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거기에서 떨어져 나온 다음 순간, 아직도 열기구에 매달린 채 상공으로 떠오른 사람의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죄의식, 타격을 입은 마음으로 이전의 생활을 평온하게 지속할 수 없다. '이런 사랑'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최근에 읽었던 소설 중 단연 최고였다. 이언 매큐언, 그의 작품은 처음 읽는 것이었다. 주위에서 많이들 추천했었는데, 이래저래 바쁘기도 해서 달팽이처럼 느린 속도로 책을 접하게 됐다. 알랭 드 보통과 빌 브라이슨이 말한 그대로 최고의 심리묘사였고, 이런 소설은 참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원서로 읽어보고 싶은 소설을 만났다. 번역만큼 훌륭하게 해석할 자신은 없지만, 그 작가가 실제로 어떤 단어를 썼는지가 궁금해 지는 때가 있는데, '이런 사랑'도 그런 경우다. 전자수첩과 함께라면 해낼 수 있을 거 같기도 하다.
문장도 멋지고, 소재도 신선했다. 책을 읽는 동안 조의 불안감과 복잡한 심경이 문장에서 전해지는 듯 했다. 스토킹을 당하고, 신경 쓰이는 전화와 편지에 시달리고, 혼자서 드 클레랑보 신드롬일지도 모른다는 것과 공격성향이 있다는 것까지 생각해냈지만, 주위에서는 별다른 도움을 얻을 수 없다. 항우울제를 권유받을 뿐이다. '이런 사랑'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느끼는 불안과 초조함으로 인해 상황이 저렇게나 복잡하게 꼬여 버렸는지, 적합한 시기에 적당한 방법으로 해결을 시도했다면 과연 다른 결론에 이르렀을 것인지. 그렇다하더라도 그런 것을 당사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문제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안정과 평안한 삶이란 단단한 흙바닥위에 경고하게 쌓아 올린 성질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조차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사랑했기 때문에 의심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일반 상식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난 사랑이 이 소설 속에는 존재한다. '이런 사랑'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멋져 보이지 않는 일상의 흔들림이 존재한다. 그리고 소설속 이야기의 흐름이 어색하지 않고, 다양한 정보들이 산재해있지만 산만하다거나 방만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개그콘서트의 달인이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안 읽어보셨으면 말을 마세요~
친구가 '속죄'를 추천해줬었다. 그때 어톤먼트가 한창 상영중일 때인데, 광고를 슬쩍 보고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거 같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소재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편견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멋진 소설을 만나지 못할 뻔했다.
직접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또는 단지 한권만을 읽고 고정된 선입견을 유지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이런 방식으로 얼마나 많은 책들을 지나쳐 왔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런 사랑'을 시작으로 그동안 대면대면하게 지내왔던 책들을 한권씩 읽어봐야 겠다. 다음번에는 '속죄'를 읽어봐야 겠다. 그리고 독서에서도 편식은 이제 그만하자고 생각했다. 지금보다 열린 마음으로 책을 대하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좋은 소설을 읽으면서, 평소의 독서습관을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재미있게 읽었다. 다 읽을 때까지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여름의 끝무렵에 올해 가장 인상적일수도 있겠다고 느껴지는 소설을 만났다. 이언 매큐언의 매력에 한번 빠져 보는 것도 여름을 멋지게 마무리하는 한가지 방법이 될지도 모르겟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