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골든 슬럼버'를 읽고나서 일본에는 비틀즈를 좋아하는 작가가 참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비 로드는 제일 마지막에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누나의 예전 남자친구라든지, 은행강도에게 억류 된 상태에서 태연하게 비틀즈 노래를 불러대는 남자가 문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괜스레 일본에는 비틀즈가 방문했던 역사가 있어서인가라는 쓸데없고 싱거운 이유를 찾고 있었는데 어떤 소설의 장면이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대부분이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신치바에서도 음악 이야기가 많이 나왔었던 거 같다. 음색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살려주기도 하고 말이다. 앞으로 당분간은 '이사카 코타로'하면 '비틀즈'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을 읽고 나면 뭔가 한가지씩 남는 게 있었던 거 같다. 가끔은 상황일 때도 있고, 때로는 주인공이나 주변인의 대사일 때도 있었다. 자기가 시간을 멈추었다고 말할 수 있는 뻔뻔스러움을 가장한 당당함이라던지, 다른 사람의 생일을 기억하기 위해 자신을 위한 선물을 산다던지 하는 것은 언젠가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골든 슬럼버'를 읽으면 어떤 것을 기억하게 될 것인지가 기대되었다.

이번 책은 쫓기는 한 남자의 숨가쁜 이틀간을 그려내고 있다. 그의 이름은 아오야기 마사하루.

아오야기 마사하루라는 말 그대로 온 세상에 추격당한다. 언론과 권력에 쫓기고, 공격당하지만 그를 알고 있고 실제로 만나는 사람들은 그를 믿는다.

아오야기의 옛 여자친구 히구치는 아오야기의 사소한 습관까지 기억하기에 그를 믿을 수 밖에 없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를 돕는다. 치한을 끔찍히 싫어하는 아버지는 카메라 앞에서 아오야기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기자들을 상대로 인생의 소중한 것을 걸고 내기를 하자고 호통을 치는가 한편, 잽싸게 쪼르르 도망치라고 카메라를 향해 소리친다. 대학시절을 함께 패스트푸드점을 누비고, 그에게 밭다리 후리기 기술을 전수해 준 고리타, 아오야기의 믿음에 답을 못줬다며 못내 안타까워하는 가즈오, 불꽃회사 사장과 그가 구해준 연예인, 그리고 철저한 감시체계를 만드는 데 일부 기여한 바 있는 연쇄살인범와 그를 운반해 준 그의 옛 동료와 주차장에서 만난 청소년까지 아오야기에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도움과 기운을 주고 있다.

누군가에게 이 정도의 신뢰를 쌓았다면, 다른 부연설명이 없더라도 그가 꽤 멋진 캐릭터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아오야기가 초콜릿을 반으로 부러뜨렸을 때, 조금 더 많은 쪽을 상대방에게 건네 준 일을 단점이라면 단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 외에는, 박카스 광고에 나와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바르고 성실한 캐릭터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거대한 시나리오의 주인공 대타가 되면서 긴 사건 속으로 뛰어든다.

아오야기가 골든 슬럼버를 부르는 장면이 꽤 등장한다. 그리고 그때는 주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심리상태를 알리는 경우가 많았던 거 같다. 추억이라는 행위 자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때 하게 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 비틀즈의 '골든 슬럼버'를 흥얼거리는 아오야기의 모습을 꽤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을 뿐더러 과거와 습관을 버려야 하는, 생존을 위해 꼴이 좀 우스워져도 도망쳐야 하는 입장이기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골든 슬럼버'를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현실과 과거를 넘나들며 톡톡 던져지는 멋진 문장이었다. 그리고 사건이 무마되고 나서 자신의 존재와 무사함을 알리기 위해 아오야기가 사용하는 방법도 마음에 들었다.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순간이 없다면 결코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들의 소통방법을 보면서, 추억의 꽤 멋진 기능에 새삼스럽게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난처한 상황에서 엄마 히구치를 구해주는 그녀의 어린 딸 나나미의 재치와 귀여움도 한 몫 하고 있다.

늦은 밤에 읽기 시작할 때 즈음에 딱 100페이지만 읽자고 마음 먹었는데, 결국은 새벽에 쫑쫑거리는 새소리가 들릴 때까지 깨어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 이사카 코타로 소설은 꼭반드시 오후 즈음에 읽어야 겠다.

 

아마도 이 문장들을 책을 덮고나서도 한참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불꽃놀이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이 보는 거잖아. 내가 보고 있는 지금, 어쩌면 다른 곳에서 옛 친구가 같은 것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유쾌하지 않아? 아마 말이지, 그런 때는 상대로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해."

"같은 생각?" 아오야기는 무심코 반문한다.

"추억이란 건 대부분 비슷한 계기로 부활하는 거야. 내가 떠올리고 있으면 상대도 떠올리고 있지."

 

 

"너 말이야, 바다에서 고래에게 습격을 받으면 어쩔 건데?"

......

"그러니까 가장 영리한 방법은."

"영리한 방법?"

"도망치는 거. 헤엄쳐서 도망치는 거. 그거밖에 없어. 꼴이 좀 우스워도 괜찮으니까 젖 먹던 힘을 다해 도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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